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판 매체, 벌금·사무실 임대료 상승으로 압박"
푸틴 체제 붕괴 꿈꾸는 야권…대안 없는 전략만 계속
"푸틴, 임기 후에도 어떤 형태로든 권력 잡고 있을 것"
※편집자주=1990년 9월30일 일제의 강요로 단절된 지 85년여 만에 한러 외교 관계가 정상화됐다. 2020년은 양국 외교관계 수립 30주년을 맞는 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을 '한·러 상호 교류의 해'로 지정하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겠다고 합의했다. 과연 우리와 30년을 함께 한 러시아는 어떤 나라인가. 뉴시스는 11월13일부터 26일까지 러시아를 방문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9 KPF 디플로마 [러시아전문가] 과정 참여 후 제작됐다.
[모스크바=뉴시스] 양소리 기자 =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 시절까지 합하면 올해로 19년째 러시아의 최고 권력자 자리에 앉아있다. 러시아의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 푸틴은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지난 9월8일, 서구권 매체를 중심으로 '푸틴의 몰락' '크렘린의 패배'라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민심의 바로미터인 모스크바 시의회 선거에서 푸틴이 이끄는 통합러시아당이 기존 의석의 3분의 1을 잃으면서다. 속단은 이르다. 이들이 차지하는 의석수는 45석 중 26석으로 여전히 과반을 넘는다.
과연 지금 러시아는 푸틴 체제의 균열을 말할 수 있는 단계인가?
최근 모스크바에서 소설 '상처받은 영혼들'의 저자 알리사 가니에바를 만났다. 그는 2015년 러시아 부커상의 최종 후보에 오르며 영국 가디언지에서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러시아 문화예술인으로 꼽힌 인물이다. 현재 러시아 일간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의 기자이기도 하다. 정치인이자 언론인인 알리나 비슈노프카야, 프리랜서 사진기자 빅토리아 이블레바가 이 자리에 함께 했다.
◇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 러시아 언론을 옥죄다
현재 러시아의 대형, 이른바 메이저 언론사들은 소비에트 연방 시절 창간된 매체를 뿌리로 한다. 소련이 해체된 뒤 이름을 바꿔 새로 태어난 언론사들이다. 대부분 관영으로 운영된다. 정부가 이들을 운영하는 방식에서도 관영매체의 특징이 묻어난다.
가니에바는 "푸틴 행정부에서 언론과 미디어를 담당하는 '알렉세이 그로모프'라는 사람이 있다. 그의 주재로 매주 회의가 열린다. 중대형 언론사, 방송사의 편집장, 혹은 편집국장이 회의에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이 회의에서 한 주간 다뤄야할 주요 이슈, 그리고 해당 이슈의 어떠한 부분이 초점을 맞춰야하는지 결정된다.
가니에바가 소속된 '네자비시마야 가제타'는 소련이 해체된 후 설립된 비(非)관영매체다. '네자비시마야'는 우리말로 독립, '가제타'는 신문이라는 뜻이다. 그의 '독립신문'은 과연 정부의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가. 가니에바의 답은 "그렇지 않다"다.
가니에바는 "내가 일하는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의 편집장은 그로모프의 주간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라면서도 이것이 정권과 시장 권력에서 완전히 자유롭다는 뜻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권력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않거나 협의하지 않을 때, 갑작스럽게 사무실 임대료가 올라가거나 당국에서 나와 조사를 한 뒤 벌금을 부과한다. 이러한 경제적 압박을 못 이기면 결국 폐간의 위기에 몰린다"고 말했다.
◇푸틴의 안정적 장기집권체제
공공연한 언론 탄압은 푸틴의 안정적인 장기 집권 체제의 뿌리다. 사회와 국가 기관을 비판하지 않는 언론은 순종적인 유권자를 잉태한다.
지난 8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는 6만명의 시위대가 모여 공정선거를 촉구하며 정부를 비판했다. 2011년 총선 부정선거 의혹 시위 이후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였다. 통합러시아당의 의석은 기존 40석에서 25석으로 크게 줄었다.
푸틴의 정적이라고 불리는 러시아의 대표적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는 선거 결과를 놓고 "현명한 투표의 환상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과연 이를 '변화'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비슈노프카야는 "절대 야권 인사가 많이 당선됐다고 볼 수 없다. 정말 무의미한 선거였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그의 '무의미하다'는 평가의 이유는 첫 번째, 야권의 불확실한 방향성 때문이다. 야권을 이끈 나발니의 투표 전략은 '현명한 투표'였다. 비슈노프카야는 "나발니의 선거 운동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야권 후보를 뽑아라'에 집중돼 있었다. 푸틴의 통합러시아당만 아니면 된다, 심지어 공산당에 표를 던져도 된다는 식이었다"며 "특정 누군가만 아니면 된다는 지침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안이 없는 '푸틴 체제 붕괴' 전략이 결국 "푸틴만 아니면 된다"로 야권을 묶은 셈이다. 그러나 방향을 제시하지 하지 못한 정치인은 빠르게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다.
당선된 이들이 과연 정부에 맞설 수 있는 진정한 야권인사로 분류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있다. 비슈노프카야는 "당선자 중 (야권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친정부 인사도 있고, 중앙권력과 일정부분 타협을 한 사람도 있다. 선거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말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며 러시아 시민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왔다'는 말에 "동시에 강력한 경찰 권력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거리로 나온 수많은 시위 인파가 체포됐다"고 말을 이었다.
비슈노프카야는 "자신의 가치를, 이익을 (추구하고) 혹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광장에 나온 이들이 체포되는 모습이 전파를 타며 이러한 행위 자체가 허무해졌다. 결국 시위 전보다 상황이 악화됐다"고 부연했다.
러시아 선관위에 따르면 모스크바 시의회 선거의 투표율은 21.5%에 불과했다. 변화라고 정의하기엔 부족한 수치다. 여전히 푸틴의 힘은 공고하다.
가니에바는 "상당수 국민은 푸틴을 지지한다. 정부는 (언론을 통해) 꾸준히 소련 붕괴 직후 힘들었던 90년대의 악몽을 회상시킨다. 자칫하면 그 힘든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고 했다.
그는 '2024년 임기가 끝난 후에도 푸틴의 권력을 계속될 것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어떤 형태로든 권력을 잡고 있을 것이라는 데 일말의 의심도 없다. (총리직에 앉았다가 대통령직을 되찾은) 2008년 당시 방법을 사용할지, 새 자리를 만들지는 모르겠다"고 부연했다.
◇무엇을 위한 보도인가
체포와 고문, 죽음. 이들과 진행한 3시간이 넘는 인터뷰에서 이같은 단어는 매우 빈번하게 등장했다. 과연 이들은 무엇을 위해 보도하는가.
가니에바는 "러시아 정치는 문학과 문화 등 러시아가 만들어온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폐쇄적인 국가, 닫혀 있는 국가는 절대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지금의 행정부가 만들어 놓은 부정적인 관행들은 지금 러시가가 만들어가는 긍정적인 요소까지 다 덮어버리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래서 작가이자 기자인 가니에바의 '기록'은 닫힌 나라를 '여는 행위'이자 오늘날 러시아의 가치를 '지키는' 행위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돌아온 답변은 "정상 국가"였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야권 인사가 '푸틴이 아니면 된다'를 외치는 상황에서 '정상'으로의 길은 지난하기만 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