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국방비 지출 4% 증액 요구한 후 회의장 떠나
【서울=뉴시스】조인우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첫 날을 뒤흔들었다. 회원국 국방예산의 가파른 증액을 요구하는 한편 러시아 가스관 사업을 두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정면으로 공격하면서다.
11일(현지시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회원국의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4%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4년 정상회의에서 2024년을 목표로 설정한 국방비 2%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현재 이 조항을 따르는 회원국은 미국(3.6%)과 영국(2.1%), 에스토니아(2.14%), 그리스(2.2%), 폴란드(2%) 등 5개국에 불과하다. 프랑스와 독일은 각각 GDP의 1.8%, 1.2%를 국방에 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원국 간 부담을 공유하는 방법을 논의하는 비공개 회의에서 이같은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멘 라데프 불가리아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비 지출 증가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4%로 증액을)발표한 직후 떠나버렸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자리에 있던 각국 지도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진지한 요구였는지, 단지 계략적인 수사였는지 혼란스러워 했다"고 전했다.
이후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의도를 확인했다. 샌더스 대변인은 "오늘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서 회원국의 국방비 지출에 2% 약속을 지키는 것 뿐 아니라 4%까지 증액하는 것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지는 저녁 만찬에 앞서 트위터를 통해 "29개 회원국 중 5개국만 (국방예산 2%) 약속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은 유럽을 보호하기 위해 돈을 내고 있지만 무역에서 수십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재차 주장했다. 그러면서 "독일이 가스와 에너지를 위해 러시아에 수십억 달러를 지불한다면 나토에 좋은 점이 뭐겠냐"고 독일을 직접 겨냥했다.
이는 유럽연합(EU)을 주도하는 독일을 겨냥해 EU와의 무역전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가디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원래 유럽 지도자들에 대한 개인적인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 성격과 전략이 혼합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독일이 국방비에 돈을 쓰지 않는 대신 수출 주도권을 잡는 데 돈을 써 미국과의 무역에서 이득을 보고 있다는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과의 오찬 자리에서도 독일이 러시아와 체결한 '노르트 스트림 2 가스관 사업’을 저격하며 "독일은 러시아의 포로"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돌발행동은 나토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가디언은 "나토 정상회의는 일반적으로 사전에 고도로 합의된 사안에 대한 업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높은 수준의 불확실성을 야기해 정상회담의 최종 결과에 대한 긴장감을 고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플레처법률외교대학원의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학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유럽과 캐나다의 국방비 지출 증액을 요구해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공개적으로 그들 국가를 비난하는 방법은 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미국 고립주의(America alone)'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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