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로자노헤머의 '디시전 포레스트'전 3일 개막
관객 참여해야 완성되는 인터렉티브 설치 작품 전시
70톤 모래 해변·심장 박동소리 240개 백열전구 눈길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3일 아모레퍼시픽그룹 미술관이 공개됐다. 서울 한강로 신용산역과 연결된 신사옥 1층에 마련된 미술관은 동시대 최첨단 미술의 향연을 보여준다.
개관 기념전은 멕시코 태생의 캐나다 작가 라파엘 로자노 헤머(52)의 작품이 들어찼다. 26년간 기술을 기반으로 한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대중과 교감해 온 미디어아티스트다. 이 전시는 작가의 최초 한국 개인전이자, 아시아 회고전이다.
미술관측은 "작가가 강조하는 사람과 관계, 공동체의 가치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잘 맞기 때문에 첫 기획 전시의 주인공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공공미술프로젝트를 활발히 펼쳐온 작가답게 전시는 '함께', '다같이'를 추구한다. 미디어아트의 기본은 인터렉티브(interactive)다. 작품은 관람객이 참여해야 완성된다.
작가를 알린 1992년도 초기작 'Surface Tension'(표면 긴장)부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 맞춘 신작 5점을 포함, 총 29점을 전시했다.
사옥 1층 미술관 로비부터 작품이 시작된다. 지름 3m의 거대한 3D 원형 조각 'Blue Sun'이 끌어들인다. 지난 10년간 태양에 대해 나사(NASA)와 작가가 협업한 결과물로, 태양 표면에서 포착되는 불꽃과 얼룩, 요동치는 움직임이 원형으로 구현됐다. 작품은 342개의 널에 부착된 25580개의 LED 전구들이 켜졌다 꺼졌다 하며 오로라같은 신비함을 선사한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과 퀘백 현대미술관의 공동지원으로 제작됐다.
지하 전시장은 그야말로 '한바탕 놀이마당'처럼 연출됐다.
첫번째 작품은 '모래판'이 등장한다. 미국 LA의 산타 모니카 해변에서 진행한 공공프로젝트를 실내로 옮겨와 거대한 인공 해변을 꾸몄다. 70톤의 모래를 깔아놓은 작품은 관람객이 스스로가 주인공이 된다. 신발을 벗고 모래판에 들어가 움직이면 그 자체가 작품이 된다.
미술관측이 작가에게 제안한 작품으로 가장 예상밖의 즐겁고 새로운 작품이어야 한다는 주문이 있었다.서로 만지고 공간을 점유하고 서로 바라보고 함께 있다는 느낌을 경험으로 완성된다. 하나의 놀이로서 관람객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것이 컨셉이다.
나의 지문을 기록할수도 있는 작품도 있다. 220배로 확대 가능한 전자 현미경과 심장 박동 측정기가 내장된 센서에 손가락을 넣으면, 센서를 통해 지문이 곧바로 화면의 가장 큰 칸에 나타나며 심장박동에 맞추어 진동한다. 지문을 사용한 일종의 죽음의 상징, 즉 메멘토 모리라고 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마치 거대한 영상 회화처럼 보인다.
'우리는 같은 사람, 인간'이라는 것을 벅차게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240 개의 투명 백열전구로 구성된 'Pulse Room'은 검은 방의 울림을 심장소리로 완성한다. 전시장 한 켠에 위치한 내장된 센서를 두 손으로 잡으면 심장 박동을 측정한다. 관객이 인터페이스를 잡으면 컴퓨터는 맥박을 감지하고, 참여자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전구가 맥박의 속도에 따라 깜빡이기 시작한다. 인터페이스가 측정한 데이터가 전시장에 방출되는 순간, 모든 전구들은 꺼지고 기록된 시퀀스가 한 칸씩 이동하며 빛을 내며 심장 박동소리로 맹렬하게 화답한다.
