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그 학생들은 못 간 대학에 나는 와…문득 울컥"
타인의 고통을 이슈로 소비해버리는 세태·언론 실망
"세월호 지겹다" 반응, 일베 '폭식 투쟁' 등에 충격
국가·기성세대 불신…"행동하지 않으면 변화 불가능"
"더이상 묵인 않겠다…세월호로 지금의 미투도 나와"
【서울=뉴시스】남빛나라 기자·김가윤 수습기자 = 이서영(19·여)씨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중학생이었다. 기울어가는 배에서 구조를 기다리다 숨진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은 이씨에게 한참 윗사람으로 보이는 고등학생 '언니오빠'였다. 4년이 흐른 지금 이씨는 그때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보다 나이가 많다.
13일 이화여자대학교 교정에서 만난 재학생 이씨는 "지지난주에 분향소를 다녀왔는데, 문득 그들이 가지 못한 대학에 나는 왔다는 생각이 들더라"면서 "당시엔 좀 커보이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까 엄청 어린 학생들"이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16일로 세월호 참사 4주기가 돌아온다. 당시 텔레비전을 보며 울던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이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세월호를 기리는 노란 리본은 더 이상 드문 광경이 아니다. 4월16일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카카오톡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이 노란 리본으로 바뀐다. 노란 리본은 이들에게 단순한 추모를 넘어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세월호 4주기를 앞두고 뉴시스와 이야기를 나눈 10대·20대들은 세월호를 이야기하며 '우리'라는 표현을 썼다. 이들에게 세월호는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다가온 첫 충격이며 국가관이 바뀐 분수령이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고모(18·여)씨는 "선생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세월호 이후엔 꼭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윗사람의 생각이 잘못된 생각일 수 있고, 그 사람들의 이익에 따라 우리가 희생당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고씨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다 덮여지고 있다.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3일 이화여자대학교 교정에서 만난 재학생 이씨는 "지지난주에 분향소를 다녀왔는데, 문득 그들이 가지 못한 대학에 나는 왔다는 생각이 들더라"면서 "당시엔 좀 커보이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까 엄청 어린 학생들"이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16일로 세월호 참사 4주기가 돌아온다. 당시 텔레비전을 보며 울던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이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세월호를 기리는 노란 리본은 더 이상 드문 광경이 아니다. 4월16일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카카오톡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이 노란 리본으로 바뀐다. 노란 리본은 이들에게 단순한 추모를 넘어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세월호 4주기를 앞두고 뉴시스와 이야기를 나눈 10대·20대들은 세월호를 이야기하며 '우리'라는 표현을 썼다. 이들에게 세월호는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다가온 첫 충격이며 국가관이 바뀐 분수령이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고모(18·여)씨는 "선생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세월호 이후엔 꼭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윗사람의 생각이 잘못된 생각일 수 있고, 그 사람들의 이익에 따라 우리가 희생당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고씨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다 덮여지고 있다.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두려움도 엄습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 결과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가 이미 좌현으로 180도 기울어 구조가 불가능했던 오전 10시19~20분 이후 최초 서면 보고를 받았다. 오후엔 비선실세 최순실 및 정호성·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 등과 세월호 관련 회의를 벌였다.
취업 준비생인 김모(28)씨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한강을 보면 '갑자기 다리가 무너지면 나는 이대로 죽나. 국가 시스템이 나를 제대로 구해줄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며 "국가가 국민을 충분히 보호해줄 수 있다는 신뢰가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세월호 문제가 완전히 종결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대학원생 강석남(27)씨는 "우리 세대는 국가, 부모 등으로부터 끊임없이 규칙을 지키라고 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탈락하거나 배제된다고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으라고 했을 때 나 역시 가만히 있다가 구조받지 못 했을 것"이라며 "그러면 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광화문에서 상처받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분노 혹은 공포가 있다"고 토로했다.
