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 현대차 시리즈 2018: 최정화-꽃, 숲'전 5일 개막
플라스틱 바구니·빗자루·냄비등 버려진 소모품으로 작품
식기 7천개로 만든 '민들레· 세월호 추모 '어린 꽃'등 전시
주워 모아 쌓은 '일상 예술'...'4차원 입체 민화'라는 평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이 전에 없이 인기다. 보기만 해도 홀린다. 가던 발길도 당겨, '자석 미학'을 발휘한다.
알록달록 방사형의 거대한 모양이 마당에 우뚝 서있다. 360도 어디에서 봐도 회호리 치듯 꽂히는 희안한 설치물 앞에서 모두 같은 말을 읊조린다. '기가 막히네~'
'뭐지?' 하고 왔다가 빵~웃음꽃을 터트리게 하는 이 설치물은 설치미술가 최정화(57)의 '민들레' 작품이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부터 찜통, 프라스틱 대야, 후라이팬등이 모여 존재감을 발산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던가. 버려지거나, 버려질뻔한 위기에서 대탈출한 식기 7000여개가 뭉쳐 '풀 파워'를 장착했다.
높이 9m, 무게 3.8톤으로 합체된 식기들의 거대한 반란이다.
'MMCA 현대차 시리즈 2018' 작가로 선정되어 만든 최정화의 신작. 지난 3월부터 '모이자 모으자'(Gather Together)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진행, 가정에서 버려지는 생활용품을 수집해 만들었다.
"작품은 내 것이 아니다. 그 판단도 내 몫이 아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이 신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4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난 최정화는 "'최정화'라는 가짜가 탄생하는 '최정화 손오공' 작전에 동원되는 전시"라고 했다.
민머리의 '삼장법사'같은 모습의 그가 '손오공 작전'이라니. 무슨 뜻일까.
"수천만명의 최정화가 생기는게 '신화의 탄생'이다. 개인의 신화가 가장 큰 신화다. 부인해도 되지만 제도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정말로 좋고, 나쁘고는 모두 다를 것이다. 내 작품은 미학적일수도, 상징적일수도, 조형적일수도, 막가파일수도 있다. 각자의 최정화를 기념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작전이다."
그는 '쌓기 신공'으로 현대미술을 희롱한다. '하찮은 사물'들의 둔갑술로 '예술이 별거냐'며 꼬집는다. 1990년대 플라스틱 소쿠리를 거대한 탑처럼 쌓아올려 알록달록 형형색색, '형설지공(螢雪之功) 일취월장했다.
플라스틱 바구니, 돼지저금통, 빗자루, 풍선 등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소비재를 예술로 재탄생시키는 그의 작업방식은 고급예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며 급속한 경제성장이 빚어낸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모습을 은유한다.
작품 앞에서 사진촬영이 가능한 예술을 하고 싶었다. 1994년부터 '퍼블릭 아트'를 하게된 이유다. '썬데이서울'(1990), '쑈쑈쑈'(1992) 등 단체전부터 ‘올로올로’(1990), ‘스페이스 오존’(1991), ‘살바’(1996)와 같이 먹거리, 음악, 전시, 공연, 세미나가 어우러지는 젊은 세대의 공간도 디자인해 작가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 건축가까지 넘나들었다.
1990년대 역동적으로 변모한 한국 소비문화의 중심에서 클럽문화, 대중문화를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와 현대미술과 대중문화의 관계를 긴밀하게 엮어왔다. 시대를 읽는 작가의 독창적인 조형어법은 당시 주류담론이었던 민중미술과 모더니즘이라는 양극화에서 벗어나 한국 현대미술의 외연을 확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지역성과 보편성을 담아내는 작가로 주목받았다.
'운명이 다한 사물'과 최정화는 한 몸이 됐디. 40여녀간 동거동락이다. 일단 줍고 모으고 본다는 그는 "이젠 물건들이 그냥 따라온다"고 했다.
그의 주문은 일상이 예술 '生生活活(생생활활)'. 플라스틱 소쿠리, 양은 냄비, 몽돌, 빨래판은 그에게로 와서 꽃이 되고, 조명이 되고 성전이 된다. 일반 가구는 그냥 쌓았다, 해쳐모여 할수 있다.
