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식 건의사항엔 "이런 조사 좀 하지 말라"

【서울=뉴시스】국립암센터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예방 특별점검 온라인 실태조사' 조작 현황 일지. 2018.10.29.(표 = 정춘숙 의원실 제공)[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임재희 기자 =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암센터 직원이 성희롱·성폭력 온라인 실태조사 때 매크로(자동 입력 반복) 프로그램을 이용해 2100여명의 답변을 문제가 없는 것처럼 조작한 사실이 나타났다. 이 직원은 "이런 조사 좀 하지 말라"고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은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보건복지위원회 소관 30개 공공기관의 성희롱·성폭력 예방 특별점검 온라인 실태조사 결과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정 의원은 "성희롱·성폭력 등을 목격하거나 전해들은 경험을 묻는 문항 등에 100%가 '없다'고 답했는데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매크로 조작 사실을 알게 됐다"며 "설문조사를 조작하는 건 범죄행위"라고 29일 국정감사에서 질타했다.
해당 조사는 여성가족부에서 3월12일~4월6일 공공기관 2022곳의 전 직원을 대상으로 '최근 3년 내 성희롱 피해경험, 피해유형, 행위자와 관계, 성희롱 발생 후 대처, 사건처리 조치 적절성, 신고 후 2차 피해 등'을 묻기 위해 진행됐다.
국립암센터가 3월18일부터 30일까지 설문조사를 완료하지 못하자 여가부는 담당직원 A씨에게 6차례 설문조사 완료 요청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이에 A씨는 불법 프로그램인 매크로를 이용해 응답 대상자 2105명 중 2014명이 모두 답변한 것으로 응답률을 조작했다. 이 과정에서 2104명이 모두 동일한 답변을 선택한 것으로 처리했다.
나아가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예방을 위한 건의사항을 적는 주관식 문항엔 "이런 조사 좀 하지 말라"고 기재했다.
국립암센터는 물론 복지부, 여가부 모두 이같은 사실을 알지 못하다가 이달 들어 정 의원이 요구한 국정감사 자료를 준비하던 중 파악하게 됐다. 결국 국립암센터는 온라인 실태조사를 다시 실시하고 경위를 파악해 이달 19일에서야 온라인 조사를 마무리하게 됐다.
A씨는 제출한 경위서에서 "수차례 온라인 실태조사를 독려해도 기관의 응답률이 오르지 않아 불법 프로그램인 매크로를 사용했다"며 "설문조사 조작 건에 대해 깊은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춘숙 의원은 "조직 내 성폭력 예방 근절 및 조직 점검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에서 불법 프로그램인 매크로를 사용하여 응답률을 조작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며 "소관부처인 여성가족부와 확인을 소홀히 한 복지부, 국립암센터에 대한 엄중하게 문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그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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