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여행중 깨달음...신작 풍경 화려한 색채로 꿈틀
"동양화 붓으로 그린 풍경화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 자신감
3년만의 개인전...서울 경희궁로 마리갤러리서 5일 개막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지난해 호주 중앙사막의 울룰루, 그랜드캐니언, 세도나, 요세미티, 캘리포니아 등 미국 서부지역 광활한 대자연을 여행한 그가 달라졌다. 수묵, '검은 단색화' 같던 그의 작업이 화려함으로 눈을 떴다. 불타는 노을, 초록 나무가 빽빽한 숲, 4월의 남도 풍경등은 색채의 향연이다. 마치 흑백 TV에서 컬러 TV로의 전환 같다.
변신한 작품처럼 이름도 바꿨다.
"외국에서 제 이름 석자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릴적 친구들이 불렀던 이름 끝자 춘이를 'chuni'라고 영어 이름으로 썼더니 그제서야 쉽고 리드미컬하게 불려지더라고요."
지난해 '추니박'으로 참여한 미국 LA 아트페어 ‘아시아 잉크페인팅 특별전’은 그에게 새로운 힘을 줬다.
"세계 미술속에 모필로 작업하는 것을 외국에 보여주고 싶었던" 자신감은 뿌듯한 자부심을 안겼고, 외국에서 한국화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당시 그가 내건 34m 거대한 '수묵 산수풍경화’는 압도적인 크기 만큼 감탄이 쏟아졌다. 호쾌하고 자유분방하며 독창적인 붓질과 '라면 준법(皴法)'으로 무장한 작품은 '이게 바로 단색화'라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안주할수 없다. “어제 그린 그림은 오늘 생각하지 말자”며 30여년간 한국화가로 진격하고 있는 박병춘(54)작가다.
지난 1년간 미국 여행을 마치고 국내에서 3년만에 여는 개인전은 "나는 살아있다"고 외치는 소리없는 아우성처럼 보인다.
"한국화가 죽었다고요? 저는 한국화를 하면서 힘든적이 없었어요. 그림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고 작업실도 짓고 살았습니다. 언젠가부터 한국화 시장이 힘들다고들 몰아세우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까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서울 신문로 '레스토랑 미술관' 마리 갤러리에서 5일부터 신작을 공개한다. '낯선, 이국 풍경 - 가보지 않은 길'을 타이틀로 50여점을 선보인다.
흑백에서 컬러로 변한 작품은 다채로운 색감과 함께 꿈틀꿈틀 기운생동함이 있다. 한지에 아크릴 물감, 여타 풍경화와 크게 다르지 않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거침없는 필법의 구사가 압권이다. 동양화 붓으로 그린다.
"내겐 재료적인 건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 필법이 익혀져 있으니까 경험을 그려보자는 의지였어요"
미국 서북부 오리건 주(Oregon 州)에서 체험한 시각적 감흥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림은 먹으로만 표현 할 수 없다'는 것, 즉 검은 색 먹으로만 자연-풍경 본연의 색을 담아 낼 수 없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된 것이다
추니 박은 "같은 풍경이라도 컬러로 그릴때와 수묵으로 그릴때 다르다"면서 "채색화로 그린 건 새로운 걸 바라 본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자연 풍경, 숲길과 숲속을 그려낸 그림은 요즘 핫한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풍경'이 떠오른다. 그는 "이미지만으로 누구와 닮았다고 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나는 20여년전부터 자연속에 들어가 풍경을 그렸다. 숲 언덕을 그리기 시작한게 2005년도다. 따지고 보면 화가들은 모두 고흐의 모방자다. 누가 먼저 그렸다, 누구와 닮았다는 의미가 없다"면서도 "할말이 많다"고 반격했다.
그러면서 "호크니는 나처럼 재주가 있지 않다"고 일갈했다. "난 어느 하나 슬렁 슬렁하는게 없다. 일찍부터 사생을 다녀 화첩이 벌써 200권이 넘는다. 계절이 바뀔때마다 작업을 하다보니, 작업이 모두 다르다. 특히 동양화 붓을 30년 써서 디테일 있다. 붓 자체를 쓰고 있는 방식이 다르다. 서양화 긴 붓으로 그린 것과 동양화 붓으로 전각하듯이 그리는 자체가 다르다. 내가 80살이 되면 호크니하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라며 한국 화가로서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다.
초등학교때 부터 꿈은 화가였다. 충북 영동 산골짜기 분교를 다니다 5학년때 본교로 가야했다. 서예를 잘 써 미술반에 추천된 그는 30리를 걸어다니며 밤늦게 까지 그림을 그렸다. "혼자 그림 그리고 밤 11시에 2시간 반을 걸어서 집에 왔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중-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가난이 발목을 잡았다.
