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과거사 사건 소멸시효 3년"…헌재결정후 첫 판단

기사등록 2020/02/12 16:00:19

서울고법, 긴급조치 배상 2심 판결

소멸시효 6개월 본 1심과 달리 판단

"재심 무죄 확정돼야 불법행위 인식"

[서울=뉴시스] 옥성구 기자 = '과거사' 사건과 관련해 국가 손해배상 소멸시효를 3년으로 봐야 한다고 인정한 2018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른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12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32부(부장판사 유상재)는 긴급조치 피해자 김모씨와 가족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정부가 약 2억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1심 배상액보다 약 1억1500만원 늘린 금액이다.

김씨는 1975년 6월28일 서울의 한 사립대 3학년으로 재학하며 유신체제를 비판하고 대한민국 헌법 폐지를 주장하는 내용의 간행물을 제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같은해 12월27일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해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판단해 김씨에게 징역 10개월 및 자격정지 10개월을 선고했다.

이후 항소심은 1976년 5월27일 김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0개월을 선고했고, 김씨와 검찰 모두 상고하지 않아 같은해 6월4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조사 결과 당시 김씨는 1975년 6월5일 모 다방에서 수사관들에 의해 체포됐고, 연행 과정에서 무차별적인 구타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조사 과정에서 수사관들은 북한과의 연계 내지 배후에 관한 자백을 강요하며 극심한 고문과 가혹행위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체포돼 기소되기까지 가족 및 변호인을 접견하거나 변호 조력을 받을 수 없었고, 가족들은 구속 이후에도 아무런 통지를 받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체포된 이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되기까지 329일 동안 구금을 당했다.

김씨는 지난 2011년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고, 2013년 5월 재심이 결정됐다. 같은해 7월 법원은 적용법령인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무효이므로 '범죄로 되지 않은 때'라고 판단해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김씨는 형사보상을 청구했고, 2013년 9월 구금에 대한 보상금 5922만원이 결정돼 이를 수령했다. 앞서 김씨는 2005년 민주화운동 보상금 1786만원을 수령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김씨는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사단법인 긴급조치 사람들이 지난 2018년 8월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긴급조치 등 과거사 관련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08.30. park7691@newsis.com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사단법인 긴급조치 사람들이 지난 2018년 8월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긴급조치 등 과거사 관련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08.30. [email protected]
1심은 헌재가 2018년 8월 내린 '민주화보상법상 보상금 등에 적극적·소극적 손해만 포함할 뿐,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판단 취지를 따라 생활지원금을 수령했어도 정신적 손해인 위자료는 지급해야 한다고 봤다.

또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 등의 위법행위와 김씨 유죄 판결 및 그에 따른 복역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며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소멸시효를 6개월로 봐 이후에 청구한 김씨 가족의 위자료는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항소심은 소멸시효를 3년으로 봐야 한다며 국가 배상 책임을 올렸다. 이는 헌재가 2018년 8월 '과거사 사건의 국가배상 청구권 소멸시효를 6개월로 제한하는 것이 부적합하고, 재심판결 확정일로부터 3년 이내에 청구하면 문제없다'고 한 결정을 따른 것이다.

항소심은 "'중대한 인권침해사건' 중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사건의 경우 손해배상 청구권자는 재심으로 기존 유죄 확정 판결이 취소된 후에야 불법행위 요건을 인식할 수 있다"며 "피해자 등이 재심 무죄 판결 날로부터 3년 이내에 국가 배상을 청구하면 단기소멸시효를 지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긴급조치 피해자 사건에서 고등법원이 소멸시효를 3년으로 적용한 최초의 판단이다. 그동안 항소심은 헌재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적용한 소멸시효 6개월을 적용해 판단을 내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이번 판결에 대해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구제가 늦어지는 경우 지연된 정의로서 정의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헌재의 결정 취지를 존중해 대법원이 긴급조치 피해자 구제를 위해 적극 결단해줄 것으로 촉구한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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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과거사 사건 소멸시효 3년"…헌재결정후 첫 판단

기사등록 2020/02/12 16:00:19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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