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롤스로이스, 마이바흐와 함께 '세계 3대 명차'로 꼽히는 '벤틀리'가 올해 설립 100주년을 맞았다. 영국에서 1919년 탄생한 '벤틀리'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등 굴곡진 시대를 겪으면서도 '수작업'이라는 고집을 내려놓지 않으며 담담히 역사를 써내려갔다.
1888년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벤틀리의 창업자 월터 오웬 벤틀리는 이동수단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성장했다.그는 9살 때 중고자전거를 사서 해체하며 자전거가 어떻게 작동하는 지를 알아냈고, 클리프톤대학에 다니던 16살에는 증기기관차 디자이너 헨리 이바트에게 일을 배우기 위해 영국철도청에서 견습으로 일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그는 "차는 위험하고, 정교하지 못하며, 시끄럽다"고 자동차를 무시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벤틀리는 자신이 직접 좋은 차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1919년 '벤틀리모터스'를 설립했다. 벤틀리는 프랑스 DFS모델을 영국에 수입해 판매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월터 오웬 벤틀리는 1920년대 레이싱 엔진 개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월터 오웬 벤틀리의 목표는 '빠른 차, 좋은 차, 동급 최고의 차'였다. 그 결과 80mph의 속도를 내는 최초의 3리터 85bhp 벤틀리 엔진이 탄생했다.
벤틀리는 1921년 9월 첫 차를 생산, 1050 파운드에 노엘 반 랄트에게 판매했다. 이 차에는 벤틀리의 특징적인 라디에이터 케이싱과 '플라잉 B' 엠블럼이 적용됐다.
'플라잉 B'의 가장 큰 특징은 '불균형'이다. 벤틀리 빈티지 모델에 적용된 엠블럼의 깃털은 왼쪽 13개, 오른쪽 14개로 오른쪽과 왼쪽의 깃털 숫자가 다르다. 한때 벤틀리 엠블럼은 양측 10개로 수정됐지만, 현재 엠블럼의 경우 왼쪽 10개, 오른쪽 11개로 좌우 개수가 다르다.
벤틀리가 비대칭적 엠블럼을 만든 이유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벤틀리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지키고 불법복제를 막기위한 전략적 디자인이라는 분석에 가장 힘이 실린다. 당시에도 벤틀리는 명품 자동차였고, 이를 복제하고자 하는 업체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비대칭 디자인을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플라잉 B'는 초창기 3가지 색상으로 운영됐다. 일반모델에는 파랑색, 스포츠모델에는 빨강색, 최상급버전인 슈퍼스포츠모델에는 녹색을 적용, 엠블럼에 따라 등급을 알 수 있게 했다. 현재는 2가지 색상이다. 현재 벤틀리는 V8과 W12의 두 가지 엔진으로 운영되며, V8에는 빨강색, W12에는 검은색 엠블럼을 각각 적용하고 있다.
벤틀리는 인디아나폴리스, 맨섬, 브룩랜즈에서 최고 속도 및 내구성 기록을 여러번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벤틀리는 1920년대 수차례 르망 레이스에서 우승하며, 벤틀리의 명성을 높였다.
하지만 1930년대 벤틀리는 심각한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1920년대 말 발생한 경제 대공황을 견디지 못한 벤틀리는 1931년 롤스로이스에 인수됐다. 롤스로이스는 비대칭적 벤틀리 엠블럼을 수정해 양쪽에 동일한 수의 깃털을 갖도록 했다.
더비로 생산시설을 옮긴 벤틀리는 민첩성과 럭셔리, 파워와 고요함이라는 두 브랜드 최고의 특성을 결합한 새로운 3.5 리터 '사일런트 스포츠카'를 생산했다. 벤틀리 총책임자였던 울프 바나토는 기차가 칼레에서 출발해 깐느에 도착하는 것 보다 자신이 더 빨리 런던에서 깐느까지 갈 수 있다며 100파운드를 걸고 내기를 했고, 6.5리터 스피드식스 세단으로 여유롭게 기차를 따돌리고 내기에 성공하기도 했다.
1888년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벤틀리의 창업자 월터 오웬 벤틀리는 이동수단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성장했다.그는 9살 때 중고자전거를 사서 해체하며 자전거가 어떻게 작동하는 지를 알아냈고, 클리프톤대학에 다니던 16살에는 증기기관차 디자이너 헨리 이바트에게 일을 배우기 위해 영국철도청에서 견습으로 일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그는 "차는 위험하고, 정교하지 못하며, 시끄럽다"고 자동차를 무시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벤틀리는 자신이 직접 좋은 차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1919년 '벤틀리모터스'를 설립했다. 벤틀리는 프랑스 DFS모델을 영국에 수입해 판매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월터 오웬 벤틀리는 1920년대 레이싱 엔진 개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월터 오웬 벤틀리의 목표는 '빠른 차, 좋은 차, 동급 최고의 차'였다. 그 결과 80mph의 속도를 내는 최초의 3리터 85bhp 벤틀리 엔진이 탄생했다.
