기자에서 사진치유자로…임종진 에세이 ‘당신 곁에 있습니다’ 출간

기사등록 2020/02/29 08:18:22

[서울=뉴시스] 저자 임종진과 사진치유과정을 함께한 5.18 고문피해자들. (사진=임종진 제공) 2020.02.29.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저자 임종진과 사진치유과정을 함께한 5.18 고문피해자들. (사진=임종진 제공) 2020.02.2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1980년 당시 도청 앞 전일빌딩 후문 계단에서 계엄군에 붙잡혀 온몸을 군홧발로 짓밟혔던 황의수 씨는 사진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2013년 여름, 33년 만에 처음으로 그 계단을 찾아갔다. 그 동안 단 한 번도 이 자리에 다가갈 수 없었다. 군홧발에 채이고 아스팔트 위에 머리가 짓이겨졌던 당시의 소름 돋는 기억이 그렇게 만들었다. 근처를 가기만 해도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계단 앞에 선 황의수 씨는 온몸에 경련이 일 정도로 힘겨워 했다. 첫 경험 이후로도 황의수 씨는 꾸준하게 이곳을 다시 찾았다. 공포의 기억이 다시 그를 감싸 안았지만 몇 번의 반복되는 걸음 속에서 한결 차분해지는 감정을 경험하게 됐다. 어느새 마디가 굵어지고 주름이 가득한 황의수 씨의 손. 그 손에는 언제나 카메라가 들려있다”-126p. ‘사진 행위와 치유의 힘’ 중

“37년만에 그 계단을 오르면서 그녀는 잔뜩 주눅이 들어있었다. 그전에는 수사관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온 것이고 지금은 스스로 찾아온 것임에도 그녀는 떨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기 전 남영동 대공분실 정문 앞에서도 한참을 망설였다. (중략) 37년만에 찾아온 이곳에서 그녀는 울고 또 울었다. 그럼에도 다시 남영동을 찾았다. 반복적인 방문이 계속 이어졌다. 지속적으로 치러진 상처와의 대면은 두려움과 분노심을 가라앉혔다. 드디어 대공 분실 5층 수사실에서도 웃을 수 있게 되었다.”-143p ‘나는 간첩이 아니다’ 중

사진치유자 임종진이 에세이 ‘당신 곁에 있습니다’를 출간했다. 월간 ‘말’, ‘한겨레신문’ 등에서 사진기자로 근무하며 북한과 이라크 현장을 취재하던 ‘잘나가는’ 저자는 어느 날 안정적인 신문사를 그만두고 캄보디아로 떠난다. 그곳에서 국제구호기관에서 일하며 무료사진관을 열었다. 그리고 돌아와 아픈 사람들의 곁에서 ‘사진 치유’ 작업을 시작했다.

[서울=뉴시스] 저자 임종진과 사진치유과정을 함께한 5.18 고문피해자,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들. (사진=임종진 제공) 2020.02.29.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저자 임종진과 사진치유과정을 함께한 5.18 고문피해자,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들. (사진=임종진 제공) 2020.02.29. [email protected]
‘사진 치유’란 카메라라는 도구로 고통을 겪은 장소를 스스로 대면하고 마주서서 그 장소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다. 트라우마를 인지하고 외면하지 않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해 나간다. 저자는 ‘행위 중심 사진치유’라고 일컫는 이런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을 만들어 카메라를 매개로 많은 이들의 상처와 만나왔다. 

5.18 고문피해자, 70~80년대 간첩조작 피해자, 세월호 유가족 등 국가폭력이나 부실한 사회 안전망으로 상처를 입은 이들, 그리고 마음 회복을 필요로 하는 시민들이 그의 사진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저자는 그들 곁에서 사진이 지닌 치유와 회복의 힘을 전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서울=뉴시스] 기자 시절 평양 취재길에 올랐던 저자. 북한 안내원 김성혜 씨와 함께. 이 안내원은 후에 북한 통일전선부 통일책략실장까지 올랐다. (사진=임종진 제공) 2020.02.29.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기자 시절 평양 취재길에 올랐던 저자. 북한 안내원 김성혜 씨와 함께. 이 안내원은 후에 북한 통일전선부 통일책략실장까지 올랐다. (사진=임종진 제공) 2020.02.29. [email protected]
책은 전문 사진 심리 상담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세상과 사람, 카메라와 자신이 만나가는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들려준다. 저자는 자신의 사진이 과연 사람을 위한 것이냐 하는 질문과 과정을 통해 ‘사람이 우선인 사
진’이라는 틀을 만든 이야기부터 사진 치유, 우리 사회의 편견에 맞서기,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 일상 속 삶에 대한 사랑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누구나 손 안에 카메라가 있는 시대에 사진의 역할을 돌아보게 하고 때론 독자의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저자는 정성을 다해 사진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해준다. 그리고 그것으로 “참 고맙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368쪽, 1만6500원, 소동.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기자에서 사진치유자로…임종진 에세이 ‘당신 곁에 있습니다’ 출간

기사등록 2020/02/29 08:18:22 최초수정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