그래서 "난 작업을 한적 없다. 여태껏 미술이라고 생각한적도 없다"며 예술로 둔갑한 사물들의 접합을 민망케한다.
"작가의 역할, 예술의 역할은 예술을 빼면 예술이 된다는 것. 일상이 예술이다. 반예술, 비예술이 예술을 만든다. 그것을 증명하는 여러분 마음이 나의 아트가 된다. '유어 아트 마이 아트'"라고 노래하듯 말했다.
‘꽃, 숲’(Blooming Matrix)을 부제로 펼치는 이번 전시회는 '민들레', '꽃, 숲', '어린 꽃', '꽃의 향연' 등을 선보인다. 전시장은 기능을 잃어버린 사물이 부활하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작품의 제목인 ‘꽃, 숲’은 작가가 각지에서 수집해온 물건이 모여 조화를 이룬다.
밝음과 어두움이 대비하는 공간 속 수직으로 세워진 '146개의 꽃탑'은 쌓기 신공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바닥에는 색동천과 거울 같은 반사판이 둘러쳐져 현란함과 혼란함이 공존한다. 마치 '21세기 성황당'처럼 보인다.
그동안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풀어낸 그의 작품은 야외에서 건물앞에서 활기차게 펼쳐졌다. 국내는 기본 해외에서도 광장, 백화점, 공원에 거대한 과일나무와 꽃나무를 설치하며 미술판을 가볍게 접수해왔다. 2014년 문화역서울284를 '총천연색' 플라스틱 소쿠리(바구니)로 물들인바 있다. 오는 11월에는 영화 '미션 임파서블 4'에도 나온 세계에서 가장 럭셔리한 7성급 호텔 버즈 알 아랍 로비에 7m짜리 꽃나무를 설치할 예정이다.
'미술관 전시가 안 어울린다'고 하자 그는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생각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미술관용 전시 좀 해보자. 당신들이 원하는 전시 해줄게. 한번 쇼를 해보자"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나 "원없이 풀어내지 못했다. 더 하고 싶은데 더 못했다"며 '미술판의 야생동물' 같은 습성을 드러냈다.
"과천미술관에도, 경복궁에도 하고 싶었다. 여기 저기 더 많이, 미술관에 안들어와도 볼수 있는 각자의 개인의 예술을 만들어내는 걸 하고 싶었는데, 미술관에서 다음 기회에 하자고 하더라."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박영란 학예연구관은 "전시틀은 빼기가 묘미인데, 작가는 더하기만 있다"고 하자, 그는 "파주에 작업실 겸 창고가 있다. 냄비 그릇뿐만 아니라 가구 자개장까지 많은 짐이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죠?"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MMCA 현대차 시리즈'전이다. 2014년부터 10년간 매년 1인의 우리나라 중진작가를 지원하는 연례 프로젝트다.
전시장안에는 146개의 꽃숲과 더불어 '어린 꽃'도 눈길을 끈다. 금빛, 은빛의 화려한 유아용 플라스틱 왕관을 활용한 작품으로 눈부신 거울면 위에 설치되어 7m를 힘겹게 오르고,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작가는 끝내 오르지 못하는 이 왕관을 통해 세월호 침몰로 희생당한 어린 생명을 추모하고자 제작했다. 반짝이는 미러 시트 위에 놓인 왕관은 작가가 어린 생명에게 씌어 주고 싶은 마음에서 선택한 소재로 슬픔과 안타까움을 담은 추모의 의미가 다른 일체의 언급이나 수사대신 최정화 특유의 방식으로 재현됐다.
