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낭 레제와 연계되는 현대 작가로 선정
10년간 진행 '뉴스프럼노웨어' 프로젝트
11월 23일부터 영상 세상의 저편·신작 '이례적 산책' 전시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경원씨요? 이해가 안됩니더. 성격도 너무 다르고…나는 돌진하는 스타일이고, 경원씨는 진짜 침착하게 정리하는 사람입니다"(전준호)
"진짜 소통안돼요. 하하하~그런데 통하는 지점이 많은 부분은, 어쨌든 좋은 작품을 같이 만들고 싶다는 목적 의식이 확실하니까. 계속 싸우면서도 객관화시켜서 같이 하는겁니다."(문경원)
20일 서울 갤러리현대 주최로 기자 간담회를 연 문경원 전준호 작가는 국내 최고의 만담 콤비 장소팔, 고춘자 같았다. 한사람 말이 끝나면 곧바로 받아치고, 번갈아 말을 이었다.
문경원 전준호는 마치 문경원전준호가 한 글자처럼 불리는 미디어영상설치작가다. 굳이 분리하자면 문경원은 여자, 전준호는 남자여서 '부부 작가'로 착각하기 일쑤다. 나이도 50, 동갑내기다.
"많이 오해를 받는다"는 작가 전준호는 "부부가 아니라고 하면 서양사람들은 저보고 아아~하고 게이일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오래 (같이)있을수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즐거워했다.
"첫번째 하고 그만 두려고 했어요. 너무 싸우고 피곤해서. 또 두번째하고 마치려고 했는데, 시카고에서 부르고 취리휘에서 부르고. 타의든 의지든 마치 눈덩이가 산에서 굴러떨어지듯 계속 굴러가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젠 멈출래도 멈출수가 없네요.하하하."
'에고(Ego)'가 강한 작가들이 뭉쳐 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건 미술계에선 이례적이다. 심지어 같은 대학 출신도 아니고 고향도 다르다. 서울 여자, 부산 남자인 둘은 2007년 만나, 서로의 작업을 신랄하게 비판하다 2009년 공동작업하자고 의기투합했다. 2012년 제 13회 카셀 도큐멘타를 통해 처음 소개되며 이름을 알렸다. 그때 발표한 '뉴스 프럼 노웨어' 프로젝트를 10년째 진행중이다.
카셀 이후 나비효과가 터졌다. 2013년 시카고 예술대학 설리번 갤러리, 2015년 스위스 취리히의 미그로스 현대 미술관에서 예술 대학교수와 학생들과 함께 예술의 실천적 담론을 논했다. 도시와 나라를 옮겨다니는 문경원 전준호의 '뉴스프롬노웨어'는 '예술이 이 시대에 무엇을 할수 있나', '우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수 있나'를 알아보는 프로젝트다.
이해도 안되고 소통도 안돼는 서로 다른 남여 작가가 한 프로젝트를 10년간 추진하는 원동력은 '과연 예술은 쓸모가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의 힘이다.
"유랑극단처럼 보따리 싸들고 다니며 전시하다, 예술가로서 회의가 들었어요. 흔히 말하는 예술은 대중과의 소통. 그 말이 너무 상투적이고 추상적으로 들렸죠. 대중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어느 범위가 대중인가? 소통은 어떻게 이뤄지는지...이런 것들이 현대미술이라는 미명아래서 상투적으로 벌어지는 의미를 찾을수 있을까?라는 희의. 그렇다면 '예술가로서 뭘 할수 있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이 시작점이었습니다."
눈덩이 처럼 불어난 '뉴스프롬노웨어'가 10년만에 제대로 일을 터트렸다. 영국 테이트 미술관에 소장되면서 프랑스 모더니즘 작가 페르낭 레제와 연계되는 현대작가로 선정됐다.
영국 테이트 리버풀 미술관에서 오는 11월 23일부터 문경원, 전준호의 개인전 '뉴스프럼노웨어 NEWS FROM NOWHERE'을 개최한다.
두 작가의 영국 테이트 미술관에서 여는 첫 개인전인데, 판이 크다. 테이트 리버풀이 설립된 1987년 이래 창립 30주년과 2008년도에 유럽 문화수도로 선정된 리버풀의 1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 전시로, 모더니즘 작가인 프랑스 레제와 더불어 현대 작가의 연관성을 찾아 현대미술을 모색하는 자리다.
