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인터뷰]피아니스트 임현정, 바흐는 아버지·베토벤은 애인

기사등록 2019/01/09 00:38:00

임현정 ⓒ봄아트프로젝트
임현정 ⓒ봄아트프로젝트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바흐는 저의 아버지, 베토벤은 저의 애인입니다."

피아니스트 임현정(33)이 고백했다. 2년 만인 2월2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앞둔 그녀는 베토벤과 바흐가 예전과 다르게 다가온 시점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리사이틀 부제는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다. 피아노의 신약과 구약 성서라 불리는 베토벤과 바흐의 만남으로 눈길을 끄는 무대다.

임현정도 여느 피아니스트들처럼 성스런 두 작곡가를 박물관에 있는 위대한 미술 작품처럼 여겼다. "멀리서만 바라보고 멀리서만 존경심을 표하는 작곡가들"이었다. "그래서 두 작곡가와 영혼이 하나가 돼 표현을 해낼 수가 없었죠. 보기에도 너무 성스러워 손을 댈 수가 없었었어요."

하지만 10대 후반 변곡점이 찾아왔다. 부친이 심장 수술을 받았다. 임현정에게 아버지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 존재였다. "멀리서만 바라보고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다. 일종의 '불멸의 무적 기사', 즉 바흐와 베토벤 같았다.
"아버지의 연약해진 모습을 보니까 '아빠도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똑같이 아픔과 상처가 있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걸요. 아픔과 상처를 지금과 화해시키려고 노력하는 인간임을 깨달은 거죠. 그 때의 충격이 컸어요. 가치관과 예술관이 180도 완전히 바뀌었죠."

그래서 그녀에게 바흐, 베토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됐다. "그 때부터 두 작곡가의 아픔과 상처를 음악에 고스란히 담아내려고 했어요. 작곡가와 하나가 돼 음악으로 표현을 하는 것이 연주자의 몫이구나라는 것도 깨달았죠." 특히 베토벤을 애인처럼 여기는 이유에 관해 "베토벤을 공부하다 보면 '옆에 돌봐주는 연인이 없었을까'라는 측은감이 들어요. 만약 제가 옆에 있었다면 베토벤의 삶이 좀 더 쉬워지지 않았을까 싶어요"라며 웃었다.

이번 리사이틀은 베토벤 소나타 1번을 시작으로 바흐의 프렐루드와 푸가를 거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으로 끝을 낸다. 임현정은 베토벤 소나타 1번과 32번을 프로그램의 처음과 마지막에 배치한 것에 큰 의미를 뒀다. "소나타 1번은 베토벤이 20대 초반에 작곡했어요. 반항적이고 운명에 저항하죠. 근데 32번은 운명에게 도전장을 내밀어 승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운명과 대화를 시도하는 작품이에요. 베토벤의 시작과 결말을 다룬 리사이틀이기도 한 거죠."

베토벤의 소나타처럼 입시곡으로 빠지지 않는 바흐의 프렐루드와 푸가까지 아우른 이번 리사이틀은 두 작곡가의 본질을 살리고 싶다는 심정에서 비롯됐다. "바흐와 베토벤의 가슴 안에 뛰고 있던 심장은 제 안의 심장과 다를게 없다는 걸 알아요. 두 분의 요동치는 모든 희로애락이 제게도 담겨 있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언어로 희로애락을 표현하고 싶어요."

클래식음악계에서는 국제적인 명성의 음악가 지원이나 유명 콩쿠르 수상이 성공의 발판으로 여겨지는데, 임현정은 파격적인 데뷔 경로로 이름을 알렸다. 시대를 앞서간 유튜브 스타다. 임현정은 유튜브와 아이튠스가 낳은 스타다. 2009년 벨기에 바젤에서 열린 쇼팽과 라흐마니노프의 연습곡 전곡 연주회에서 앙코르곡으로 택한 '왕벌의 비행'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면서 '유튜브 스타'가 됐고, 한국인 연주자 중 처음으로 빌보드 클래식 차트는 물론 아이튠스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후 '클래식음악의 대중화'를 위한 클래식 'IT 투사'가 '전도사'가 됐다. '유튜브가 클래식 음악의 민주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선언한 그녀는 지난해 음악과 영성에 관한 에세이집 '침묵의 소리'를 펴낸 이후 현재 머물고 있는 스위스의 중고등학교에서 '토크 콘서트'를 여는 등 온라인이 아닌 현장에서 대중과 만나며 클래식 알리기에 열심이다.

덕분에 임현정은 자신이 살고 있는 스위스 뉴샤텔주의 협회와 기관들을 후원하는 동시에 자원 봉사에 참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스위스 '뉴샤텔 국제문화상'을 받았다.

1995년 설립된 뉴샤텔 국제문화상은 국제문화 규모 확대와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 간의 교류 촉진에 공헌한 이들을 표창한다. 임현정은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뉴샤텔 인종차별 금지운동'에도 참여해왔다. 지난해 4월에는 국제 피아노 콩쿠르의 심사위원직을 3일 만에 스스로 사임하는 당찬 면모도 보였다. 심사 과정이 불합리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모든 것은 결국 클래식음악을 아끼기 때문이다. "클래식이 왜 위대한 음악인가에 대해서 전해주고 싶어요. 클래식 음악이 얼마나 대중적인 음악이고, 머리털까지 쫑긋쫑긋 서게 만드는 음악인 것을 알리고 싶죠. 그래서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요. 클래식을 대중화시키는 활동을 많이 하고 있고 더 하고 싶죠.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4악장은 누구라도 춤을 출 수밖에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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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19/01/09 00:38:0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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