이와 함께 밥상탑, 밥공기로 만들어진 '꽃의 향연', 무쇠솥, 항아리 등으로 만들어진 '알케미', 빨래판으로 이루어진 '늙은 꽃' 그리고 화려한 색채로 쌓여진 '세기의 선물'에서는 물건의 수집과 축적, 시간이 쌓인 재료 사용 등 작가만의 독특한 방식이 담겨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성(聖)과 속(俗)이 한자리에서 어떻게 '속성'이 될수 있을까를 보여준다. 명품관이나 일반관이나 동전의 앞과뒤 처럼 똑같은 것이다. 버린 물건과 다시 태어나는 물건의 순환에 대한 이야기.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현란함과 혼란함, 성과 속이 한데 어우러져 '우주적 비빔밥' 미학을 보이는 이번 전시는 그 들뜸을 눌러주는 공간도 마련됐다.
작가가 일명 '명상의 공간'이라고 이름 붙인 공간은 '꽃 숲'의 뒤편을 흰천으로 둘러 공간을 분산시켰다. 앞에서 알록달록 각양각색의 사물들이 수많은 이야기를 건넨다면, 뒤편은 쌓은 사물들의 그림자로 차분하게 한다.
"모두가 앞면만 보는데 벽과 그늘, 빛과 그림자 전체가 하나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명상의 공간이다. 그런데 그 또한 기준은 없다. 알아서 즐기시라."
'쌓기'의 달인, 그에게 '쌓기'란 무엇일까?
그는 "염원과 애도"라고 정의 했다. "시간의 축적이라고도 하지만, 쌓는다는 것은 너무 의미가 많다. 쌓기는 원시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쌓는 건 전 세계가 동일하다. 기독교, 이슬람 첨탑의 양식도 쌓는것 아닌가. 나무도 탑이고 쌓인 것도 탑이고, 이 쌓기는 땅에서 하늘로 뜻을 전달하는 것이다."
"먹이를 잘 잡게, 농작물 잘 되게 해달라는, 결국 잘 먹고 잘살게 해달라는 염원으로 그 양식과 내용을 빌려서 쌓는 것"이라며 마당에 설치된 작품 '민들레'에 염원이 많이 담긴 곳이니까, 수능 시험 합격 기원도 여기 와서 빌면 되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제안도 했다.
7000개의 다양한 식기를 모아 만든 마당에 설치된 거대한 작품 '민들레'는 '민(民)들(土)레(來)'라는 의미가 담겼다. 최정화는 이 작품앞에 시를 지어 비석도 만들었다. "텅빈 내가 먹던 그릇, 너를 먹이던 그릇, 네게 힘을 내주어주고 남과 더불어 살라는 밥 그릇 땅과 하늘사이 찬란한 빛이 되었습니다 먹이고 먹는일을 돌보시는 어머니 당신께 이 빛을 바칩니다.'라고 써있다.
"예술은 미끼와 삐끼"라고 주장하는 그는 "결국 예술은 호객행위를 하는 거다.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그래서 미술작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미술만 하지말아라. 다른 것 다 해도 된다. 제발 딴짓 좀 하라"고 일갈했다.
작가 최정화는 사물들과 함께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사물은 극에 달하면 그로부터 반전한다는 뜻)했다.일상과 예술,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넘어 '키치(kitsch)작가'에서 ‘국내 대표 설치미술가’ 로 진화했다.
삭은 양푼이 탑이 되듯 그의 작품은 이제 이 시대 모든 것과 통한다. 그래서 '4차원 입체 민화'라고도 한다. 이름없는 무명화가들이 만들어낸 민화처럼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모두가 함께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나는 모아만 놓았을뿐이다. 이번 전시에는 찌그러진 냄비는 기본, 청동기, 고려, 신라,조선 시대 물건들과 아프리카 태국 스톡홀름 남미등 모든 시대와 나라의 것이 섞여있다. 우주적 비빔밥, 한정식 밥상, 묵히고 삭힌 젖갈이 된다. 각자 알아서 골라먹우면 된다. 예술이라는 건 몰라도 된다. 즐기고 자기 생각을 가져가면 된다."
근엄하고 조용했던 미술관을 경쾌하고 웃기게 '정화'시킨 최정화 작가는 "앞으로 우리가 알던 예술은 없어진다"고 자신했다. 이번 전시도 수많은 사물들이 쌓여 북적북적 하지만 결국 간단한 이야기라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기념비입니다. 당신은 훌륭합니다." 2019년 2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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