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3·1만세운동…대한민국 헌법정신 뿌리가 됐다

기사등록 2019/03/01 05:30:00

헌법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

여성 등 거리로 나서 근대화로 진전

"중국 5·4운동 등에도 커다란 자극"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28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 만세운동 재현행사에 참석한 학생들이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2019.02.28.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28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 만세운동 재현행사에 참석한 학생들이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2019.02.2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남빛나라 기자 김은비·이창환 수습기자 = 100년 전 오늘 한용운 등 민족대표 33인 중 29인이 지금의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탑골공원엔 청년 약 5000명이 모여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1919년 3월1일의 독립만세운동은 하루짜리 이벤트가 아니었다. 3·1운동 이후 한달 넘게 곳곳에서 만세시위가 이어졌다. 약 한달 동안 전국에서 시위가 1214차례 열렸다는 기록도 있다.

전문가들은 여성 등 그전의 신분제 사회에선 전면에 나설 수 없었던 백성들이 거리로 나선, 근대화로의 진전이 드러난 시위였다고 강조했다.

또 독립운동의 방향을 설정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3·1운동을 기점으로 독립투사들은 운동의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고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헌법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된 이유다.
【서울=뉴시스】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태화관. 지금의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했다. (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뉴시스】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태화관. 지금의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했다. (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은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3·1운동은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으로 바뀌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며 "농민은 농민으로서, 학생은 학생으로서, 여성은 여성으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국민이 주인이라고 알리는 확고한 신호탄이었다"고 강조했다.

박용옥 전 성신여대 명예교수는 "밥을 푸던 여인들도 만세 소리를 듣고 함께 나가 만세를 불렀고 어린 아이들도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약 5000년 동안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이룩한 나라가 망했으니 독립을 해야겠단 민(民)의 열망이 너무나 가득했던 것"이라며 "정말이지 전민족적인 독립 의지가 표출된 게 3·1운동"이라고 밝혔다.

3·1운동은 독립을 염원하는 타국과 외국의 조선인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심 소장은 "3·1운동 이후 해외 동포들에게도 독립을 염원하는 국내의 목소리가 전해졌다"며 "국내와 국외를 연결한 역할을 한 게 3·1운동이고 그 실체가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라고 봤다.

박 전 교수는 "국외 동포들이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각종 자금을 마치 세금을 내듯이 수입의 몇 분의 일씩 냈다"며 "외국에서 삶이 핍박한 가운데 독립을 바라며 돈을 냈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한철호 동국대 교수는 "5·4운동 관련 자료를 보면 '한국에서 이렇게까지 하는데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식으로 3·1운동의 영향을 받은 게 드러난다"며 "간접적으로라도 커다란 자극을 줬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에 일본의 만행을 알린 계기가 됐다는 점도 의의로 꼽혔다. 특히 '제암리 사건'은 선교사 등 외국인들에 의해 외신에 보도되면서 일본을 놀라게 했다. 이 사건은 1919년 4월15일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에서 3·1운동 보복에 나선 일본 군인이 한국인들을 교회에 가둔 후 총을 쏘고 불을 질러 죽인 사건이다.

한 교수는 "대외적으로 일본은 조선이 워낙 못 살고 체제가 불안정하니 조선을 보호해주는 것이라고 거짓 선전을 하고 있었다"며 "3·1운동으로 우리가 일본의 보호를 받아서 잘먹고 잘사는 게 아니라, 자유를 빼앗기고 경제적으로도 궁핍하다는 사실이 대외에 천명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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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3·1만세운동…대한민국 헌법정신 뿌리가 됐다

기사등록 2019/03/01 05:30:0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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