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별·동행 갈림길에 선 민주노총…"무조건 반대는 자승자박"

기사등록 2018/11/23 12:20:11

文대통령 유화적 손짓에 민주노총 "진정성 없다" 버티기

정부, 쌍용차 복직·단결권 확대 권고안 등 달래기 안 통해

"무작정 버티다가 다시 힘든 10년 맞을 수도 있어" 경고

【서울=뉴시스】강세훈 기자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갈림길에 섰다. 노무현 정부 때 그랬던 것처럼 문재인 정부와도 결별을 선언하고 각자 제 갈길을 갈 것인지, 그 때와는 다르게 정부와 함께 양보와 타협의 방안을 논의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했다.

쌍용차 해고자 복직, 근로자 단결권 확대 권고안 등 정부의 유화적인 손짓에도 민주노총은 요지부동인 상황이다. 민주노총 내 계파 갈등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치권과 노동계 안팎에선 이 같은 행보로 인해 민주노총이 스스로를 위기에 빠트릴 수 있고, 그 결과 이 땅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2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출범식에 참석해 민주노총이 불참한 것을 두고 "민주노총은 노사정대표자 회의 논의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에 대한 의지와 진정성을 보여줬다"며 "민주노총이 빠른 시일 내에 참여해 주길 희망한다. 민주노총의 참여야말로 노동계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이 개정된 지 반년이나 지나 이제야 출범한 것은 그래도 민주노총과 함께하고자 하는 여러분의 이해와 애정 때문이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정부가 탄력근로제, 광주형 일자리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경사노위 참여를 강요하는 게 진정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 이주호 정책실장은 "민주노총의 의결 과정을 잘 알고 있으면서 이를 무시하고 경사노위를 출범해 놓고 참가를 강요하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다"며 "각종 노동현안에 대해 일방적으로 자본가의 이익에 기초해서 추진할 게 아니라 민주노총과 진정성 있는 대화가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의 발언은 탄력근로제 확대 취소 등 원하는 것을 얻지 않고는 대화 테이블에 나오지 않겠다는 민주노총의 내부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문제는 민주노총이 이런 입장을 계속 견지할 경우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파국으로 치달았던 노정관계가 다시 되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 마찬가지로 출범 초기 '친(親)노동 정부'라고 자임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인 2003년 5월 민주노총은 철도노조·화물연대 파업을 주도하며 정부와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못해 먹겠다", "노조가 정부 길들이기를 하려 한다"는 등의 비난 발언을 이어가며 노동계와 대립했다. 이에 민주노총은 "선무당 노무현이 노동자 잡네"라고 맞서며 양측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이후 2006년 11월 파견법과 기간제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2007년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면서 노무현 정부와 민주노총은 결국 파국을 맞았다.  

 현 상황이 계속 되면 문재인 정부도 그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강대강 대치가 해법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현재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는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21일 민주노총은 9만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총파업을 벌였다. 당시 청와대는 최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고 공식 성명도 내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민주노총 파업 때마다 '파업을 주도한 세력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던 것과 사뭇 대조적이었다.

총파업 전날 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 문제와 관련해 실질자·해고자·소방공무원·고위직공무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라는 권고안을 낸 것을 두고 문재인 정부가 노동계에 유화적인 손짓을 보낸 것이란 해석도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과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를 두고 빅딜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국민대 이광택 법학과 명예교수는 "아직은 지금의 노정관계를 최악 상황으로 보긴 어렵다"며 "총파업 하루 전날 경사노위 ILO 공익위원안이 나온 것처럼 정부가 노동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고심하는 것 같은 낌새가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일방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노동계 신뢰를 잃은 면이 있는 만큼 일방적인 모습을 지양하고 정책을 추진할 때 정교함도 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학습효과에 따라 문재인 정부도 핵심 지지층인 노동계의 이탈을 최대한 막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하지만 노정관계에 실질적인 변화가 있기 위해서는 민주노총이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강경한 입장만 고수할 게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무엇보다 복잡한 내부 계파 갈등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도 내부 갈등에 원인이 있다. 민주노총 내부는 투쟁 중심의 강경파와 투쟁·대화 병행을 주장하는 온건파로 나뉘어 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는 온건파로 분류된다.

경사노위 공익위원인 김진 변호사는 지난 22일 경사노위 출범식에서 "누구보다 개방적인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이라며 "이럴 때 타협이 안되면 언제 타협이 되겠는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도 같은 날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한 적이 없고, 두 달 뒤인 1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참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경사노위에 대해 조합원들과 민주노총 간부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내용들을 알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10년 가까이 해결되지 않던 KTX승무원과 쌍용차 노동자를 복직시키는 노동계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받아 안은 측면이 강하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이 정부의 유화적 손짓에 "무조건 버티기로 일관할 경우 자승자박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민주노총이 무작정 버티고 중요 현안들에 대해 발목을 잡으면서 문재인 정부에 타격을 입히면, 이런 상황은 진보진영의 정권 연장을 힘들게 하면서 노동계는 다시 어려운 시기를 맞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쳐 10여년 가까이 끌어온 KTX 승무원과 쌍용차 노동자 복직 문제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하루 아침에 해결된 것을 민주노총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노정간 극한 대립이 결국 노동자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쉽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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