영양사로 일하는 이진영(25·여)씨는 "조금이라도 더 구조할 수 있었는데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으로 사람들이 죽었다"며 "경제가 너무 힘들고 특히 우리 세대는 취업률 문제가 심각하다. 옛날엔 알아서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우리가 행동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변화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 밝혔다.
304명의 죽음은 이들 세대의 일상도 바꿔놨다.
이씨는 "직업 특성상 현장에서 무거운 것을 들다가 넘어지거나 조리하면서 화상을 입는 등 다칠 위험이 크다. 세월호 이후 항상 안전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며 "직장에서도 세월호 이후 안전 교육을 주기적으로 하는 등 안전에 대한 의식이 커진 것이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대학생 신윤지(21·여)씨는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동갑인 '세월호 세대'다. 그는 "세월호 이후로 더 이상 묵인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전반적인 사고의 전환이 이뤄졌다"며 "세월호로 인해 지금의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운동도 나올 수 있었단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생인 김모(28)씨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한강을 보면 '갑자기 다리가 무너지면 나는 이대로 죽나. 국가 시스템이 나를 제대로 구해줄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며 "국가가 국민을 충분히 보호해줄 수 있다는 신뢰가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세월호 문제가 완전히 종결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대학원생 강석남(27)씨는 "우리 세대는 국가, 부모 등으로부터 끊임없이 규칙을 지키라고 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탈락하거나 배제된다고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으라고 했을 때 나 역시 가만히 있다가 구조받지 못 했을 것"이라며 "그러면 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광화문에서 상처받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분노 혹은 공포가 있다"고 토로했다.
영양사로 일하는 이진영(25·여)씨는 "조금이라도 더 구조할 수 있었는데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으로 사람들이 죽었다"며 "경제가 너무 힘들고 특히 우리 세대는 취업률 문제가 심각하다. 옛날엔 알아서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우리가 행동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변화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 밝혔다.
304명의 죽음은 이들 세대의 일상도 바꿔놨다.
이씨는 "직업 특성상 현장에서 무거운 것을 들다가 넘어지거나 조리하면서 화상을 입는 등 다칠 위험이 크다. 세월호 이후 항상 안전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며 "직장에서도 세월호 이후 안전 교육을 주기적으로 하는 등 안전에 대한 의식이 커진 것이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대학생 신윤지(21·여)씨는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동갑인 '세월호 세대'다. 그는 "세월호 이후로 더 이상 묵인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전반적인 사고의 전환이 이뤄졌다"며 "세월호로 인해 지금의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운동도 나올 수 있었단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 밑바닥에 자리한 혐오 정서가 그대로 드러난 사건으로도 기억된다. 유가족의 단식투쟁을 조롱하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가 벌인 이른바 '폭식투쟁'은 한국 사회의 치부로 남았다.
신씨는 "친구들과 세월호 이야기를 하면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고들 한다. 참사 당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슈로 소비해버리는 세태, 언론의 행태를 봤다"며 "'아직도 세월호야?' 하는 식으로 반응하는 사람도 많은데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강씨는 "폭식투쟁을 보면서 한국사회에 대해 신뢰가 많이 무너졌다"면서 "폭식투쟁을 굉장히 극단적인 사례처럼 이야기하지만, '세월호 지겹다' '언제까지 저럴 것이냐' '어떤 유가족은 노동조합원이다' 이런 반응들도 내가 대학에서 배웠던 것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던 장면들"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email protected]
신씨는 "친구들과 세월호 이야기를 하면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고들 한다. 참사 당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슈로 소비해버리는 세태, 언론의 행태를 봤다"며 "'아직도 세월호야?' 하는 식으로 반응하는 사람도 많은데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강씨는 "폭식투쟁을 보면서 한국사회에 대해 신뢰가 많이 무너졌다"면서 "폭식투쟁을 굉장히 극단적인 사례처럼 이야기하지만, '세월호 지겹다' '언제까지 저럴 것이냐' '어떤 유가족은 노동조합원이다' 이런 반응들도 내가 대학에서 배웠던 것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던 장면들"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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