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정리/김태규 기자 = <문재인 대통령 제63회 신문의 날 연설문 전문>
신문인 여러분, 내외귀빈 여러분,
제63회 신문의 날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신문'을 생각하면, '처음'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이른 아침, 아직 잉크 냄새가 나는 신문을 집어드는 것은 그날그날의 세상 소식을 '처음' 만나는 일입니다. 신문은 또한 민주주의의 '처음'입니다. 영국 명예혁명에서 인류는 처음으로 언론의 자유를 쟁취했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통해 민주주의, 인권, 정의, 평화가 커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신문은 새로운 시대를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서재필 선생이 발간한 최초의 민간신문 '독립신문'은 120여 년 전 '처음'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여성의 권리를 내세웠고, 더 많은 국민이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발행했습니다.
3·1독립운동 당일 발행된 '조선독립신문' 1호는 독립선언 발표 소식을 국민께 '처음' 전했으며, 3월 3일 제2호에서는 '국민대회'를 열어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대통령을 선출할 것이라고 알렸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시, 1919년 8월21일 기관지 '독립신문'을 내고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소식을 국민께 알렸습니다.
신문인 여러분, 기자 여러분,
한 장의 사진, 한 줄의 기사에 담긴 신문인의 양심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1936년 동아일보는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지우고 사진을 보도했습니다. 식민지 치하에서 고통 받던 우리 국민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독립 의지를 북돋는 역할을 했습니다.
1960년 부산일보 허종 기자가 찍어 특종으로 보도한 김주열 열사의 사진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1980년 5월20일,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의 양심이 담긴 공동사표가 2만 장의 호외로 뿌려졌습니다.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고 적혀있었습니다.
독재와 검열의 시대에 보여준 신문인의 용기 있는 행동은 고립된 광주시민에게 뜨거운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촛불혁명 역시 우리 신문들의 보도를 통해 가장 평화롭고 민주적인 혁명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모두 신문과 보도의 힘입니다.
언론 자유는 결코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신문과 신문인은 참으로 어려운 길을 걸었습니다. 신문을 압수하거나 정간, 폐간시키는 일제와 싸웠습니다. 보도지침이라는 이름으로 기사에 빨간 줄을 죽죽 그었던 독재와 싸웠습니다. 백지광고로 저항하고, 수백 명의 기자들이 한꺼번에 해직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권력으로 국민의 눈을 막고 진실을 가렸지만 우리 신문인은 결코 붓을 꺾지 않았습니다.
국민들도 우리 신문을 사랑하고 신뢰했습니다. 권력의 검열로 신문이 제대로 진실을 전하지 못했던 시기에도 국민들은 1면 톱기사가 아닌 구석의 1단짜리 작은 기사에서 더 큰 진실을 읽어냈고, 심지어 미처 말하지 못하는 기사의 행간에서 진실을 찾기도 했습니다. 우리 신문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어가고, 진실과 정의의 편에서 신문인의 양심을 지켜온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신문인 여러분, 기자 여러분,
이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권력은 없습니다. 정권을 두려워하는 언론도 없습니다. 많은 해직 기자들이 일터로 돌아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다시 높아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진실한 보도, 공정한 보도, 균형 있는 보도를 위해 신문이 극복해야 할 대내외적 도전도 여전합니다.
첫째, 언론 자유에 대한 도전입니다. 가장 공신력 있는 지표로 인정받는 '국경 없는 기자회'의 언론자유지수(PFI)에서 한국은 2006년 31위를 기록했지만, 2009년 69위, 2016년 70위로 추락했습니다. 우리 정부 출범 이후, 2017년 63위, 2018년 43위로 다시 회복하고 있지만, 정치권력 외에도 언론자본과 광고자본, 사회적 편견, 국민을 나누는 진영논리, 속보 경쟁 등 기자의 양심과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는 요인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둘째, 신뢰에 대한 도전입니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 신문이 되고 방송이 되는 시대입니다. 언론이 보도하고 독자가 읽던 시대가 지나고 있습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정보통신 환경은 정보의 유통속도를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여주었지만, 동시에 허위정보와 가짜뉴스를 빠르게 확산시키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신문과 신문인에 대한 신뢰는 물론,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를 떨어트리는 심각한 도전입니다.
