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권혁진 기자 = 2002년 한일월드컵은 우리 국민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쟁쟁한 유럽팀들을 넘고 4강에 오르자 전국은 붉은 물결로 들끓었다.
네덜란드 출신 이방인인 거스 히딩크 감독과 23명의 선수들은 어딜가나 영웅 대접을 받았고,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을 맡았던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월드컵의 성공과 맞물려 유력 대선 후보로 급부상했다. 열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2002년을 제외하면 한국은 월드컵에서 이렇다 할 재미를 보진 못했다.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했지만 월드컵은 결코 쉽지 않은 무대였다.
한국 축구는 한국전쟁 휴전 1년 만인 1954년 스위스 대회를 통해 처음 월드컵과 연을 맺었다. 지금처럼 완벽한 지원과 현지 적응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탄 끝에 경기 시작 10시간 전 어렵게 스위스에 당도한 한국은 당대 최강으로 꼽히던 헝가리에 0-9로 완패했다. 2차전에서도 터키에 0-7로 졌다. 하지만 김용식 감독이 이끈 한국 선수들은 몸을 아끼지 않는 투지로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스위스 대회 이후 월드컵에 돌아가기까지 32년이 걸렸다. 1986년 멕시코 대회 때 다시 한 번 축제에 초대됐다.
차범근, 최순호, 허정무, 김종부 등 스타 플레이어들로 구성된 한국은 1무2패로 탈락했지만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다. 전 대회 우승팀 이탈리아에 2-3으로 맞섰고, 불가리아와는 1-1로 비겼다. 박창선은 디에고 마라도나가 버티던 아르헨티나전에서 중거리 슛을 성공시켜 한국의 첫 월드컵 득점자로 이름을 남겼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에서는 3패로 짐을 쌌다. 벨기에(0-2), 스페인(1-3), 우루과이(0-1)에 힘없이 무너졌다. 현지 기온이 40도를 오르내렸던 1994년 미국대회에서는 스페인(2-2), 독일(2-3)을 상대로 선전했지만 첫 승은 나오지 않았다. 내용에서 우위를 점한 볼리비아와의 2차전에서 0-0으로 비긴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숱한 기회를 날린 황선홍은 엄청난 질타에 시달려야했다.
1998년 프랑스 대회는 차범근 감독의 중도 퇴진이라는 아픈 기억을 남겼다. 최종예선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차 감독은 네덜란드와의 2차전에서 0-5로 패한 뒤 전격 경질됐다. 월드컵 도중 사령탑 교체는 이때가 유일하다. 최종 성적은 1무2패였다.
네덜란드 출신 이방인인 거스 히딩크 감독과 23명의 선수들은 어딜가나 영웅 대접을 받았고,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을 맡았던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월드컵의 성공과 맞물려 유력 대선 후보로 급부상했다. 열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2002년을 제외하면 한국은 월드컵에서 이렇다 할 재미를 보진 못했다.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했지만 월드컵은 결코 쉽지 않은 무대였다.
한국 축구는 한국전쟁 휴전 1년 만인 1954년 스위스 대회를 통해 처음 월드컵과 연을 맺었다. 지금처럼 완벽한 지원과 현지 적응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탄 끝에 경기 시작 10시간 전 어렵게 스위스에 당도한 한국은 당대 최강으로 꼽히던 헝가리에 0-9로 완패했다. 2차전에서도 터키에 0-7로 졌다. 하지만 김용식 감독이 이끈 한국 선수들은 몸을 아끼지 않는 투지로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스위스 대회 이후 월드컵에 돌아가기까지 32년이 걸렸다. 1986년 멕시코 대회 때 다시 한 번 축제에 초대됐다.
차범근, 최순호, 허정무, 김종부 등 스타 플레이어들로 구성된 한국은 1무2패로 탈락했지만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다. 전 대회 우승팀 이탈리아에 2-3으로 맞섰고, 불가리아와는 1-1로 비겼다. 박창선은 디에고 마라도나가 버티던 아르헨티나전에서 중거리 슛을 성공시켜 한국의 첫 월드컵 득점자로 이름을 남겼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에서는 3패로 짐을 쌌다. 벨기에(0-2), 스페인(1-3), 우루과이(0-1)에 힘없이 무너졌다. 현지 기온이 40도를 오르내렸던 1994년 미국대회에서는 스페인(2-2), 독일(2-3)을 상대로 선전했지만 첫 승은 나오지 않았다. 내용에서 우위를 점한 볼리비아와의 2차전에서 0-0으로 비긴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숱한 기회를 날린 황선홍은 엄청난 질타에 시달려야했다.
1998년 프랑스 대회는 차범근 감독의 중도 퇴진이라는 아픈 기억을 남겼다. 최종예선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차 감독은 네덜란드와의 2차전에서 0-5로 패한 뒤 전격 경질됐다. 월드컵 도중 사령탑 교체는 이때가 유일하다. 최종 성적은 1무2패였다.
2002년에서 큰 성공을 맛본 한국은 2006년 독일 대회 조별리그 1차전에서 토고를 2-1로 꺾고 첫 원정 승리를 맛봤다. '반지의 제왕' 안정환은 토고전 역전 중거리 슛으로 한국 축구사를 다시 썼다. 지네딘 지단이 버틴 프랑스와의 2차전 1-1 무승부로 두 대회 연속 토너먼트 진출의 꿈을 부풀렸지만 스위스(0-2)로 덜미를 잡히면서 도전을 멈췄다.
사상 첫 원정 16강은 2010년 남아공 대회에서 이뤄졌다. 주장 박지성이 중심이 된 한국은 그리스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2차전에서 아르헨티나에 1-4로 졌지만 3차전에서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겨 극적으로 16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16강에서는 우루과이에 1-2로 석패했다. FC바르셀로나에서 뛰는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에게 결승골을 헌납했다.
남아공의 성공을 넘어 8강까지 바라봤던 2014년 브라질 대회는 처참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1승 제물로 여겼던 알제리에 2-4로 허무하게 무너지면서 모든 구상이 어긋났다.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로 승승장구하던 홍명보 감독은 이때의 실패로 단단히 체면을 구겼다.
[email protected]
사상 첫 원정 16강은 2010년 남아공 대회에서 이뤄졌다. 주장 박지성이 중심이 된 한국은 그리스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2차전에서 아르헨티나에 1-4로 졌지만 3차전에서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겨 극적으로 16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16강에서는 우루과이에 1-2로 석패했다. FC바르셀로나에서 뛰는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에게 결승골을 헌납했다.
남아공의 성공을 넘어 8강까지 바라봤던 2014년 브라질 대회는 처참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1승 제물로 여겼던 알제리에 2-4로 허무하게 무너지면서 모든 구상이 어긋났다.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로 승승장구하던 홍명보 감독은 이때의 실패로 단단히 체면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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