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갤러리서 1부·2부로 나눠 대형 개인전
'상(象)을 찾아서'로 끄집어낸 '제주 풍경' 30점
2부 ‘메멘토,동백’전 '민중역사화' 6월22일 개막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영락없는 촌부(村夫)였다. 허수아비에 입힌듯 옷자락은 헐렁했고, 가죽 혁대는 기댈곳 없어 자꾸만 밑으로 내려앉았다. 휘적휘적 걷다 혁대를 추스렸지만, 다시 허리춤을 벗어났다. 시선을 느꼈을까. "말라붙어서..."라며 엷은 미소를 보였다. 힘이 없던 노인같던 그가 돌변한 건 그림앞에서 서면서다.
"'그림이란 무엇인가'가 화두였다"
제주 귀덕면에서 올라온 화가 강요배(65)다. 그가 입을 떼자 촌부처럼 보이던 외모는 고뇌하는 예술가로 이미지가 전환됐다. "포토그라피가 일상화되어 있는 상황속에서 그것과 차별성이 있는 것이 무엇일까로 출발했다"며 그가 그림앞에 다가가자 어둡던 그림들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 본관 전시장 입구에 걸린 '동동(冬東.2017)' 그림을 설명했다.
"어둑한 하늘을 그렸다. 제주도는 두껍게 구름이 끼고(겨울에), 구름이 확 뚫리면서 햇빛이 화~후~쏟아진다. 많이 봤다. 하늘이 뻥 뚫린 것 같은...어느날 한 장면이기보다, 경험을 걸러내서 구상을 한 거다. 그렇게 제작된 그림이다."
인상주의(Impressionism)같은 작품이다. 가까이에서는 색과 색이 겹쳐 형상이 보이지 않지만, 뒤로 몇걸음 떨어지면 확연히 보인다. 분명 '언젠가 본 듯한 하늘 풍경 장면'이 떠오른다.
강요배는 "인상적이다는 것은 마음에 확 찍혔다는 것이다. '인상파'라 할때도 상자는 코끼리 '상'자를 쓴다. 그렇다면 상을 끄집어낸다는 뜻인데, 미술사적 용어가 아니라, 그 말 그대로 상(象)을 따라서 그린게 이번 그림"이라고 했다.
25일부터 학고재갤러리에서 3년만에 여는 이번 개인전 주제는 '상(象)을 찾아서'다. 제주 풍경과 제주 작업실에 오가는 고양이와 자연의 벗들을 포착해낸 신작 30여점을 걸었다.
그는 "주역 64괘의 괘상도 '상', 상징의 '상', 철학 영역인 현'상'학을 쓸때도 코끼리 '상'자를 쓴다"면서 "그 '象'이라는 게 '상을 새기고 상을 끄집어 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작업했다"며 유난히 '상'자의 의미를 강조했다.
'象'. 한문의 '상'자는 '코끼리를 보지 못하던 옛 시절의 상형문자로, 유골을 보고 만든 그림 글씨'다. '코끼리 상’은 형상, 인상, 추상, 표상 등의 미술 용어에서 ‘이미지’를 뜻하는 글자다.
"코끼리를 끌어낸다는게 대단한 것인데, 현시대에서 쓰고 있는 추상(抽象)이라는 개념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추상'은 일반적으로 미술사에서 '구상'과는 반대되는 용어다. 형태가 없는 그림, '무엇을 그렸는지 알수가 없는 그림'을 뜻한다.
한라산 정상의 설경, 파도가 바위를 치고 올라가는 장면, 푸른 하늘의 구름… 전시장에 걸린 그림은 형태는 알수 없지만 어떤 '풍경'이나 장면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는 왜 '상'에 집착하는 것일까. 전시 주제 '상을 찾아서'는 무슨 뜻일까.
그는 '추상', '앱스트랙트(abstrac)'라는 뜻을 재해석했다.