문경원 전준호 작가는 이번 전시에 2012년 독일 카셀 도큐멘타에서 첫 선을 보인 '세상의 저편(La Fin du monde)와 테이트 리버풀에서 처음 선보이는 '이례적 산책(ANOMALY STROLLS)'을 전시한다.
배우 이정재와 임수정의 출연으로 주목 받았던 '세상의 저편'은 100년전 페르낭 레제가 생각했던 '세상의 저편'을 이어준다.
문경원 작가는 "페르낭 레제의 모더니즘 개인전과 현대작가 듀얼로 열리는 전시인데, 리서치 과정중 큐레이터가 깜짝 놀랐다"면서 레제의 개인전과 함께 연계되는 현대 작가로 선정된 배경을 전했다.
페르낭 레제가 1919년 10명의 작가를 초대해서 만든 일러스트 책을 출간했는데, 책 제목이 '세상의 저편' 이었다. 페르낭 레제는 회화와 건축, 인쇄, 영화, 연극 등에 관심을 보여 현대 사회 생활의 요구를 반영하는 작업을 했었다.
문 작가는 "시기는 다르지만 레제가 꿈꿨던 유토피아의 시점에 지금 살고 있는 현대작가들이 같은 생각에 같은 제목에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있는 작업이 재미있고 우연의 접점이 있어서 컨텍됐다"며 "100년전 페르낭 레제가 꿈꿨던 유토피아에서, 100년후인 현대작가인 우리가 생각하는 유토피아적인 관점에서 리버풀 도시 곳곳의 흔적들을 영상에 담아낸 신작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최근 작업을 모두 마친 신작 '이례적 산책'은 이전 '세상의 저편'작품의 연장선에 있다. 18세기 중엽 이후 영국의 산업혁명을 이끄는 중심적 도시였던 리버풀의 산업단지 흔적들과 미래 첨단기술이 공존하는 도시의 이미지를 쇼핑 카트가 움직이며 관찰하는 시점으로 촬영했다.
남자 주인공이 시공간을 넘어 영국 리버풀에 도착하면서부터 새로운이야기가 펼쳐지는 이 영상은 전 편에서 종말의 징후가 느껴지는 버려진 물건들을 수집하여 그의 스튜디오에서 예술 작품으로 다시 재탄생 시키는 그의 행동이 이어진다. 주인공은 리버풀에서 폐허가 된 건물과 텅 빈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버려진 물건들을 주워 쇼핑 카트에 담는다. 하지만 시공간을 넘어온 이 남자는 마치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 투명인간처럼 도시를 떠돌며 버려진 물건들을 수집하는 이 영상은 암울한 현재와 불안한 미래를 접합시키며 오늘의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페르낭 레제가 산업화의 기계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기계시대의 복잡한 기계적인 요소들을 병치한 작품과 기계의 새로운 미학적인 가능성에 매료된 작업 등 산업화의 유토피아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았다면, 문경원, 전준호의 'NEWS FROM NOWHERE' 프로젝트는 세상의 종말을 가정하여 다시 현재를 돌아보며 예술의 의미와 가능성을 고찰하는 작업이다.
문경원 전준호의 뉴스프롬노웨어 프로젝트의 메인 영상인 '세상의 저편'은 "예술의 마지막 모습은 어떤 것이고,예술의 탄생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를 담아냈다.
배우 이정재와 임수정이 주연으로 참여한 약 13분가량 길이의 공상 과학 영상 작품으로 쉴새 없이 변화하는 세계 안에서 예술의 역할을 종말론적 미래 모습을 통해 탐구한다.
문경원,전준호 작가는 '뉴스프롬노웨어'를 진행하면서 깨달은 건 감동도 없고 소통도 어려운 예술의 '경계 허물기'"라면서 "가장 큰 수혜는 우리들 자신"이라고 했다.
이번 영국에서 전시도 "관람객들이 영상에서 보여지는 혼재된 시간과 공간에서 예술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그 역할을 알고자 애쓰는 한 인물의 행적을 추적하여 과연 예술은 쓸모가 있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 모두 삶 속에 녹아 있는지 또는 겉돌아 분리되어 있는지, 사람들은 과연 예술을 통해 그들의 삶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에 대한 수많은 질문과 고민을 쏟아낸다"고 전했다.
문경원 전준호 전속인 갤러리현대 도형태 대표는 "국제 예술계에서 영향력과 권위를 지닌 테이트 리버풀에서 한국 작가가 유럽 모더니즘의 대가와 함께 전시함으로써 한국 작가의 위상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