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소장 72분 흑백무성필름, 무력진압 장면만 없어
'진상 규명 단서 없지만, 사료 가치 큰 것으로 분석'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지난해 발굴된 5·18 민주화운동 영상물은 과거 계엄당국의 수집·검열을 거쳐 의도적으로 편집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군 당국이 소장하고 있던 72분 분량의 흑백무성필름인 이 영상물에는 5·18 당시 계엄군의 진압 관련 장면이 없었고 항쟁 수습·정리 관련 장면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5·18의 진상을 규명할 결정적인 단서는 없지만, 사료(史料)로서 가치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5·18 기록관은 4일 광주 동구 기록관 7층 세미나실에서 '5월의 영상, 5월의 재발견'이라는 주제로 영상 콘서트를 열었다.
정호기 한국현대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날 콘서트에서 '기록관 발굴 5·18 영상물의 특성'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영상 촬영 시점은 3개 국면으로 분류됐다. 계엄군의 진압(1980년 5월18일~21일), 시민자치(5월22일~26일), 시민군의 마지막 항전과 이후 국면(5월27일~6월1일)로 분석됐다.
영상엔 집단 발포 정황, 헬기 사격과 진압 작전 관련 장면은 없었다. 11공수여단이 옛 전남도청에서 시민에게 집단발포한 시점인 1980년 5월21일 오후 1시 이전 모습들만 있었다.
72분 분량 중 50분 가량은 1980년 5월27일 이후 정부의 수습 활동과 시민이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장면이 주를 이뤘다. 광주시 공원묘지 제3묘역에 희생자를 안장하는 장면은 영상으로 처음 확인됐다.
계엄군의 진압 관련 장면이 처음부터 촬영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계엄당국의 압박으로 복사본 필름을 군에 보냈다'는 5·18 취재 기자들의 증언과 당시 계엄당국이 모든 기록물을 검열해온 점 등으로 미뤄 군이 불리한 사실을 숨기려고 의도적으로 편집했을 가능성이 나온다.
정 연구위원은 "해당 영상 기록물은 순서대로 촬영된 게 아닌 장면의 전환이 많다. 아주 복잡한 시공간으로 구성돼 있어 특정하기 어렵다. 계엄당국이 수집·검열하는 과정에서 짜맞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영상이 담고 있는 주요 장소는 전남도청 앞과 분수대 일원, 희생자들이 안치된 상무관, 전남여고 일대, 광주수창국민학교, 광주시 공원묘지 3묘역 등으로 확인됐다.
주요 인물도 다수 등장했다. 계엄군이 1980년 5월27일 새벽 옛 도청을 진압한 이후인 같은 날 오전 10시 주영복 국방부 장관, 황영시 육군참모차장, 최성택 합참 정보국장, 소준열 전교사 사령관 등 지휘관들이 후속 조치를 하는 장면도 기록됐다.
다양한 종류의 카메라와 필름으로 촬영한 것을 이어붙인 것으로 감정돼 여러 사람이 촬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원본에 가장 근접한 필름으로 확인됐다.
정 연구위원은 "기존의 영상물에서 볼 수 없는 장면들이 포함돼 있고, 5월27일 이후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장면이 상당 분량 촬영된 점, 5·18 관련 추가 영상물이 존재할 가능성 등으로 미뤄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한편 정 연구위원과 양라윤 5·18기록관 학예연구사는 지난해 6월부터 최근까지 해당 영상과 각종 기록물을 교차 검증했다. 또 1980년 5·18을 취재한 언론인 10여 명 등을 면담했다.
5·18 기록관은 지난해 5월 군이 갖고 있었던 해당 영상물을 확보했다. 영상에 대한 검증·조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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