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랑했던 광주, 정의의 다른 이름"
고 찰스 헌트리 목사 부인, 남편에 편지 낭독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1980년 5월, 광주시민의 인간애는 너무도 뜨거웠다. 당신이 사랑했던 광주는 정의의 다른 이름이 됐다."
18일 5·18 38주년 기념식이 열린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 울려퍼진 미국인의 편지 낭독은 기념식장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다.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고(故) 찰스 헌트리 목사의 부인 마사 헌트리(76) 여사가 남편에게 전하는 편지였다.
기념식 막바지에 추모 단상에 선 마사 헌트리 여사는 오른손으로 비 내리는 하늘을 가리키며 "38년 전의 슬픔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어제 당신의 유골을 성스러운 양림동 선교사 묘역에 안장했다. 우리 부부는 광주에서 살았던 17년 동안 광주시민을 사랑했고, 광주로부터 배웠다. 5·18 이후에는 더 존경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제가 본 광주는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함 자체였다. 그러나 광주시민의 인간애는 너무나도 뜨거웠다. 헌혈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말릴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떨리는 듯한 목소리가 빗줄기를 뚫고 이어지자 추모객들의 눈가는 뜨거워졌다. 불의와 군부 독재에 맞서 대동세상을 열었던 38년 전 그 날이 떠오르는듯 보였다.
이내 마사 헌트리 여사는 "민주주의·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위해 목숨을 잃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우시냐"며 "당신이 회고록에 썼던 글귀가 생각난다. 한국인들에게 '우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었던 마법과도 같은 순간들이었다' 적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님도 (80년 5월)광주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우리의 상처를 보듬어줬다"며 "당신이 그렇게도 사랑했던 광주는 정의의 다른 이름이 됐다. 당신 말이 맞았다"고 낭독을 마쳤다.
오월 유족들은 역사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던 광주와 함께해 준 피터슨 부부를 떠올리며 감동의 눈물을 쏟았다.
지난해 6월 타계한 헌트리 목사는 5월 광주기독병원 원목실장으로 재직할 당시 5·18 참상을 촬영해 미국 등지로 보냈다. 항쟁 기간 계엄군에 쫓기던 시민과 학생들을 보호하기도 했다.
부상자들 몸에서 나온 계염군의 총알과 엑스레이 필름을 챙긴 뒤 훗날 주한 미국대사관에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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