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 2019년 1월의 독립운동가 유관순 선생. (독립기념관 제공)
【서울=뉴시스】 오종택 기자 =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유관순(1902. 12. 16. ~ 1920. 9. 28.) 선생을 2019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보훈처는 2019년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그 동안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인물 중 3·1운동과 임시정부 활동에 공로가 큰 인물을 재선정하며, 유관순 선생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앞세웠다.
선생은 1902년 12월16일 충남 목천(현재 천안)에서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1918년 4월 이화학당의 고등과 1학년에 진학했다. 3·1운동이 발발하기 바로 전날 고등과 1학년 학생 5명과 시위 결사대를 조직해 시위운동에 동참했다. 3월5일 5명의 시위 결사대 동지들과 함께 서울에서 진행된 남대문역 만세 시위운동에도 참여했다.
학교가 문을 닫게 되자 선생은 서울의 독립운동 소식을 고향에 전하고, 만세 시위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3월13일 사촌 언니인 유예도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몰래 숨겨 귀향해 본격적으로 고향에서의 만세 시위운동을 추진했다.
4월1일 병천면 아우내 장날, 선생은 장터 어귀에서 밤새 만든 태극기를 나눠 주며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일본 헌병들이 달려와 총검을 휘두르며 만세 시위운동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선생의 부모가 순국했다.
이에 선생은 군중들과 함께 아버지의 시신을 둘러메고 병천 헌병주재소로 찾아가 항의 시위를 계속했다. 그 날 선생은 다른 시위 주동자들과 체포돼 천안헌병대로 압송됐다.
선생은 천안헌병대에서 갖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시위 주동자라고 말했다. 서대문 감옥에서 탄압과 고문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옥중 만세를 불렀다. 1920년 3월1일 3·1운동 1주년을 맞이해서는 수감 중인 동지들과 함께 대대적인 옥중 만세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지하 감방에 감금돼 야만적이고 무자비한 고문을 당했고, 중상을 입었으나 치료하지 못한 채 고문의 후유증과 영양실조로 1920년 9월28일 서대문감옥에서 18살의 꽃다운 나이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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