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진 백운동 원림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조선시대의 정원인 '강진 백운동 원림(康津 白雲洞 園林)'이 국가지정문화재가 됐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5호가 된 강진 백운동 원림은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출산 옥판봉 남쪽 경사지 아래쪽에 있다. 백운동 원림의 본가인 백연당에서 북쪽으로 11㎞ 떨어져 있다. 고려 시대 사찰 백운암이 있던 곳이며, 계곡 옆에 '백운동(白雲洞)'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남아있어 백운동이라고 불린다.
강진 백운동 원림 안뜰에는 시냇물을 끌어 마당을 돌아나가는 '유상곡수'의 유구가 남아 있고, 꽃계단에는 선비의 덕목을 담은 소나무, 대나무, 연, 매화, 국화, 난초가 자라는 등 조선 최고의 별서(別墅) 원림이다.
이 원림을 조영한 이담로(1627~1701)의 호는 '백운동은(白雲洞隱)'이다. 손자 이언길에게 유언으로 '평천장(平泉莊)'의 경계를 남겨 후손들에게 전해 이 원림이 지금까지 보존되게 했다.
별장으로 사용하던 백운동 원림은 이후 증손자 이의권(1704~1759)이 가족과 살며 주거형 별서로 변모했다. 이덕휘(1759~1828)와 이시헌(1803~1860) 등 여러 후손들을 거치며 현재 모습으로 완성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5호가 된 강진 백운동 원림은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출산 옥판봉 남쪽 경사지 아래쪽에 있다. 백운동 원림의 본가인 백연당에서 북쪽으로 11㎞ 떨어져 있다. 고려 시대 사찰 백운암이 있던 곳이며, 계곡 옆에 '백운동(白雲洞)'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남아있어 백운동이라고 불린다.
강진 백운동 원림 안뜰에는 시냇물을 끌어 마당을 돌아나가는 '유상곡수'의 유구가 남아 있고, 꽃계단에는 선비의 덕목을 담은 소나무, 대나무, 연, 매화, 국화, 난초가 자라는 등 조선 최고의 별서(別墅) 원림이다.
이 원림을 조영한 이담로(1627~1701)의 호는 '백운동은(白雲洞隱)'이다. 손자 이언길에게 유언으로 '평천장(平泉莊)'의 경계를 남겨 후손들에게 전해 이 원림이 지금까지 보존되게 했다.
별장으로 사용하던 백운동 원림은 이후 증손자 이의권(1704~1759)이 가족과 살며 주거형 별서로 변모했다. 이덕휘(1759~1828)와 이시헌(1803~1860) 등 여러 후손들을 거치며 현재 모습으로 완성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강진 백운동 원림
강진 백운동 원림은 후손들과 명사들이 남긴 문학작품의 무대로도 자주 등장한다.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은 백운동에 묵으며 그 경치에 반해 제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했다. 아름다운 경승 12곳을 칭송하는 시도 남겼다. '백운첩'에 담긴 이 그림과 시는 현재 모습과 비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다산의 제자이기도 한 이시헌은 선대의 문집, 언행을 기록한 행록, 필묵을 '백운세수첩(白雲世手帖)'으로 묶었다. 조선후기 문인 김창흡, 김창집, 신명규, 임영 등이 남긴 다양한 백운동 시문들과 함께 지금까지 전해진다.
이곳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문화를 교류하며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정약용, 초의선사, 이시헌이 차를 만들어 전해주며 즐겨온 기록이 있는 등 우리나라 차 문화의 산실이란 가치도 더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다산의 제자이기도 한 이시헌은 선대의 문집, 언행을 기록한 행록, 필묵을 '백운세수첩(白雲世手帖)'으로 묶었다. 조선후기 문인 김창흡, 김창집, 신명규, 임영 등이 남긴 다양한 백운동 시문들과 함께 지금까지 전해진다.
이곳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문화를 교류하며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정약용, 초의선사, 이시헌이 차를 만들어 전해주며 즐겨온 기록이 있는 등 우리나라 차 문화의 산실이란 가치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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