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키신, 시간을 이겨낸 음악···8번 앙코르·30회 커튼콜·90번 인사

기사등록 2018/10/29 00:12:46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 그런데 물리적 음표의 나열로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러시아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47)이 28일 오후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친 4번째 리사이틀이 보기다.

이날 오후 5시에 시작한 본 공연의 러닝타임은 인터미션 20분을 제외하고 1시간38분이었다. 그런데 이후 앙코르는 1시간22분이었다. 무려 앙코르로 8곡을 선보였다. 물론 내내 연주만 한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커튼콜과 인사, 청중들의 환호까지 포함된 시간이다. 하지만 이런 소리들까지 연주의 연장선상으로 여겨졌으니, 오롯하게 앙코르 시간으로 봐도 무방하다. 

앙코르 무대에서 키신은 흡사 음악 도서관 사서 같았다. 무대 중앙에서 미소가 가득한 순진한 얼굴로 청중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고 깍듯이 인사를 한 뒤 성큼성큼 피아노로 다가가,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골라 들려줬다.
 
서정적인 슈만 트로이메라이로 시작한 앙코르는 탱고 풍의 키신 자작곡을 거치는 동안 평안했다. 세 번째 앙코르 곡 쇼팽 폴로네이즈 6번 '영웅'부터 격정으로 치달았다. 박력 있으면서도 우아한 '영웅'의 재림에 울컥했다. 그래도 네 번째 앙코르 스크랴빈 에튀드까지 비교적 공연장 내 분위기는 평안했다.

하지만 지난 3월 티켓 오픈 당시 수분 만에 이미 2300여개의 좌석을 매진시킨 청중은 이날 더 뜨거웠다. 키신이 무대 뒤로 사라진 뒤에도 록스타, K팝 아이돌 콘서트장을 능가하는 기립 박수와 환호가 멈추지 않았다.

네 번째 앙코르곡이 끝나고 4번째 커튼콜이 이어진 뒤 키신은 다섯 번째 앙코르 쇼팽 왈츠를 연주했다. 공연이 끝난 줄 알고 사인줄에 합류하러 로비로 나가던 청중들은 객석 맨 뒤에 서서 무대를 바라봤다.
 
이 연주가 끝난 뒤 또 세 번의 커튼콜이 이어졌고, 여섯 번째 앙코르로 브람스 왈츠가 울려퍼졌다. 이 곡이 끝난 뒤 역시 세 번의 커튼콜이 이어졌고 키신은 일곱 번째 앙코르로 차이콥스키의 피아노를 위한 여섯개의 모음곡 중 4번을 선보였다. 지치지도 않는지 키신의 피아노 음색은 갈수록 투명해졌다.

이후 또 4번의 커튼콜이 이어졌다. 또 키신은 여덟 번째 앙코르 라흐마니노프 프렐류드 Op. 3 No. 2를 연주했다. '모스크바의 종'이라는 부제를 지닌 이 곡은 아름다웠고, 현란했고, 상승감을 안고 비상했다.

이후 커튼콜, 커튼콜, 커튼콜, 커튼콜, 커튼콜, 커튼콜, 커튼콜, 커튼콜, 커튼콜, 총 9번의 커튼콜이 이어진 뒤 이날 공연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 정확히 시곗바늘은 오후 8시24분을 가리켰다. 공연 시작 3시간24분만이었다. 공연기획사 크레디아는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 내 붙여 앙코르 목록을 알리는 '오늘의 앙코르' 종이에 8번째 앙코르곡 쓸 자리가 없어 맨 위 여백에 이 곡명을 쓰기도 했다.  

이날 커튼콜은 본공연까지 포함하면 최소 30여차례 이어졌다. 키신은 커튼콜 때마다 최소 객석 정면을 바라보고 두 번, 무대 뒤편 합창석을 바라보고 한번씩 고개를 숙였으니 90번가량 인사를 한 셈이 됐다.

키신의 직전 리사이틀인 2014년에는 앙코르가 세 번에 그쳤다. 2006년 첫 내한 리사이틀과 2009년 두 번째 리사이틀에서는 '10번의 앙코르', 공연 시간은 3시간30분이 넘었다.

이번 리사이틀은 물리적인 숫자로만 따지면 첫 번째 두 번째 내한공연에 살짝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음악이 숫자 놀음도 아니고 그 감흥은 절대적이었다.
  
음악은 시간예술이지만, 그 찰나를 담은 마음은 영겁이다. 그래서 좋은 음악은 시간을 이겨낸 음악이다. 연주자와 청중 사이의 인력으로 끊임없는 앙코르가 이어졌지만 앙코르를 몇 번 했냐가 아닌, 진심으로 그것을 바란 마음이 중요하다. 물리적인 제약 때문에 앙코르를 끝냈어야 했어도 모두가 그 마음을 안 연주회였다. 

그래서 이날 연주(演奏)는 연주(聯珠)가 됐다. 악기를 다뤄 곡을 들려주는 일은, 구슬을 꿰놓은 듯한 아름다운 시문(詩文)이 됐다. 이 아름다운 순간들은 알찬 본 공연이 똬리를 틀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키신은 애초 이번 리사이틀 1부에서 베토벤 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를 연주할 예정이었다. 대신 쇼팽의 녹턴과 슈만의 피아노 소나타 3번으로 프로그램을 바꿨다. 그런데 슈만의 피아노 소타타 3번은 영롱함을 머금은 아름다움이 일품이었다. 2부에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프렐류드는 청중을 깊은 심연으로 끌고 들어갔다. 미리 내한해 한국에서 충분한 리허설을 하고, 공연장 인근까지 산책한 키신의 여유 덕분이었다.

이날 공연이 끝난 뒤 사인회가 이어졌고 로비는 인파로 가득찼다. 클래식계 대형 공연이었던 만큼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유명 인사도 눈에 띄었다. 키신의 내한은 드물고 귀한데 그는 내달 또 한국을 찾는다. 11월3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내한공연 두번째 날에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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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18/10/29 00:12:46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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