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간 계속된 고교 입시 전·후기 선발 재검토 해야 하나?

기사등록 2019/04/14 08:30:00

자사고 후기 전환 합헌 결정 뒤 재검토 필요성 지적

고교평준화 이후 최초 전기선발은 실업계 위주 고교

정부 바뀌어 특목고 늘어나면서 전기고 위상 달라져

전기고 취지와 달리 우수학생 선점 부작용 더욱 심화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헌재가 자사고의 후기고 전환이 합헌이라고 결정을 내리면서 다른 전기고의 후기고 전환도 논의해볼 때가 됐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2019.04.1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헌재가 자사고의 후기고 전환이 합헌이라고 결정을 내리면서 다른 전기고의 후기고 전환도 논의해볼 때가 됐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2019.04.1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구무서 기자 = 지난 11일 헌법재판소가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의 후기고 전환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고교평준화 이후 약 45년 간 이어져왔던 고교입시 전·후기 선발 체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초 실업계고 위주로 편성됐던 전기고의 숫자와 유형이 많아지면서 일반고 황폐화를 불러왔다는 이유에서다.

14일 교육계에 따르면 고등학교 전·후기의 시작은 고교평준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정부는 고교 서열을 완화할 목적으로 1974년 고교평준화를 시행했다. 이를 앞둔 1973년 교육법을 개정하며 고교 입시에 전기와 후기를 법제화했다. 직업계고 등 일부 고교는 일반고와 특성이 달라 평준화를 적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1973년 법에 명시된 최초의 전기학교(전기고)는 실업계, 예능계, 체육계, 야간인문계 특수목적고 등이며 특목고는 문교부장관이 지정할 수 있게 했다. 당시에는 어떤 학교가 특목고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높은 교육열과 많은 인구 때문에 명문 일반고를 진학하기 위한 연합고사 경쟁은 치열했다. 평준화지만 정원이 넘칠 경우 학생을 모두 수용할 수 없어 연합고사 성적을 기준으로 걸러냈기 때문이다.

취업률이 좋은 일부 명문 상고·공고를 제외한 실업계고는 지원률이 낮았고, 일반고를 가지 못할 실력의 학생들은 실업계고를 선택했다.

참교육연구소 전경원 소장은 "연합고사때는 200점 중에 150점 이상은 나와야 인문계를 지원할 수 있었다"며 "연합고사가 인문계 일반고를 지원하기 위한 선발고사로 치러지다보니 일반고를 가지 못하는 학생은 연합고사 전에 실업계고로 진학했다"고 설명했다.

전기고의 위상이 바뀐 것은 특목고가 다양화되면서부터다. 특목고는 1977년 법제화됐다. 당시 개정된 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특목고는 기계·전기·전자·건설 등 공업계열의 고등학교 중에서 문교부장관이 지정하는 학교였다. 사실상 실업계고였다.

그러나 1980년대 중·후반부터 다양한 교육기회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특목고가 늘어났다. 전두환정권은 1980년 7·30교육개혁조치를 통해 과외를 금지시킨 이후 1982년 과학인재 양성을 위해 과학고를 만들었다. 최초의 과학고는 1983년 개교한 경기과학고다. 1987년 과학고를 특목고에 포함시키자 과학고의 숫자는 21개로 늘었다.

노태우정권인 1992년에는 국제적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로 각종학교였던 외국어고를 특목고에 추가했다. 국공립인 과학고와 달리 외고는 사학에서 적극 뛰어들면서 31개교까지 늘어났다. 같은 해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음악·미술·체육교과의 전담교사를 둘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예술계열, 체육계열의 고교를 특목고에 포함시켰다.

2001년 김대중정부는 다양하고 자율적인 교육과정을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자립형사립고를 만들었고 전기에 학생을 선발하게 했다. 2010년 이명박정부 들어서 자립형사립고는 자율형사립고(자사고)로 바뀌었고 자사고는 46개까지 증가했다.

2002년 법이 만들어지고 2003년 노무현정부때 신설된 영재학교도 같은 해 4월부터 입시를 시작하면서 일반고 선발 전에 입시를 시작하는 학교가 증가했다.

특정한 목적에 의해 일반고보다 먼저 학생들을 선발했지만 이들 전기고는 실업계고를 배려한다는 취지나 특목고의 역할보다는 명문대를 진학하기 위한 통로 역할을 하면서 우수학생을 선점하는 역효과만 낳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017년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입학생 중 외고와 국제고, 과학고, 자사고 출신 학생 비율은 36.8%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 김홍태 정책실장은 "당초 취지와 달리 전기에 선발하는 학교가 늘어나다보니 영재학교, 특목고, 자사고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우선선발하고 일반고에는 마지막 남은 학생들만 가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입시체제가 일반고 황폐화는 물론 전기고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좋은교사운동 김영식 공동대표는 "전기고에 진학한 학생도 우수한 학생들만 몰린 학교에서 학업을 하다보니 다양성을 잃고 입시에만 매몰되게 된다"며 "전기고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사회 리더가 될 확률이 높다는걸 고려하면 다양성을 잃은 이들이 올바른 리더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학생들의 선택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발시기를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 헌재에서 자사고의 후기고 전환을 합헌으로 결정함에 따라 다른 학교들의 후기고 전환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교육부 정책자문위원장을 지냈던 강원대 일반사회교육학과 최현섭 명예교수는 "모든 학교를 후기고로 전환했을 때 우려되는 점도 있으나 공교육 정상화의 틀 안에서 우리 사회가 전기고의 후기고 전환을 논의해 볼 때는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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