미대생 꿈은 그야말로 꿈이었다. 22살, 신발 공장을 다닐때였다. 술을 한잔하고 논두렁에 누웠는데 "아,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지?" 가방속엔 늘 붓과 벼루가 있었다. 심심하면 그림을 그렸다. 어릴적 작은 아버지가 서예하는 걸 도와주면서 시작된 버릇이다. (작은 아버지는 서예가에서 '딱 좋아'로 성공한 청인 박세준 사장이다.)
"내가 재능있는 것을 해야겠구나" 각오를 다진 10개월간 화실을 다녀 홍익대 한국화과에 들어갔다.
라면만 먹으면서 그림을 그려 "지금도 면을 안먹는다"는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라면 준법'을 개발했다. 그의 꼬불꼬불한 필선이 라면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는데, 피마준(披麻皴),부벽준(斧劈皴)처럼 21세기 한국화의 새로운 준법이자, '박병춘의 준법'으로 브랜드화됐다.
이번에 선보인 컬러 작품은 야생성이 두드러진다. 늘 붓펜을 놓지 않는다. 작가는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석양의 노을 지는 그랜드 캐년을 웅장하게 담아낸 그림은 7시간 동안 스케치를 했다. 부감법도 있고 평원법도 있고 동양화의 여러 기법이 담겨있다. 작가의 목표는 단순하다. "먹을 사용한 필선의 강렬함, 모필로 묘사한 풍경을 서양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강렬한 색채와 동양의 선들이 합쳐진 새로운 관념의 그림을 시도하고 싶다"는 의지는 다채로운 풍경으로 쏟아졌다.
"계절/자연-풍경을 컬러로 포착해 그리는 일은 시간을 기록하는 것과 비슷해요. 그동안 동양화 기법으로 익힌 선과 점이 컬러와 결합되면서 자연과 시간에 대한 해석의 깊이가 확장됐어요. 수묵필선이 컬러와 만나면서 작업의 폭이 넓어 진거죠.”
현장에서 그린 그림들. 동양화의 방법으로 미국 풍경을 그려보자고 시작한 작업은 하나의 방법으로 그린다는 건 불가능했다. 매일 매일 한점씩 그리면 계절이 바뀐다. 시간과 계절이 다르기 때문에 그림도 달라지는게 당연하다고 했다. 실험보다 안정기에 들어설 나이지만, 그는 동시대와 호흡하는 작업을 하겠다고 했다.
"2000년에 뉴욕에 갔을때였어요. 당시 주변 사람들은 내 그림을 보고 독일에서 공부했나. 영국에서 공부했냐고 묻더군요. 그 당시는 환경과 자연, 인간과 종교 등 인간 내면의 풍경에 몰두하던 때였어요.결국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들판으로 나갔죠. 민들레를 그리고 풀을 그리고 사생을 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기법, 그래서 제 붓질은 어떤 막힘이 없어요. 단지 제가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가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이후 한국인의 삶과 정신이 담긴 ‘산수풍경’ 시리즈를 끈질기게 발표했다. ‘기억의 풍경’을 필두로 ‘검은 풍경’ ‘흐린 산수’ ‘낯선, 어떤 풍경’ ‘흐르는 풍경’ ‘채집된 산수’를 연달아 선보였다. 또 생고무로 작업한 ‘고무산수’, 라면으로 설치한 ‘라면산수’, 칠판에 그린 ‘칠판산수’, 주변의 하찮은 오브제를 이용한 정물 시리즈도 발표했다. 박병춘을 만난 한국화는 무거움을 벗고 위트있고 신선하게 장르를 확장해 나갔다.
부벽준같은 파격미로 수십년간 지루한 한국화 화단을 깨왔지만 세상은 만만찮다. 추니 박은 "미술시장에 단색화가 부상하면서 한국화를 한다고 하면 완전히 고루한 사람이 되어버렸다"면서 아쉬움도 토로했다. "따지고 보면 먹으로 하는게 단색 작업 아니냐. 앵포르멜 모노크롬화가 단색화가 되면서 실제 단색화 스승도 사라졌다. 단색화만 그림으로 보는 시선이 바로잡혔으면 좋겠다."
자신감이 충만하다. "남과 다른 작업을 하기 위해 투쟁하는 나를 나는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의 작품은 이제 ‘자유'를 얻었다.
수묵과 채색의 조합, 원색의 컬러를 과감히 사용한 작품앞에서 그가 주문하듯 말했다. "바라보는 걸 더 자세히 봐라. 무엇이 다른가 더 자세히 보라. 분명, 거침없이 주저함없이 제 맘대로 쓱쓱 그리고 있구나하는 완성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시는 8월 1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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