"지금까지 추상이라는 말은 오인되어 왔다"고 했다. "라틴어를 봤더니 abstract에는 '축출한다', '끌어낸다'는 뜻이 있었다. 애매하게 그리는 것, 기하학적으로 그리는 것이 '추상'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추상"이라고 강조했다.
"요즘엔 포토그라피에 의존하는 수가 많다. 그것은 표피에 말려드는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그러면 복사기 아닌가. 창조하는 것 없이 그냥 자기가 있는 것만 해야 한다. 그 중간이 (기계적인 장치)없어야 한다"며 "정수를 뽑아내는 작동. 강렬한 기억, 바로 그 것, 그것만 잡으면 된다. 그게 추상"이라며 확신에 차 말했다.
강요배의 화론은 내면에 들어온 심상(心象)을 추상(抽象)으로 펼쳐놓는 것이다. 그는 매일 집에서 작업실을 오가며, 외출하고 여행하며 제주의 풍경을 본다. 같은 것을 반복하여 경험하는 것 같지만 날씨와 시간에 따라 다른 장면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이 마음에 남은 장면을 기억하고 여과하고 담아두었다가 작품으로 나온게 이번 신작이다.
그러나 전시장에 걸린 작품은 '구상'처럼도 보인다고 하자, 따지고 보면 "추상과 구상은 반대되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용어의) 덫에 걸렸다"고 했다. "서양에 꿀리고 싶지 않고, 동양의 것에 그대로 가고 싶지 않은 자존심때문이다. 난 동양에 태어났는데 서양화가로 불린다. 이런 문제... 그래서 '그림이 무엇인지, 내가 동양화가인지, 서양화가인지를 넘어서자고 작업한 게 이번 작품"이라는 것.
"추억이라는 것도, 중요한 흐름만 남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기억이라는게 포토그라픽처럼 세세하게 찍히지 않는다. 대충대충 사는 거지. 모든 것을 스캔할 수 없다"면서 "'하이퍼리얼리즘'은 징그럽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말, '그림이란 무엇일까?'
"소재들을 빌려오는 것 뿐이지. 내가 어떻게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게 중요한 것 아닌가?"라고 되물으며 "강렬한 요체로 간직한 것. 군더더기를 버리고 단순화하여 명료하게 하는게 '그림'"이라고 딱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 관찰'을 10년간 했다. 발품팔아 지도를 만든 김정호처럼 샅샅이 자연을 돌아봤다. 그러다 굳이 그렇게 그릴 필요가 있을까. 외부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핑겟거리일수도 있다는 것"이라며 "결국 문제는 내 안에 있다"고 했다.
그는 "내가 감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움은 외부 사물로부터 발산되는 듯 하지만 내가 그것을 평소와 다르게 바라보는데서 생기는 것"이라며 "사물의 기운생동 또한 사물로부터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내 그림은 나와 사물간의 상관적 관찰의 결과물이다."
이태호 미술사학자(서울산수연구소장)는 "형상(形象)’에서 ‘형’은 눈에 보이는 것(Form)을, 상은 마음에 남은 것(Image)을 말한다"면서 "강요배는 눈을 감고 상념에 잠기면 되살아난 형상에서 찾는 ‘추상(抽象)’의 본래 의미를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적인 묵죽도나 사군자 그림을 추상화의 한 형식으로 본다"는 그는 "사생보다 기억으로 외워서 그린 이번 강요배 그림은 한국인이 표출한 동양적 이미지, 진경화(眞景畵)라 할 만하다"고 평했다.
강요배는 1980년대 민중작가로, 1990년대 제주4·3항쟁 연작을 완성한 '제주 화가'로 유명하다.
1952년 제주 삼양동 출생 강요배는 제주의 아픔이 이름에 서려있다.
