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부-서울시 알력에 도시공원 83% '풍전등화'

기사등록 2019/03/17 08:00:00

도시공원실효제로 내년7월 도시공원 대거 없어져

116개 도시공원 중 83% 일몰…여의도 33개 면적

중앙정부, 지자체 늑장대응 탓하며 지원 소극적

서울시, 정부 국공유지 떠넘기기에 속앓이 심화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2020 도시공원 일몰제 대응 전국시민행동’ 관계자들이 1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일몰 도시공원 우선보상대상 대지매입 긴급예산 수립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02.13.  bluesoda@newsis.com (사진=뉴시스DB)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2020 도시공원 일몰제 대응 전국시민행동’ 관계자들이 1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일몰 도시공원 우선보상대상 대지매입 긴급예산 수립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02.13.  [email protected] (사진=뉴시스DB)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도시공원 일몰제(실효제)' 때문에 서울시내 곳곳에 있는 공원 부지가 내년 7월 땅 주인들 손에 넘어가게 됐다. 공원을 현 상태로 유지하려면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부지를 사들여야 하는데 이 작업을 해야 할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책임 공방을 벌이는 통에 일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

도시공원 실효제에 따르면 내년 7월1일자로 서울시내 116개 도시공원 약 95㎢(여의도 33개 면적, 서울시 도시공원의 83%)가 한꺼번에 땅 주인 몫으로 돌아간다. 땅 주인인 개인이나 중앙정부부처, 공공기관은 공원부지의 용도를 바꿔 건물을 짓는 등 개발할 수 있게 된다.

이 제도는 1999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도입됐다. 그간 지자체는 임의대로 개인 소유 토지나 국공유지를 공원부지로 지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99년 헌법재판소가 '지자체가 개인 소유의 땅에 도시계획시설을 짓기로 하고 장기간 이를 집행하지 않으면 땅 소유자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결정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공원으로 쓰고 싶으면 해당 지자체가 땅 주인으로부터 부지를 사들이라는 취지였다. 시민 건강이나 도시환경보다 재산권이 중요하다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법원 판단이었다.

헌재 결정이 바람직한지 논란이 일었지만 어쨌든 1년 뒤인 2000년 도시계획법이 개정돼 미집행 도시공원 실효제가 도입됐다. 20년 동안 해당 지자체가 공원 부지를 사들이지 않으면 공원 지정이 해제되도록 법이 바뀐 것이다.

20년이란 기간이 문제였다. 학교, 공공청사, 도로나 철도, 상하수도 등에 투자하느라 바쁜 지자체들에게 20년 뒤는 먼 미래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공원부지 매입 예산 배정은 항상 후순위로 밀리거나 삭감됐다. 하지만 공원 부지 매입기한인 2020년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대로 두면 내년 7월에는 서울시내 도시공원인 삼청공원, 안산도시자연공원, 방배동 도구머리공원·와우근린공원, 성산근린공원, 개화산 개화근린공원, 꿩고개근린공원, 자연생태 체험 교육장 일자산도시자연공원, 관악산도시자연공원, 북한산도시자연공원, 한양도성이 지나가는 인왕산 도시자연공원, 남산 일대 근린공원 등이 모두 공원에서 해제된다.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

전국 지자체들 중 재정여건이 비교적 양호한 서울시는 그나마 공원 부지 매입을 위해 노력을 해온 편이다.

서울시는 2002년부터 2017년까지 1조8504억원(연평균 1157억원)을 투입해 4.92㎢의 공원부지를 땅주인으로부터 사들였다. 시는 지방채를 발행해 내년 7월 이전까지 1조6000억원을 투입해 2.33㎢를 매입, 공원으로 보존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내년 7월까지 95㎢를 다 사들이기는 역부족이다.

서울시는 이 과정에서 뒷짐을 지고 있는 중앙정부의 태도가 못마땅하다. 서울시는 시내 곳곳에 도시공원을 대거 지정한 시점이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1995년 이전이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중앙정부가 임명한 관선시장이 임의대로 지정했던 공원부지를 뒤늦게 사들이느라 서울시가 수십조원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시는 "이번에 실효를 앞둔 공원은 모두 지방자치제도 시행 이전에 국가에서 지정한 공원이지만 지금까지 국비 지원은 단 한차례도 이뤄진 적이 없다"고 푸념했다.

