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혐오한다①]맘충·틀딱충·한남충…끝없이 피어나는 '악의 꽃'

기사등록 2018/09/07 07:50:00

최종수정 2018/10/01 09:00:40

성별·세대·빈부·국적 막론 '혐오 신조어' 무한 생성

벌레 충(蟲)만 붙이면 손쉽게 만들어 공격에 이용

'남초 사이트' '여초 사이트'는 남녀 전쟁 최전선

난민 문제엔 어김없이 '난민충' '똥남아' '개슬람'

혐오 표현 노출되는 소수자들 스트레스, 우울증

누구나 피해자 될 수 있고, 가해자도 될 수 있어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극혐'. 요즘 온라인과 실생활에서 난무하는 말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 누구도 그 의미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극도로 혐오한다'를 줄인 단어로 무언가가 정말 싫을 때 활용하는 신조어라는 걸 설명하는 일 자체가 새삼스럽다. 그만큼 흔히 쓴다. '-충'(蟲)이라는 새로운 접미어도 마찬가지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단번에 깎아내리려면 '지방충'이라고 부르면 그만이다. 충은 실제 벌레처럼 어디에나 들러붙을 수 있다. 혐오는 쉽고 간편하다.

 우리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편하게 느꼈던 이 말들이 부지불식 간에 어떤 문제의식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것, 그게 바로 혐오가 일상화된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혐오 표현은 도처에 자욱하게 깔렸다. 세대·인종·계층·지역 간 반목이 없었던 시대가 언제는 있었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을 갈라쳐 상대를 찍어누르고 증오하며,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마저도 걸림돌로 여기는 지경에까지 이른 적은 없었다. 혐오 표현은 그 대상을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거나 혹은 아예 제거해버리고 싶다는 욕망을 전제한다. 혐오가 세를 불렸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끔찍한 결과들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또는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알고 있다.

 해충처럼 창궐해만 가는 '혐오의 일상화'를 경계하고, 최소한 혐오가 함께 어우러져 사는 우리 공동체의 심각한 문제라는 걸 환기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혐오의 드러난 각종 양태와 해악을 두루 살펴보면서, 그 속에 감춰진 원인을 짚어보고 해법도 모색하는 시리즈 기사를 7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서울=뉴시스】류병화 기자 = 지난 수년간 혐오 표현은 성별·세대·빈부·국적 등 분야를 막론하고 갈수록 새로운 토양을 개척하며 번식해갔다. 온라인에서 탄생해 점차 유행하다 오프라인까지 옮겨가 차별적 의미를 담은 신조어들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온라인 상의 차별·비하 관련 시정 요구 건수가 2011년 4건에서 2016년 7월 기준 1352건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신용현 국회의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차별·비하 표현에 대한 지적 건수가 가장 많은 사이트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였다. 디시인사이드와 메갈리아도 당시 상위를 차지했다.

 혐오 신조어는 어렵지 않게 만들어진다. 특정 집단을 지칭하는 단어에 일단 '벌레 충'(蟲)을 붙이기만 하면 상대를 비하할 수 있다. 이 말은 극우에 여성혐오 성향을 띈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의 회원을 지칭하는 '일베충'에서 시작됐다. 이후 '맘충' '급식충' '틀딱충' 등으로 확장했다. '맘충'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급식충'은 학교 급식을 먹는 중고등학생들을, '틀딱충'은 틀니를 착용한 노인을 모욕적으로 깎아 내린다.

 차별받는 집단만이 아니라 행위·특성 등을 겨냥한 단어들도 이용되고 있다. 어떤 사안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사람을 '진지충'이라고 하는 식이다. '설명충', '맞춤법충', '문법충' 등 성격적인 면에서 상대를 비꼴 때 쓰이게 된다.
익명을 무기로 혐오 표현이 기승을 부리는 온라인 전장(戰場)에서 네티즌들은 다양한 혐오 표현을 쏟아내며 서로를 깎아내리는 데 혈안이 돼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혐오·비난은 성적 대상화, 폭력 등 성차별적 문구 중 다수를 차지할 정도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지난 6월 1~7일 온라인 커뮤니티 8곳에서 발견한 성차별적 문구 161건 중 혐오·비난이 135건(83.9%)으로 압도적 다수를 이뤘다. 성차별적 문구 중 폭력·성적대상화 유형은 16.1%에 그쳤다.

 온라인에서 남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른바 '남초 사이트'와 여성 위주의 '여초 사이트'는 상대를 비하하기 위해 각기 다른 '신조어 무기'를 그야말로 총동원한다. '한남충(한국 남성에 벌레 충을 붙인 단어)'과 '웜충(여성주의 커뮤니티 워마드 유저를 깎아내리는 말)'은 가장 기본 어휘다. 아예 남녀의 성기를 뜻하는 비속어로 상대를 일반화해 부르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김치녀', '김여사'와 같은 표현이 남성들을 중심으로 쓰여왔다. 이에 여성 인터넷 유저들은 대항 표현으로 '한남충', '○○남'이란 단어를 적용하고 있다. 이들은 남성들도 혐오 표현에 불편함을 느끼고 그러한 단어들의 폭력성을 깨달으라는 의미에서 해당 단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이른바 '미러링'이다.

 남성 중 약자도 그 표적에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 남자 아이를 비하하는 용어인 '한남유충', 남성 동성애자들을 혐오적으로 표현하는 '똥꼬충'과 같은 단어들이 일부 여성 커뮤니티나 기사 댓글 등에 흘러 넘친다. 트랜스젠더는 '젠신병자'(트랜스젠더+정신병자)라고 부른다.

 심지어 같은 여성이라도 의견이 다르면 매도되기 일쑤다. 남성주의적 사고방식에 동조한다고 딱지를 붙이는 용도로 쓰는 '흉자'(흉내 자지), '명자'(명예 자지)가 가장 흔하다.
세대 갈등에 따라 특정 연령층을 겨냥한 단어들도 끊임없이 생성된다. '급식충', '틀딱충', '개저씨' 등이 그 예다. '급식충'에는 중고등학생은 버릇이 없고 세상 물정 모른다는 의미가, '틀딱충'은 구닥다리 노인들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시각이, '개저씨'에는 중년 남성들은 대개 끔찍한 꼰대라는 규정이 담겼다.

 최근에는 제주도로 예멘 난민 500여명이 들어와 논란이 되자 어김없이 혐오 표현이 새로 등장했다. '난민충', '예멘난민충', '똥남아'(동남아 지역 비하 표현) 등 출신 지역을 토대로 조롱하거나 '개슬람'이라며 특정 종교를 비하하는 각종 단어들이 온라인상에 판을 친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더욱 쉽게 혐오 표현에 노출되는 소수자들은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지난해 발간한 '혐오표현 실태와 규제방안 실태조사'에 따르면 혐오 표현을 접한 이후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경험하였다'라는 질문에 장애인(58. 8%), 이주민(56.0%) 성소수자(49.3%) 등 절반 정도의 응답자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과연 소수자들만 이런 어려움을 겪을까. 만인의 만인을 향한 혐오 사회에서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가해자도 될 수 있다. 다음 회에는 일상에서의 그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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