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간찰연구회' 창립 20주년 특별전 26일 개막
'옛 문인들의 편지' 70여점 학고재갤러리서 전시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한문으로 물 흐르듯 시원하게 쓴 초서(草書)가 인상적이다. 정약용(1762~1836)이 19세 때 쓴 편지로 수신인은 미상이다. 앞부분은 지난 여름 석 달 사이에 두 형수의 상을 당하여 몹시 애통한 심정과 아버지께서 담환(痰患)을 앓으면서도 공무로 인해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애타는 심정을 전하였다. 중반부는 다산이 어릴 적에 배운 적이 있는 양근(楊根)에 사는 권씨(權氏) 어른이 어떤 질병을 앓고 있는데, 증세를 기록한 종이를 보내니 그에 맞는 약재 이름을 알려 달라는 내용이다. 이때 다산의 부친 정재원(丁載遠, 1730~1792)은 예천 군수로 재임하고 있었다.
내용은 이렇다.
"초여름에 주신 답장이 지금까지 위안이 되는데, 어느덧 세모가 되어 그리워하는 심정 더욱 간절합니다. 생각건대 요즈음에 조용히 정양하시는 건강이 신의 가호로 복을 누리시리라 생각하니, 그리운 심정을 가눌 길 없습니다.
시생은 여름 석 달 사이에 거듭 두 형수의 상을 당하여 저의 심정이 이미 몹시 애닯고 괴로운데, 가친(家親)께서 담환(痰患)으로 추위를 맞아 더욱 심해졌는데도 공무가 번잡하여 조섭을 제대로 하지 못하시니, 저의 근심을 어찌 말로 하겠습니까."
239년이 지난 다산의 이 '애끓는 편지'가 살아났다. 글자도 '보는 시대'여서인지, 필획을 생략하고 빠르게 써내려간 '초서 간찰'은 리듬감 넘치는 '그래픽 아트'같다.
한국고간찰연구회 창립 20주년 특별전 '옛 문인들의 편지'전에 공개한다. 오는 26일부터 서울 삼청로 학고재 갤러리에서 8월 4일까지 열린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이태호 미술사학자(명지대 초빙교수)등 27명 고간찰연구회 회원들이 간직하고 있는 소장품 70여점을 선보인다.
고간찰은 대개 초서로 쓰여 있어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렵지만, 편지이기 때문에 보낸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삶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야말로 생활사의 생생한 자료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필체와 그 시대에 유행했던 서체를 보여주는 서예사의 한 분야이다.
이태호 명지대 초빙 교수는 "우리 연구회가 가진 특징이라면 그간 많은 고간찰과 고문헌을 읽어 왔다는 점"이라면서 "이 전시는 어떤 주제를 가지고 기획된 것이 아니어서 구성이 다소 미흡하고 누락된 작가도 적지 않지만, 선인들의 필적을 소중히 모은 서첩과 문인들의 모나지 않은 미감을 보여주는 시전지도 음미해 볼 만하다"고 소개했다.
전시와 함께 '내가 읽은 옛 편지'(2019, 다운샘)도 출간기념회도 연다. 회원들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회원들이 읽었던 옛 사람의 간찰 중에서 일반인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편지를 골라 대중서로 펴냈다.
유홍준 한국고간찰연구회 이사장은 "간찰을 윤독하면서 생활사의 귀중한 자료임을 깨달았다"면서 이번에 펴낸 '내가 읽은 옛 편지'는 지난 20년을 한결같이 공부해 온 보람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어느덧 성년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아가 일반 독자와 만난다는 성장의 기쁨도 있다"고 밝혔다.
"옛 사람의 간찰은 대개 초서로 쓰여 있어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렵지만 간찰이란 편지이기 때문에 보낸 사람과 받는 사람의 사이에서 일어난 삶의 체취가 살아 있다. 이 책을 계기로 옛 사람들의 간찰에 보다 많은 관심이 일어나고 간찰을 통해 보는 생활사의 단면을 통해 조상들의 마음을 살펴보고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다."
'한국고간찰연구회'는 옛 사람의 편지를 읽으면서 초서를 공부하는 연구모임이다. 1999년 3월부터 매월 마지막 일요일에 모여서 어렵다는 초서를 타파한다는 뜻에서 '말일파초회(末日破草會)'라고도 부른다.2012년 11월 사단법인 한국고간찰연구회로 법인 등록했다.
사단법인 한국고간찰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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