강요배의 아버지는 1948년 봄, 제주 4·3 항쟁을 몸소 겪었다. 육지에서 출동한 토벌대는 빨갱이라는 명목아래 사람들을 색출했다. 색출 당한 사람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혹시 모른다는 이유로 함께 처형당했다. 순이, 철이와 같이 당시 널리 쓰인 이름의 사람들은 이유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어나갔다. 강요배의 아버지는 그 참담함을 지켜보며 자신의 자식 이름은 절대 남들이 같이 쓸수 없는 이름 글자를 찾아서 尧(요나라 요), 培(북돋을 배)를 써서 '강요배'라고 지었다.
화가의 길은 어린 시절 마을 도서관에서 빌려본 그림책 때문이었다. 197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1982년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민중미술가'가 된 것은 1981년 ‘현실과 발언’의 동인이 되면서부터다. 현실과 시대, 그리고 역사와 미술의 문제를 고민하며 '인멸도'(1981), '탐라도'(1982), '장례명상도'(1983), '굳세어라 금순아'(1984) 등의 시대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을 발표하며 시대정신과 그것의 미학적 실천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서울 창문여고에서 미술교사로 6년간 일하기도 했다. 이후 한겨레 신문에 소설가 현기영의 '바람 타는 섬' 삽화를 그리게 되면서 제주 4·3 항쟁에 대한 강렬한 충격이 일었다.
슬픔과 분노로 얼룩진 4.3 역사화를 완성하고 1992년 '강요배 역사그림-제주민중항쟁사'를 학고재에서 선보였다. 이 전시는 4·3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며 역사 주제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름다운 제주에서 일어난 잔인한 학살은 일반인들에게도 충격을 주었고 제주를 다시 인식하게 했다.
1992년 서울 생활에서 더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한 그는 고향 제주로 돌아왔다. 지도를 들고 제주의 자연을 찾아나섰다. 제주의 역사를 알고 나니 자연 풍경이 조형적 형식이 아닌 감정이 담긴 대상으로 다가왔다. 제주 자연의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지 25년째다.
‘추상(抽象)’으로 꺼낸 제주풍경의 이번 전시는 "회화가 추구하는 본질을 꿰뚫었다'는 평가다. 땅의 역사와 자연의 형질까지 통찰한 작품 세계는 역사, 철학서부터 지리서까지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독서량이 힘이라고 한다.
제주 귀덕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는 이태호 미술사학자는 "주역을 꿰던 강요배는 이제 칸트(Immanuel Kant)의 미학 개념을 소화한 듯하다. ‘무관심성’이나 ‘공통감각’의 칸트 얘기를 유난히 입에 올렸다“면서 "그림에 대한 내 생각이 남들도 공감하고, 모든 이가 그렇게 부담 없이 그림을 그린다면 좋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래서인지 ‘추상’에 대해 이야기를 잇던 그는 “내 그림이 어떻게 보이냐”고 물으며 이전과 달리 궁금증을 보였다.
'강렬한 기억의 요체'로 나온 그림은 윤기 없이 거친 느낌이다.
번들번들거리는 것을 싫어하는 탓도 있지만 투박하고 성근 제주의 땅과 돌과 풀, 나무에 어울리는 도구를 나름 개발한 덕분이다. 선들이 거칠게 서걱대는 작품은 빗자루, 말린 칡뿌리, 구기거나 서너 겹 접은 종이 붓을 만들어 쓴다. 1994년 '제주의 자연'전 뒤부터 20년 이상 써온 '종이붓'으로 아픈 역사의 대지를 녹여내고 있다.
'강요배 속'에서 끄집어내고 쏟아낸 그림 때문일까. 무게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가벼워 보이는 그는 움푹패인 볼에 검은 눈빛만 형형했다. 그림에 미쳤던 ‘고흐의 상’이 보인다고 하자, 싫지 않은 기색이다. "매력적인 사람이지”라며 쑥스러워하던 그는 “고흐는 독서량이 많았다"면서 허허 웃었다.
이번 전시는 1,2부로 나눠 여는 대형 전시다. '상을 찾아서'는 1부전으로 6월 17일까지 열린다. 2부전은 강요배의 민중미술 역사화를 한 자리에 모은 '메멘토, 동백’전이 6월 22일부터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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