벤틀리는 1921년 9월 첫 차를 생산, 1050 파운드에 노엘 반 랄트에게 판매했다. 이 차에는 벤틀리의 특징적인 라디에이터 케이싱과 '플라잉 B' 엠블럼이 적용됐다.
'플라잉 B'의 가장 큰 특징은 '불균형'이다. 벤틀리 빈티지 모델에 적용된 엠블럼의 깃털은 왼쪽 13개, 오른쪽 14개로 오른쪽과 왼쪽의 깃털 숫자가 다르다. 한때 벤틀리 엠블럼은 양측 10개로 수정됐지만, 현재 엠블럼의 경우 왼쪽 10개, 오른쪽 11개로 좌우 개수가 다르다.
벤틀리가 비대칭적 엠블럼을 만든 이유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벤틀리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지키고 불법복제를 막기위한 전략적 디자인이라는 분석에 가장 힘이 실린다. 당시에도 벤틀리는 명품 자동차였고, 이를 복제하고자 하는 업체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비대칭 디자인을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플라잉 B'는 초창기 3가지 색상으로 운영됐다. 일반모델에는 파랑색, 스포츠모델에는 빨강색, 최상급버전인 슈퍼스포츠모델에는 녹색을 적용, 엠블럼에 따라 등급을 알 수 있게 했다. 현재는 2가지 색상이다. 현재 벤틀리는 V8과 W12의 두 가지 엔진으로 운영되며, V8에는 빨강색, W12에는 검은색 엠블럼을 각각 적용하고 있다.
벤틀리는 인디아나폴리스, 맨섬, 브룩랜즈에서 최고 속도 및 내구성 기록을 여러번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벤틀리는 1920년대 수차례 르망 레이스에서 우승하며, 벤틀리의 명성을 높였다.
하지만 1930년대 벤틀리는 심각한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1920년대 말 발생한 경제 대공황을 견디지 못한 벤틀리는 1931년 롤스로이스에 인수됐다. 롤스로이스는 비대칭적 벤틀리 엠블럼을 수정해 양쪽에 동일한 수의 깃털을 갖도록 했다.
더비로 생산시설을 옮긴 벤틀리는 민첩성과 럭셔리, 파워와 고요함이라는 두 브랜드 최고의 특성을 결합한 새로운 3.5 리터 '사일런트 스포츠카'를 생산했다. 벤틀리 총책임자였던 울프 바나토는 기차가 칼레에서 출발해 깐느에 도착하는 것 보다 자신이 더 빨리 런던에서 깐느까지 갈 수 있다며 100파운드를 걸고 내기를 했고, 6.5리터 스피드식스 세단으로 여유롭게 기차를 따돌리고 내기에 성공하기도 했다.

벤틀리는 세계2차 대전 이후 본사를 크루로 이전하며 고도로 숙련된 엔지니어와 정비공들을 영입했다. 첨단 기술과 제조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벤틀리는 최초로 한계까지 주행할 준비가 완료된 자동차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기본 섀시나 코치 빌트 바디로서가 아닌 벤틀리로서 최초로 만든 차가 바로 '마크6'다.
1952년에는 최고속도가 120mph에 달하는 뮬리너 바디의 쿠페인 R-타입 '컨티넨탈'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 차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4인승차였다. 1957년 벤틀리는 엄청난 기대를 받았던 4도어 벤틀리 컨티넨탈 플라잉 스퍼를 출시했으며, 1959년에 벤틀리 S2를 발표했다. 1965년에는 벤틀리팬들 사이에서 '벤틀리 스포츠카 헤리티지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T시리즈'가 출시됐다. 이 차는 1984년 '컨티넨탈'로 이름을 바꾼다.
월터 오웬 벤틀리는 1971년 8월 향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롤스로이스와 뮬리너와 같은 파트너들과의 관계는 벤틀리 DNA에 W.O 벤틀리가 원했을 법한 세련된 럭셔리라는 흔적을 남겼다. 1970년대 V8엔진은 새롭게 엔지니어링돼 6.75리터의 배기량을 갖추게 됐고 현재까지도 그 사이즈를 유지하고 있다.
1980년대에 벤틀리는 레인지와 모델라인을 갖추게 됐다. 벤틀리는 1982년 정지상태에서 100km/h(60mph)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7초밖에 안 되는 고성능 '터보' 뮬산을 출시했고, 1985년에는 뮬산이 더 발전된 터보 R로 재탄생돼 당대 가장 빠른 벤틀리 로드카가 됐다.
1998년 벤틀리는 폭스바겐그룹의 품에 안기며 롤스로이스와의 67년 동업을 끝낸다. 폭스바겐은 벤틀리에 더 많은 자원과 기술을 투입했고, 벤틀리의 정체성을 존중하기 위해 엠블럼 깃털의 비대칭성을 복원했다.