셋째, 공정에 대한 도전입니다.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은 모바일로 뉴스를 접할 정도로 뉴스를 보기 위해 신문을 펴는 것보다 스마트폰을 켜는 것이 익숙한 세상입니다. 신문사 입장에서는 누가 먼저 보도했는지, 어느 신문사의 클릭 수가 많은지가 중요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자극적인 기사, 깊이 없는 보도가 많아지고 완성되지 않은 기사가 생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종이신문 구독률과 열독률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언론환경일지 모르지만, 전통적인 신문의 역할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줄지 않았습니다. 뉴스를 이용하는 공간은 인터넷이지만, 인터넷을 통해 신문사들이 제공하는 뉴스를 읽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문의 위기를 얘기하지만, 저는 신문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의 자유는 언론 자유의 토대입니다. 신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언론인으로서 양심의 자유를 누릴 때, 신문도 본연의 사명을 다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때 신문은 존경받습니다. 공정하고 다양한 시각을 기초로 한 비판, 국민의 입장에서 제기하는 의제 설정은 정부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국민만을 바라보게 하는 힘입니다. 그럴 때 국민의 이익이 커지고, 대한민국이 강해집니다. 신문과 신문인이 언론의 사명을 잊지 않고 스스로 혁신해 나간다면, 국민의 신뢰와 사랑 역시 변치 않고 지속될 것입니다.
신문인 여러분, 내외귀빈 여러분,
신문은 우리 사회의 거울입니다. 국민과 국가의 힘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입니다. 그래서 국민과 정부의 목표, 신문의 목표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신문인의 양심이 자유롭게 발현되고, 신문이 힘없는 사람,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할 때, 우리 사회가 더 나은 공동체로 발전할 것입니다. 정부도 함께 노력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신문이 국민과 함께 역사의 질곡을 헤쳐 온 것처럼, 앞으로도 더 공정하고,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평화로운 혁신적 포용국가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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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인 여러분, 내외귀빈 여러분,
제63회 신문의 날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신문'을 생각하면, '처음'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이른 아침, 아직 잉크 냄새가 나는 신문을 집어드는 것은 그날그날의 세상 소식을 '처음' 만나는 일입니다. 신문은 또한 민주주의의 '처음'입니다. 영국 명예혁명에서 인류는 처음으로 언론의 자유를 쟁취했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통해 민주주의, 인권, 정의, 평화가 커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신문은 새로운 시대를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서재필 선생이 발간한 최초의 민간신문 '독립신문'은 120여 년 전 '처음'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여성의 권리를 내세웠고, 더 많은 국민이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발행했습니다.
3·1독립운동 당일 발행된 '조선독립신문' 1호는 독립선언 발표 소식을 국민께 '처음' 전했으며, 3월 3일 제2호에서는 '국민대회'를 열어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대통령을 선출할 것이라고 알렸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시, 1919년 8월21일 기관지 '독립신문'을 내고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소식을 국민께 알렸습니다.
신문인 여러분, 기자 여러분,
한 장의 사진, 한 줄의 기사에 담긴 신문인의 양심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1936년 동아일보는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지우고 사진을 보도했습니다. 식민지 치하에서 고통 받던 우리 국민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독립 의지를 북돋는 역할을 했습니다.
1960년 부산일보 허종 기자가 찍어 특종으로 보도한 김주열 열사의 사진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1980년 5월20일,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의 양심이 담긴 공동사표가 2만 장의 호외로 뿌려졌습니다.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고 적혀있었습니다.
독재와 검열의 시대에 보여준 신문인의 용기 있는 행동은 고립된 광주시민에게 뜨거운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촛불혁명 역시 우리 신문들의 보도를 통해 가장 평화롭고 민주적인 혁명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모두 신문과 보도의 힘입니다.
