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관 경영이야기⑪]'한강의 기적' 여기까지인가, 암울한 한국 경제

기사등록 2018/11/24 06:01:00

한강 준설선, 1958년
한강 준설선, 1958년
【서울=뉴시스】 현명관의 '경영 이야기' <11>

 요즘 우리나라의 경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선배들이 피땀흘려 이룩한 '한강의 기적'이 중진국 덫에 걸려 여기서 좌초되고 마는 것은 아닌가···.

국내 정치가 국민을 실망시켜도 경제만큼은 세계 석유파동,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어려운 고비고비를 잘 극복하여 왔고, 우리의 유일한 자긍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마저 잃어 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들입니다.

우리가 외국인을 만나거나 해외로 여행을 갔을 때, 그래도 기 죽지 않고 어깨를 편 채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도, 외교도, 군사도, 기술도 아닌, 바로 경제 때문이었습니다. 자원강국도, 땅넓고 인구많은 대국도 아닙니다. 게다가 기술이나 군사력이 열강에 비해 앞서는 나라는 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세계 정치·군사 강국과 경제선진국 사이에 낀 작은 나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전쟁의 폐허 속에서 경제기적을 이루었다는 자존심 하나만은 가지고 살아 왔습니다.

20년 전 아프리카의 가나와 앙골라 등을 방문했을 때도 그 나라의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제일 먼저 물은 것이 어떻게 빠른 기간에 획기적인 경제기적을 이룰 수 있었느냐(1963년 1인 GDP가 87달러로 가나와 같고 필리핀의 2분의 1에 불과)는 것입니다. 아울러 개별적인 경제협력 프로젝트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제발전 노하우를 배우고 싶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한강의 기적은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일어나기 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외환위기 이전 20년 동안(1978~1997)을 살펴보면 국민 총생산은 537만달러에서 5576만달러로 10배, 연평균 8.63% 성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성장률은 세계 평균성장률(3.14%·1980~2017)의 2배를 훨씬 상회하여 3배 가까이 되었고, 정치 격변기인 1980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세계 평균성장률을 하회한 적이 없습니다.

수출은 1978년 127억달러에서 1997년 1316억달러로 10배 이상, 1인 GDP는1978년 1452달러에서 1997년 1만2134달러로 8.4배가 늘었습니다.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할 만 했고, '쓰레기통에서 장미 꽃이 피었다'고 할 만 했습니다.
한강 세빛섬
한강 세빛섬
나라는 작지만 경제는 세계 10위권에 드는 경제강국이 되었습니다. 경제규모로는 세계 12위, 수출은 세계 6위의 무역대국이며 외환 보유고는 4030억달러가 넘어 세계 8번째입니다. 인터넷 이용률 세계 4위, 조선 수주량 세계 1위, 조강 생산량 세계 6위, 자동차 생산량 세계 6위···. 5000년 역사상 이런 적이 있었습니까?

우리나라의 역사는 거의 대부분 중국과 함께했습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삼전도의 치욕, 대원군의 납치 등 굴종의 역사였습니다. 또 돈, 물자, 사람, 정보, 기술, 문화 등이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흐르는 일방통행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50년 동안 이 모든 것들은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역류하고 있습니다.

한·중 국교 정상화가 된 후 지금까지 중국과의 교역은 3조달러를 넘겼고, 대중국무역 흑자가 6000억달러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또 최근 5년간(2013년~2018년 6월·홍콩 포함) 우리나라가 중국에 투자한 금액은 290억7000만달러(투자송금 기준)로 중국은 이제 우리의 주요 투자대상국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잠시 소강상태이지만 한류가 중국 전역을 휘몰아 치기도 했습니다. 돈, 물자와 문화의 역류현상입니다.

또 우리 역사 5000년 동안 중국의 통치자가 평화시기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대륙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 마오쩌둥, 화궈펑, 덩샤오핑을 제외하고 장쩌민, 리펑, 차오스, 후진타오, 시진핑 등 전 수뇌부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왜 왔을까요? 군사, 외교, 정치 회담을 위한 것입니까? 경제를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현대조선,포항제철 등을 방문하고 벤치마킹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상황이 바뀌기 시작하였고, 특히 최근 경제상황은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20년(1999~2018)간 우리나라의 평균 GDP 성장률은 4.42%(2018년은 추정치)로 외환위기 이전(1980~1997) 18년간의 8.63% 대비 반토막났고, 특히 최근 2011년 이후 8년간은 세계경제 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수출도 외환위기 이전 20년간 10배나 신장하였으나 외환위기 이후 20년 동안은 3배 정도 늘어나는 데 그쳤습니다. (1999년 1434억달러에서 2017년 5737억달러)

투자지표는 전망은 더 어둡습니다. 외환위기 이전 매년 11.7, 10.3%씩 하던 설비와 건설 투자가 외환위기 이후로는 각각 6.8, 2.1%로 위축되었으며 R&D 투자도 절반 이하(외환위기 전 23.5%였던것이 9.8%로)로 급락하였습니다.

2011년 이후 한국인의 해외 투자규모는 외국인 국내 투자액의 2배가 넘습니다. 2017년 한 해만 예로 들어도 외국인의 국내 투자액은 229억달러인데, 한국인의 해외투자액은 494억달러입니다. 그만큼 국내에 투자했으면 만들어졌을 일자리가 해외로 유출된 것입니다.
필자
필자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요 먹거리 역할을 해 온 수출 주력상품도 최근들어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는TV의 경우, 수익성이 좋은 대당 2500달러 이상의 고급품은 2015년 76% 점유율이었던 것이 지금은 일본 소니에 잠식 당해 51%로 급락하였고, 우리의 자랑이던 삼성 스마트폰도 2013년 32.3%에서 20%로 세계시장 점유율이 떨어졌고, 특히 중국에서 한때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애플에 눌리고 중국제품에 쫓겨 고작 1%로 유지하는 것도 버거운 형편입니다.

자동차도 고전을 면치 못하여 한때 10%에 육박하던 중국시장 점유율은 3%로 떨어졌으며 철강은 특수강을 제외하고는 이미 경쟁력을 상실하였고, 유일한 희망인 반도체마저 중국정부가 170조원을 투입하여 금년 말이나 내년 초에 D램 생산을 개시하면 저가 보급품은 1위 자리를 중국에 넘겨줄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먹거리였던 품목들이 그 경쟁력을 상실하여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무엇으로 먹고 살아 가야 합니까?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 형성되는 글로벌 전쟁에 뛰어 들어가야 하는데 우리 기업의 실력은 어떻습니까? 지능형 로봇, 우주과학, 첨단 의료기기, 인공지능, 생명공학 등의 전선으로 뛰어들어가야 하고 또 이겨야 하는데 우리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기업들은 지금 자기 밥그릇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하물며 4차 산업혁명 전선은 엄두도 못내고 넋을 잃고 있습니다. 미국 등 선진국도 법인세율을 인하하는데 우리나라만 최근 법인세율을 인상하고 감사위원 선출 관련 대주주의결권 제한, 집중투표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연금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는 등 대기업, 중견기업들은 경영권 방어에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발등의 불을 끄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중소·영세 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최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등으로 생존 자체를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칠 지경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도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이상 격차가 벌어져 있는 4차산업혁명 핵심기술의 갭을 언제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우리 경제의 고민이 있고, 그래서 위기감이 고개를 드는 것입니다.

전 삼성물산 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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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관 경영이야기⑪]'한강의 기적' 여기까지인가, 암울한 한국 경제

기사등록 2018/11/24 06:01:0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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