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대로]미국·이란에 제동 건 '전시국제법'…전쟁에도 품격이 있다

기사등록 2020/01/13 18:50:00

무력분쟁 시의 문화재의 보호를 위한 헤이그 협약 주효

헤이그 제2협약, 이란의 미사일 공격 전 통보에 영향

화학무기, 세균무기, 환경무기 등 전쟁 시 사용 금지

확인사살이나 상대방을 속이는 행위도 금지돼있어

김병렬 "아무리 전쟁이라도 비겁한 수단 자제해야"

[워싱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이란의 이라크 주재 미군 기지 미사일 공격에 관해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이라크 주둔 미군 기지 공격에 따른 미국인 사상자는 없었다면서 현 단계에서는 무력 대응 대신 이란에 추가 경제 제재를 부과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강력한 제재는 이란이 행동을 바꿀 때까지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2020.01.09.
[워싱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이란의 이라크 주재 미군 기지 미사일 공격에 관해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이라크 주둔 미군 기지 공격에 따른 미국인 사상자는 없었다면서 현 단계에서는 무력 대응 대신 이란에 추가 경제 제재를 부과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강력한 제재는 이란이 행동을 바꿀 때까지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2020.01.09.

※ '군사대로'는 우리 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하는 연재 코너입니다. 박대로 기자를 비롯한 뉴시스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군의 이모저모를 매주 1회 이상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전면전으로 번지지 않았다. 미국이 이란의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을 폭사하고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기지에 미사일 공격을 단행할 때만 해도 양국이 대규모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지만 다행히 전면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란 문화재도 공격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언급하는 등 전면전을 불사할 듯한 자세를 취했지만 결국 경제 제재 강화 선에서 후속 조치를 일단 마무리했다. 이란 역시 미사일 공격 시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발사 사실을 귀띔하는 등 수위를 조절했다.

혹시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미사일 공격에 발끈해 이란 문화재를 파괴했다면 이란 지도자들은 즉각 보복했을 것이고 실제로 전면전이 펼쳐졌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폭주를 제어한 것은 다름 아닌 전쟁법이라고도 불리는 전시국제법(戰時國際法)이었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유네스코(UNESCO)는 1956년 발효된 국제법인 '무력분쟁 시의 문화재의 보호를 위한 헤이그 협약'을 근거로 미국에 자제를 당부했다. 미국과 이란 모두 이 협약에 가입해있으니 협약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유네스코의 경고를 비롯해 국제 사회의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미국은 문화재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 발 물러서야 했다.

이란이 미사일 공격 전 이라크 등에 공격 사실을 미리 알려 미군이 대피할 시간을 준 것 역시 전시국제법에 규정된 내용이다. 

육전의 법 및 관습에 관한 협약(헤이그 제2협약) 26조는 '공격군대의 지휘관은 습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포격을 개시하기 전에 관계자에게 경고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란의 미사일 공격 전 통보는 이 내용에 입각한 행위라 해석될 수 있다.

이처럼 전시국제법은 은연중에 영향력을 발퓌하고 있다. 힘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국제 정세 속에 전시국제법은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전시국제법은 야만적인 행위로 인류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를 하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제동 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

전시국제법은 전쟁 시 쓰면 안 되는 무기의 종류, 그리고 전쟁 때라도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비교적 세세히 규정하고 있다.

전쟁 때라도 엑스레이에 탐지되지 않는 파편을 발생시키는 무기는 사용이 금지(탐지 불능한 파편에 관한 의정서)된다. 파편을 맞은 피해자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안겨주는 무기를 금지하는 것이다.

[테헤란=AP/뉴시스]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왼쪽에서 4번째)가 6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카셈 솔레이마니 중장추모 기도회를 직접 집전하고 있다. 솔레이마니는 지난 3일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숨졌다. 2020.01.06
[테헤란=AP/뉴시스]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왼쪽에서 4번째)가 6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카셈 솔레이마니 중장추모 기도회를 직접 집전하고 있다. 솔레이마니는 지난 3일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숨졌다. 2020.01.06
화학무기의 개발, 생산, 획득, 비축, 보유, 사용, 인도는 금지(화학무기의 개발·생산·비축·사용금지 및 폐기에 관한 협약)돼있다.

세균무기(생물무기)와 독소무기의 획득과 보유 역시 금지(세균무기 및 독소무기의 개발·생산 및 비축의 금지와 그 폐기에 관한 협약)되고 있다.

지진, 해일, 해류, 오존층 등 광범위하고 지속적이며 심각한 효과를 지닌 환경조작 기술을 공격 수단으로 쓰는 것도 금지사항(환경변경기술의 군사적 또는 기타 적대적 사용의 금지에 관한 협약)이다.

아울러 전쟁법은 전의를 상실한 자에 대한 공격, 즉 확인사살도 원칙적으로는 금지(제네바 협약 중 국제적 무력충돌의 희생자 보호에 관한 의정서)된다. 항복할 의사를 분명하게 밝힌 자나 부상 또는 질병으로 의식불명이 됐거나 행동불능상태가 된 자들은 적대행위나 도주를 시도하지 않는 한 공격 목표가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전장에서 상대방을 속이는 배신행위가 금지되는 점이 특이하다. 제네바 협약 중 국제적 무력충돌의 희생자 보호에 관한 의정서(제1의정서)는 적을 배신행위에 의해 죽이거나 상해를 주거나 포획하는 것을 금지한다.

금지된 배신행위는 ▲정전이나 항복의 기치 하에서 협상할 것처럼 위장하는 것 ▲상처나 병으로 무능력한 것처럼 위장하는 것 ▲민간인이나 비전투원의 지위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 ▲국제연합 또는 중립국, 비전쟁 당사국의 부호, 표창, 제복을 사용함으로써 피보호 자격으로 위장하는 것 등이다.

김병렬 국방대 명예교수는 저서 '지휘관을 위한 전쟁법'에서 "아무리 승리만을 지상의 목표로 삼는 전쟁이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래로부터 우물에 독을 풀거나 독화살을 사용하는 등 비겁하거나 잔혹한 수단의 사용은 자제해왔다"며 "1868년 세인트 피터스부르크 선언은 적을 무력화시키는 데 불필요한 고통을 줘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 이후 1899년과 1907년의 만국평화회의, 양차 세계대전 이후 각종 국제조약을 통해 전투수단을 제한하는 많은 내용이 입법화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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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대로]미국·이란에 제동 건 '전시국제법'…전쟁에도 품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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