언론 자유는 결코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신문과 신문인은 참으로 어려운 길을 걸었습니다. 신문을 압수하거나 정간, 폐간시키는 일제와 싸웠습니다. 보도지침이라는 이름으로 기사에 빨간 줄을 죽죽 그었던 독재와 싸웠습니다. 백지광고로 저항하고, 수백 명의 기자들이 한꺼번에 해직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권력으로 국민의 눈을 막고 진실을 가렸지만 우리 신문인은 결코 붓을 꺾지 않았습니다.
국민들도 우리 신문을 사랑하고 신뢰했습니다. 권력의 검열로 신문이 제대로 진실을 전하지 못했던 시기에도 국민들은 1면 톱기사가 아닌 구석의 1단짜리 작은 기사에서 더 큰 진실을 읽어냈고, 심지어 미처 말하지 못하는 기사의 행간에서 진실을 찾기도 했습니다. 우리 신문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어가고, 진실과 정의의 편에서 신문인의 양심을 지켜온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신문인 여러분, 기자 여러분,
이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권력은 없습니다. 정권을 두려워하는 언론도 없습니다. 많은 해직 기자들이 일터로 돌아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다시 높아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진실한 보도, 공정한 보도, 균형 있는 보도를 위해 신문이 극복해야 할 대내외적 도전도 여전합니다.
첫째, 언론 자유에 대한 도전입니다. 가장 공신력 있는 지표로 인정받는 '국경 없는 기자회'의 언론자유지수(PFI)에서 한국은 2006년 31위를 기록했지만, 2009년 69위, 2016년 70위로 추락했습니다. 우리 정부 출범 이후, 2017년 63위, 2018년 43위로 다시 회복하고 있지만, 정치권력 외에도 언론자본과 광고자본, 사회적 편견, 국민을 나누는 진영논리, 속보 경쟁 등 기자의 양심과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는 요인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둘째, 신뢰에 대한 도전입니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 신문이 되고 방송이 되는 시대입니다. 언론이 보도하고 독자가 읽던 시대가 지나고 있습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정보통신 환경은 정보의 유통속도를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여주었지만, 동시에 허위정보와 가짜뉴스를 빠르게 확산시키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신문과 신문인에 대한 신뢰는 물론,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를 떨어트리는 심각한 도전입니다.
셋째, 공정에 대한 도전입니다.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은 모바일로 뉴스를 접할 정도로 뉴스를 보기 위해 신문을 펴는 것보다 스마트폰을 켜는 것이 익숙한 세상입니다. 신문사 입장에서는 누가 먼저 보도했는지, 어느 신문사의 클릭 수가 많은지가 중요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자극적인 기사, 깊이 없는 보도가 많아지고 완성되지 않은 기사가 생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종이신문 구독률과 열독률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언론환경일지 모르지만, 전통적인 신문의 역할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줄지 않았습니다. 뉴스를 이용하는 공간은 인터넷이지만, 인터넷을 통해 신문사들이 제공하는 뉴스를 읽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문의 위기를 얘기하지만, 저는 신문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의 자유는 언론 자유의 토대입니다. 신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언론인으로서 양심의 자유를 누릴 때, 신문도 본연의 사명을 다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때 신문은 존경받습니다. 공정하고 다양한 시각을 기초로 한 비판, 국민의 입장에서 제기하는 의제 설정은 정부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국민만을 바라보게 하는 힘입니다. 그럴 때 국민의 이익이 커지고, 대한민국이 강해집니다. 신문과 신문인이 언론의 사명을 잊지 않고 스스로 혁신해 나간다면, 국민의 신뢰와 사랑 역시 변치 않고 지속될 것입니다.
신문인 여러분, 내외귀빈 여러분,
신문은 우리 사회의 거울입니다. 국민과 국가의 힘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입니다. 그래서 국민과 정부의 목표, 신문의 목표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신문인의 양심이 자유롭게 발현되고, 신문이 힘없는 사람,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할 때, 우리 사회가 더 나은 공동체로 발전할 것입니다. 정부도 함께 노력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신문이 국민과 함께 역사의 질곡을 헤쳐 온 것처럼, 앞으로도 더 공정하고,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평화로운 혁신적 포용국가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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