시는 또 "실효 예정 사유지 전체(40.2㎢, 국공유지를 제외한 면적)를 보상하려면 약 16조원이라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고 지자체 재정 여건상 시가 단독으로 재원을 모두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정부에 국비지원을 지속 요청하겠다"고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서울시가 특히 억울해 하는 부분은 국공유지에 속한 공원부지다.

현행 규정대로라면 서울시는 국토교통부나 국방부 등 중앙정부부처가 소유한 국공유지에 있는 공원부지 역시 돈을 주고 사들여야 하는 처지다. 시는 "도시공원 실효제의 목적은 토지 소유자의 사유재산권 침해 해소인 만큼 국공유지는 이와 무관하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일각에서는 정부부처가 서울시내 공원부지를 탐내고 있다는 의심까지 제기된다. 국방부의 경우 보유 중인 토지 속 공원의 지정 해제를 기다린 뒤 그곳에 군사시설을 지으려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국토계획법을 개정해 국공유지에 있는 공원을 실효제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중앙정부를 압박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서울=뉴시스】2019 시도별 도시공원 토지보상 배정 예산.2019.02.28(제공=지존)  (사진=뉴시스DB)
【서울=뉴시스】2019 시도별 도시공원 토지보상 배정 예산.2019.02.28(제공=지존)  (사진=뉴시스DB)
'2020 도시공원일몰제 대응 전국시민행동'과 '한국환경회의' 등 시민단체도 "실효대상지역 중 국공유지는 약 123㎢로 전국일몰대상공원의 26%에 해당된다"며 "시급하게 국공유지만큼이라도 공공의 공간으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공원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서울시의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지만 이 역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물론 국토교통부·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환경부·산림청 등 중앙정부 부처도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들 부처는 '도시공원 일몰제 대응 부처 합동 정부종합대책'을 통해 지자체를 돕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생색내기에 가깝다고 지자체들은 성토한다.

실제로 중앙정부는 매입이 시급한 공원을 사들이는 데만 당장 10조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매입자금 확보를 위해 "지방채 발행 이자의 50%를 5년간 지원하겠다"고만 밝혔다. 최대 7200억원까지만 책임지겠다는 의미다.

정부는 이 약속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올해 장기미집행공원 지방채 이자지원을 위해 편성된 국토부 예산은 79억원에 불과했다. 재정자립도가 낮아진 지자체에 지방채 발행을 권한 것도 모자라 터무니없는 액수의 예산을 책정한 것이다.

중앙정부가 이처럼 공원부지 매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일각에서는 정부가 도시공원을 포기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이 같은 비판에 중앙정부도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않았다. 공원 조성은 기본적으로 지방사무인데 지자체가 자구노력은 하지 않고 중앙정부 탓만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대규모 공원지정 해제 사태가 궁극적으로 지자체 책임이라는 입장이다. 정부는 "과거 지자체가 민원해소, 시가지 개발 등을 위해 도시계획시설을 과다 결정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며 "결정 후에는 지자체 재정여건 상 도시계획시설사업을 위한 재원확보가 어려워 미집행 시설이 양산됐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무능력을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정부는 "그동안 지자체장과 지방의회 등이 임기 내 문제에만 집중해 2020년도 실효에 관심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자체의 공원부지 매입 실패 후 대응 방안도 미리 마련해뒀다. 정부는 지자체가 상당수 공원을 살리지 못할 것이라 예상하면서 공원 지정 해제에 따른 부동산 투기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한 후속대책을 미리 마련해뒀다.

정부는 "우선관리지역에 해당하지 않는 지역에 대해서는 토지 소유자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불요불급한 시설은 해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다만 불가피하게 공원에서 해제된 지역은 국토교통부, 지자체 등 관계기관 합동으로 시장 상황을 조사하는 등 부동산 투기 방지 대책을 마련·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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