전시된 모든 작품들은 키네틱 조각, 생체측정 설치작품, 사진, 상호반응 우물, VR, 나노 기술, 사운드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최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구현됐다.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뉴스, 문학, 취조실 거울, CCTV와 같은 감시장치 등이 작품 내용을 구성하며, 맥박, 목소리, 지문, 초상, 발화시 공기의 파장, 인체의 움직임, 상대방과의 거리 등 우리의 몸과 움직임이 인터페이스로 활용된다.
데이터 과학 용어이자 이번 전시 제목인 ‘Decision Forest’는 관람객의 선택, 그리고 관람객과 작품의 상호작용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결과값을 의미하기도 한다.
3일 한국 기자들을 만난 라파엘 로자노헤머 작가는 "지난해 4월 방한해 공사중인 신사옥을 보면서 구상한 전시를 완성했다"며 "1992년 최초 작품부터 월드 프리미어 5점이 포함되어 있어서 중간 회고전 성격이다. 한국 관객이 어떻게 봐줄지 긴장되고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캐나다 콘코디아대학교에서 물리화학을 전공한 작가는 컴퓨팅 기술을 예술화해 대중과 예술의 쉬운 소통을 주선하고 있다.
최신 기술을 이용하는 미디어아티스트 작가인데 "뉴미디어로 불리는게 싫다는 그는 자신의 작품은 전혀 새로운게 없다"고 했다. 그는 공공장소에서 컴퓨터, 프로젝터, 사운드 디바이스, 센서, 로봇 등 전자 기기 기술을 이용한 대규모 인터랙티브 설치를 통해 관람객과 실시간 소통하는 작가로 일반인에게 알려졌다.
미디어아티스트로서 "대중을 작품의 일부로 참여시킨 것에 대해 백남준에 빚지고 있다"면서 이번 전시의 한국 관객들의 반응을 더욱 궁금해 했다.
작가는 그의 작품을 통해 관람객이 작품과 교감하기를 바란다. 스스로 작품 일부가 되어 직접 체험하고 느끼라고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전시가 끝난후에야 한국 관객들이 어떻게 즐겼다, 어떻게 반응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 같아요. 작품 전반이 테크놀러지의 양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전시여서, 과연 이것이 유희적일지, 무섭고 폭력적일지 그 반응이 무척 궁금합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개관전은 아모레퍼시픽 그룹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걸린 그림, 세워놓은 조각이 아니라, 미디어아트를 선정한 건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의지다. 관람객이 작품에 끼어들도록 유도하는 전시 작품들처럼 대중과 가깝고 친밀하게 소통하는 미술관이 되겠다는 바람이다.
신사옥과 함께 눈길을 끌지만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첫 개관이 아니다. 1979년 태평양박물관이 모태다. 2009년 아모레퍼시픽미술관으로 명칭을 바꿔 경기도 오산과 용인에서 미술관을 운영해오다, 올해 2월 신사옥으로 들어왔다.
우리나라도 '박물관·미술관 1000개 시대'지만 미술관 문턱은 여전히 높다.
서울에만 재벌기업이 운영하는 미술관은 10곳이다. 삼성미술관리움(삼성), 아트센터나비(SK), 아트선재센터(대우), 금호미술관(금호아시아나), 성곡미술관(쌍용), 대림미술관(대림), 한미사진미술관(한미약품), 포스코미술관(포스코),세화미술관(태광그룹), 일우스페이스(한진그룹)등이 있지만 대중들과 공감을 이루는 미술관은 손에 꼽기 힘들다.
'누구나 올 수 있는 열린 공간’을 표방하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이 또 하나의 '재벌 미술관'이 될지, '열린 미술관'이 될지는 기획력에 달렸다.
이번 개관전에 초대된 라파엘 로자노헤머 작가가 말했다. "한국에도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가 많다. 문경원·전준호는 물론, 장영혜중공업, 최우람 작가와도 친하다. 그런분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 그런면에서 '재벌 미술관'들의 개관전은 늘 해외 작가로 열리는 건 아쉬운 점이다. 전시는 8월26일까지. 관람료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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