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24일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에 따르면,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아닌 불교승려 신미(信眉)가 창제했다. 이는 허위사실 유포다.
‘조선왕조실록’에 증거가 있다.
‘문종 즉위년 경오(1450) 4월6일(기묘), 영의정 하연 등과 신미의 관직 제수와 영응대군의 거처 등을 의논하다’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됐다.
임금이 영의정 하연, 좌의정 황보인, 우의정 남지, 좌찬성 박종우, 우찬성 김종서, 좌참찬 정분, 우참찬 정갑손을 불러 도승지 이사철에게 명령해 의논케 하기를, “대행왕(大行王; 세종대왕)께서 병인년(1446; 훈민정음 반포년도)부터 비로소 신미의 이름을 들으셨는데, 금년(1450)에는 효령대군의 사제(私第)로 옮겨 거처해 정근(精勤)할 때 불러 보시고 우대하신 것은 경들이 아는 바이다.”
요약하면, 문종 임금이 3정승을 비롯한 주요 신하들을 불러놓고 말하기를 “대행왕(왕이 죽은 뒤 시호를 올리기 전 높여 이르던 말), 즉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1446년에 비로소 신미라는 이름을 알았다”는 얘기다. 세종이 신미를 처음 접견한 때는 효령대군의 사저로 거처를 옮긴 1450년(돌아가신 연도)이라고 아들 문종이 증언한 것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28자를 단독 창제한 해는 1443년이다. 신미가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거나, 세종을 도와 창제했다는 말은 모두 거짓이다.
‘신미’라는 이름은 조선왕조실록에 66회 나온다. 세종 왕비 소헌왕후의 장례기간인 1446년 5월27일 처음 등장한다. 소헌왕후 사후 1주간의 불사(佛事)를 잘한 소윤(少尹) 정효강이라는 사람이 “우리 화상은 비록 묘당(廟堂)에 처하더라도 무슨 부족한 점이 있을손가”라며 신미를 칭찬한 것이 실록의 최초 기록이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이렇게 일종의 가짜뉴스를 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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