2001년 벤틀리는 2대의 EXP 스피드 8으로 다시 르망 레이싱을 시작했다. 3위로 경주를 마친 벤틀리팀은 71년만에 벤틀리를 다시 포디움에 올려놓았다.
2003년에는 근대 벤틀리의 첫 모델인 컨티넨탈 GT가 출시됐다. R-타입에서 영감을 얻은 최초의 컨티넨탈 GT은 모던 럭셔리 그랜드 투어러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그먼트를 만들어냈다. 2009년에는 벤틀리모터스 설립 9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올 뉴 벤틀리 뮬산'이 출시됐고, 2015년에는 최초의 럭셔리 SUV이자 벤틀리의 4번째 모델 라인 '벤테이가'가, 2018년에는 완전히 새로워진 3세대 컨티넨탈 GT이 출시됐다.
자동차업계는 벤틀리가 100년의 역사 속에서 철학을 계승하며 세계 최고의 명차 반열에 올라선 이유를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멈추는 곳에서 시작한다(We Start Where Others Stop)'는 표현으로 대변되는 고유의 수작업 생산방식에서 찾는다.
벤틀리코리아는 "벤틀리가 기계를 통한 대량생산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디테일들을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전통적인 코치빌더(과거 수작업을 통해 귀족들을 위한 고급 마차를 주문 생산하던 장인)의 전통을 철저히 계승하고 있는 장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며 "벤틀리의 모든 엔진에는 엔진 넘버와 제작에 참여한 엔지니어의 서명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여느 수퍼카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뜨거운 심장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음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1952년에는 최고속도가 120mph에 달하는 뮬리너 바디의 쿠페인 R-타입 '컨티넨탈'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 차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4인승차였다. 1957년 벤틀리는 엄청난 기대를 받았던 4도어 벤틀리 컨티넨탈 플라잉 스퍼를 출시했으며, 1959년에 벤틀리 S2를 발표했다. 1965년에는 벤틀리팬들 사이에서 '벤틀리 스포츠카 헤리티지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T시리즈'가 출시됐다. 이 차는 1984년 '컨티넨탈'로 이름을 바꾼다.
월터 오웬 벤틀리는 1971년 8월 향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롤스로이스와 뮬리너와 같은 파트너들과의 관계는 벤틀리 DNA에 W.O 벤틀리가 원했을 법한 세련된 럭셔리라는 흔적을 남겼다. 1970년대 V8엔진은 새롭게 엔지니어링돼 6.75리터의 배기량을 갖추게 됐고 현재까지도 그 사이즈를 유지하고 있다.
1980년대에 벤틀리는 레인지와 모델라인을 갖추게 됐다. 벤틀리는 1982년 정지상태에서 100km/h(60mph)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7초밖에 안 되는 고성능 '터보' 뮬산을 출시했고, 1985년에는 뮬산이 더 발전된 터보 R로 재탄생돼 당대 가장 빠른 벤틀리 로드카가 됐다.
1998년 벤틀리는 폭스바겐그룹의 품에 안기며 롤스로이스와의 67년 동업을 끝낸다. 폭스바겐은 벤틀리에 더 많은 자원과 기술을 투입했고, 벤틀리의 정체성을 존중하기 위해 엠블럼 깃털의 비대칭성을 복원했다.
2001년 벤틀리는 2대의 EXP 스피드 8으로 다시 르망 레이싱을 시작했다. 3위로 경주를 마친 벤틀리팀은 71년만에 벤틀리를 다시 포디움에 올려놓았다.
2003년에는 근대 벤틀리의 첫 모델인 컨티넨탈 GT가 출시됐다. R-타입에서 영감을 얻은 최초의 컨티넨탈 GT은 모던 럭셔리 그랜드 투어러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그먼트를 만들어냈다. 2009년에는 벤틀리모터스 설립 9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올 뉴 벤틀리 뮬산'이 출시됐고, 2015년에는 최초의 럭셔리 SUV이자 벤틀리의 4번째 모델 라인 '벤테이가'가, 2018년에는 완전히 새로워진 3세대 컨티넨탈 GT이 출시됐다.
자동차업계는 벤틀리가 100년의 역사 속에서 철학을 계승하며 세계 최고의 명차 반열에 올라선 이유를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멈추는 곳에서 시작한다(We Start Where Others Stop)'는 표현으로 대변되는 고유의 수작업 생산방식에서 찾는다.
벤틀리코리아는 "벤틀리가 기계를 통한 대량생산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디테일들을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전통적인 코치빌더(과거 수작업을 통해 귀족들을 위한 고급 마차를 주문 생산하던 장인)의 전통을 철저히 계승하고 있는 장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며 "벤틀리의 모든 엔진에는 엔진 넘버와 제작에 참여한 엔지니어의 서명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여느 수퍼카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뜨거운 심장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음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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