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유럽에서도 민주공화국이라는 용어가 헌법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 2월의 체코슬로바키아 헌법과 그해 10월의 오스트리아 연방헌법부터다. 1919년 8월 11일에 공포된 바이마르 헌법조차 '독일제국은 공화국이다'라고만 했을 뿐이다. 이처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4월 임시헌장에서 민주공화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세계사적으로 볼 때에도 선구적인 것이다."
박찬승(62) 한양대 사학과 교수가 '1919: 대한민국의 첫 번째 봄'을 냈다. 박 교수는 1919년을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1년으로 꼽는다. 한국인이 식민지 백성에서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이유에서다.
우리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시절의 풍경이 담긴 책이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해 왜곡된 채 알려졌거나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중요 사실들을 새롭게 밝히는데 초점을 맞췄다. 현재 국가지정기록물로 등록되어 있는 '신문관판' 독립선언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독립선언서 공약 3장의 집필자가 한용운이 맞는지 아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이 30년 만인 올해 4월 11일로 바로잡힌 이유 등을 짚었다.
"덕수궁에 돌입한 시위대에 있었던 유진혁에 따르면, 당시 세브란스의전 학생 1명이 앞장서고 200여 명의 군중이 그의 뒤를 따라 경찰 및 이왕직의 보병대와 육박전을 벌인 끝에 안으로 돌입했다. 그런데 덕수궁에 들어간 그들은 그곳의 너무나 호화로운 별세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왕세자 이은을 면회하고자 했으나 거절당했다. 같은 땅 위에서 똑같이 망국을 맞고 식민지 지배를 받는 처지였지만, 이왕가와 일반 민중이 처한 삶과 입장은 이렇게 달랐다."
"3·1운동을 준비한 이들 대부분은 민족자결주의가 한국에 곧바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1919년 봄의 시점에 독립의 의지를 분명히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장 그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할지라도, 비록 자신들이 큰 희생을 치른다고 할지라도, 훗날 독립이란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부터 살펴볼 장면은 바로 그렇게 온몸을 던져 희망의 씨앗을 뿌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412쪽, 1만8000원,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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