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갤러리에서 6일부터 개인전 폭포 계곡 신작 18점
파라다이스아트스페이스에서 선보인 한지+물 반사 설치작도 전시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그리는 그 순간이 춤을 추는 것이다. 팔이든 다리든 자연스럽게 움직이면 튀김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신들리듯 그 안에 들어가서 움직이니까…"
한국화 김호득(69)이 신작 '폭포'와 '계곡'을 선보인다.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 대표작인 광목에 그린 수묵화와 드로잉 연작, 광목과 한지를 이용해 제작한 대형 설치작품 등 총 20점을 전시한다.
화폭은 단순함과 대범함으로 기운생동한다. 먹물로 쭉 그려낸 단 몇줄로 폭포와 계곡을 완성했다. 일필휘지의 힘이 강렬하다.
붓끝에서 벼락이 치는 듯 하다. 순식간에 번진 먹물의 튀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치 부벽준(斧劈皴·측필을 이용해 도끼로 팬 나무의 표면처럼 나타내는 산수화 준법)처럼 기하학적인 구조로 입체감까지 선사하는 '먹 튀김은' 김 화백의 전매특허다.
6일 오전 학고재 전시장에서 만난 김 화백은 "많은 후배 선배들이 부러워 하는 기법이지만 의도해서 나온게 아니다”면서 "딴 사람들이 따라하려고 해도 안된다고 하더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여 나온 내공의 힘이다. "주변을 재빠른 붓놀림으로 표현해 물이 느껴지도록 했다. 붓이 속도감 있게 내달리고 먹물이 튀면서 자연스레 물의 운동을 연상하도록 했다. 그런데 맑은 물이 아니라 황톳물에 영감을 받은 이번 그림에서는 물의 표정을 직접 그렸다. 중간 톤의 먹물로 물이 내달리고 튀는 모습을 그렸다. 결과적으로는 물에 색깔을 칠하는 것이지만, 물과 돌, 물살의 관계를 생각하며 물의 기운이 그대로 느껴지도록 표현하려 했다. 나는 ‘물의 기운’을 그린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묵법과 필력이 그의 장기다. 그림 '폭포'는물이 힘차게 지나가는 형세를 심플하게, 구조적으로 만들었다.
춤추듯 신들린 듯 먹과 붓 몸통이 하나가 되어 나와서 일까. 누르스름한 광목에 검은 색으로만 그려진 작품은 치솟아 오르는 생명력의 에너지를 분출한다.
"강약의 힘 조절도 의식해서 나오는게 아니다. 그냥 흐르는 대로 잡아나간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는 않다"
전통 산수화를 모티브로 한 '산 맥'이 가득한 화면은 봄 기운의 아지랑이처럼 꿈틀꿈틀한다. 김호득식 풍경화로 손가락으로 그려낸 지두화다. 붓대신 손가락으로 재즈를 들으면서 그려 리듬감이 느껴진다.
수묵의 농담 변화 대신 획의 뉘앙스와 공간감을 통해 미묘한 변화를 즐기는 김호득 화백은 '동양화의 이단아'로 한국화단에 파격을 선사하며 주목받았다.
화선지 대신 투박한 광목을 쓰고 중봉(中鋒)이 없는 편필로,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혼융한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다. 화선지가 아닌 광목을 처음 사용하게 된 것은 서울대학 시절이었다. 회화과 여학생들이 버린 캔버스나 동대문 시장에서 구한 싸구려 광목에 그림을 그린 것이 계기가 됐다. 35여 년간 오로지 지필묵을 고집하며 한국의 정신을 중요히 여긴다. 반면 전통 수묵화의 형식에만 얽매이지는 않는다. 지필묵을 현대 감각에 맞게 구사한다.
"서울예고 시절부터 서양화, 동양화를 골고루 공부했다. 청년 시절에는 유화나 아크릴릭도 다뤄 봤지만, 지필묵에 맛을 들여보니 이게 내 체질에 딱 맞더라.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색채 감각보다 형태 감각이 더 뛰어나다. 일필휘지의 순발력을 즐긴다. 덧칠하고 다듬는 것보다는 순간적으로 그리는 게 내 체질에 잘 맞는다. 서양 그림으로 치자면 드로잉 같은 걸 아주 좋아하는 것이다. 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지필묵을 지키자는 약간의 오기나 의무감도 발동했을 수 있을 게다. 모든 사람들이 다 지필묵을 내던지고 방향을 바꿔나가니까, 내가 인기 작가는 아니지만, ‘나만이라도’ 하는…. 하하! 따지고 보면 내가 지필묵을 다루는 건 정도(正道)가 아니다. 서양식과 동양식을 서로 얼버무렸다고나 할까.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현대 감각에 맞게 지필묵을 구사하려 했다."
이러한 특색으로 동시대 수묵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작품으로 국내외 미술계에서 주목 받고 있다. 최근 타이베이 당다이(2019), 한국국제아트페어(2015) 등 국제적인 아트페어에서 해외 컬렉터 층의 큰 관심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학고재 신관에서는 김호득이 한지, 광목, 먹 등을 이용해 제작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다양한 매체를 전유하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폭넓게 선보이는 자리다. 지하 1층의 〈틈–사이〉(2019)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형태의 설치 작업이다. 영상 작가 황규백과 공동 작업했다. 마주 보는 자리에 걸린 50호 캔버스 작품 〈사이〉(2018)가 설치작품과 절묘한 조응을 이루며 공간의 완성도를 높인다.
지하 2층에 들어서면 대형 설치 작품 〈문득–공간을 그리다〉(2019)가 시선을 압도한다. 지난해 인천 파라다이스 시티 아트스페이스에서 선보여 큰 주목을 받은 작품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했다. 겹겹의 한지가 검은 물위에 반사하는 공간은 명상의 공간같다. (학고재 지하 전시장의 반전매력이다)
"음과 양, 시간과 공간, 찰나와 영원 사이의 미묘한 경계의 교차점을 그리고 싶다. 설치작품도 사실 입체라기에는 질량감이 없고 평면이라고 하기에는 그 확장성이 크고, 그만큼의 공간성을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텅 빈 느낌이며, 시간이 정지된 느낌이면서도 미묘하게 흐르는 시간을 심상으로 느낄 수 있는,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나만의 독특한 지점의 설치작품을 추구한다. 평면의 먹그림에서도 그러한 지점을 확보하고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
"24년 동안의 대구에서 교수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경기도 여주 산자락에서 3년째 작업하고 있다"는 작가는 2017년, 2018년에 이어 1년마다 개인전을 열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작품 제작과 전시 구상, 작품 선정 작업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이를 잊고 그저 작가로서의 최선을 다하는 인간이 되자고 자꾸자꾸 다짐한다" 김호득 화백은 "그저 그림으로 승부하고 싶다"고 했다. 전시는 4월7일까지.
[email protected]
"24년 동안의 대구에서 교수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경기도 여주 산자락에서 3년째 작업하고 있다"는 작가는 2017년, 2018년에 이어 1년마다 개인전을 열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작품 제작과 전시 구상, 작품 선정 작업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이를 잊고 그저 작가로서의 최선을 다하는 인간이 되자고 자꾸자꾸 다짐한다" 김호득 화백은 "그저 그림으로 승부하고 싶다"고 했다. 전시는 4월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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