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의료환경이 문제, 남성 의사 없으면 안돌아갈 지경"
일본여성의료인연합 "여의사들, 체념하는 경향 강해"
도쿄의대, 2006년부터 여성 수험생 점수 일괄 감점 조작
【서울=뉴시스】김혜경 기자 = 여성 합격자 수를 줄이기 위해 입학시험 성적을 조작해온 일본 도쿄의과대학교의 여성 차별과 관련, 일본 여의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0%가량이 "이해할 수 있다"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24시간 체제로 돌아가는 일본의 엄격한 의료환경에서 출산 등을 해야 하는 여의사들이 버티기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8일 NHK보도에 의하면 일본의 여의사 전용 웹매거진을 발행하는 한 기업이 최근 일본 여의사 103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60%가 넘는 응답자는 도쿄의대의 여성 수험생 성적조작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성 차별은 부당하지만 남성 의사가 없으면 현장은 돌아가지 않는다", "(성적조작을) 납득할 수는 없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여의사가 일하기 위해서는 주변 동료의 이해와 협력이 없으면 힘들다"라는 등 엄격한 근무환경을 이유로 들었다.
한 응답자는 "휴일에 심야까지 근무하면서 여러차례 유산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여의사들의 이같은 반응에 대해 "장시간 노동으로 여의사들이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일본여성의료인연합의 쓰시마 루리코(対馬ルリ子)이사는 이같은 여의사들의 반응에 대해 "의료현장은 힘든 것이라고 생각해 체념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라고 답했다.
이어 "의사는 24시간 인생을 바치는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전력(戰力)에서 이탈하면 경력을 포기하는 의사가 많았다"며 "이번 도쿄의대 사건을 계기로 의료현장을 바꿔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도쿄 신주쿠(新宿)구에 위치한 명문 사립 의대인 도쿄의과대학은 여성 수험생의 입학점수를 일괄 감점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는 올해에만 성적 조작을 해온 것으로 보도됐으나, 10여년 전인 2006년부터 조작을 해온 것으로 최근 조사에서 나타났다.
성적조작을 주도한 것은 이번 사태로 사임한 우스이 마사히코(臼井正彦·77) 전 도쿄의과대 이사장과 스즈키 마모루(鈴木衛·69) 전 학장이다. 이 두 사람 외에도 도쿄의대 직원 여럿이 관여한 정황도 드러나는 등 조직적으로 오랜기간 성적을 조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의대는 의학과 일반입시 1, 2차 전형에서 여성 수험생의 성적을 일괄 감점해왔다. 우스이 전 이사장은 여성 합격자를 억제한 이유에 대해 "결혼 및 출산 등에 따른 이직으로 여의사들이 장시간 노동을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가 드러나게 된 계기는 지난 7월 문부과학성의 고위 관료가 자신의 아들을 이 대학에 부정 입학시켰다는 의혹이 터져나오면서다.
사노 후토시(佐野太·58) 문부성 전 국장은 이 대학을 문부성이 지원하는 사업 대상자로 선정하는 대가로 자신의 아들 A씨를 이 대학에 부정 입학시킨 혐의를 받고 검찰에 기소됐다. A씨의 부정입학 사건을 계기로 수사를 진행하던 중 여성 합격자에 대한 부당 차별이 적발된 것이다.
도쿄의대의 여성 수험생 차별 사태는 더 확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문부과학상은 지난 7일 "도쿄의대뿐 아니라 일본 전국 국공립사립 의대 입학시험에 대해 긴급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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