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상화 현상, 건물 통째로 쓰러지거나 금 갈수도
"서울 규모 6.5 지진 발생시 부산도 액상화 가능성"
"퇴적층 두께 지진 강도에 따라 피해 정도 달라"
내진설계 무용지물···지질조사·기초공사 충실해야
【서울=뉴시스】박영주 안채원 기자 = 포항 지진이 일어난 주변에서 땅이 늪처럼 변하는 액상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시민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서울 역시 강진이 일어났을 때 이 현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특히 한강 주변 지역 액상화를 우려한다. 매립지나 예전 하천 지역 등은 지반이 약하기 때문이다.
부산대학교 지질환경학과 손문 교수팀은 지난 16일 오전 포항 지진 진앙 근처에서 샌드 볼케이노(모래 분출구)를 발견했다. 또 21일까지 머드 볼케이노(진흙 분출구) 100여 개를 추가로 찾았다. 이는 지층 아래 있던 모래와 진흙이 물과 함께 분출된 것으로 액상화의 흔적으로 꼽힌다.
액상화 현상은 퇴적층 내 흙 알갱이와 알갱이 사이의 공간(공극)에 있는 물 입자들이 평소에는 유지되다가 강진으로 지진파가 그 지역을 지나가 땅이 흔들리면서 밖으로 배출되는 것을 말한다.
배출된 물은 흙과 섞이면서 반죽 형태로 만들어진다. 단단했던 지표면 위로 물렁물렁한 흙이 쌓이면서 지반의 경도가 떨어지게 된다. 지반이 약해졌기 때문에 내진설계가 잘 된 튼튼한 건물이라도 통째로 쓰러지거나 금이 갈 수 있다.
외국의 경우 강진으로 인한 액상화 현상으로 건물들이 기울고 무너진 사례가 다수 있다. 1964년 일본 니카타에서 발생한 규모 7.5 지진이 대표적이다. 이 지진으로 액상화 현상이 발생하면서 아파트가 통째로 쓰러지는가 하면 땅속 구조물이 솟아올랐다.
2011년 2월22일에는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지에서 규모 6.5의 강진으로 액상화 현상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콘크리트 반죽처럼 물렁물렁해진 도로에 자동차가 빠졌다. 지표면을 뚫고 나온 흙탕물에 건물들이 잠기기도 했다. 1976년 발생한 규모 7.8의 중국 탕산 대지진 때도 액상화 현상으로 건물들이 쓰러지면서 약 24만명이 사망했다.
전문가들은 포항뿐 아니라 매립지나 과거 하천, 호수 등이 있던 퇴적물이 두꺼운 지역이라면 전국 어디에서든지 액상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큰 지진이 가까이서 일어나야 하고, 모래나 토사가 지하지층을 구성해야 하며, 물이 있어야 하는 '액상화'의 3박자가 들어맞기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여의도 등 한강 주변이 위험 지역으로 꼽힌다.
김영석 부산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시뮬레이션 결과 서울에서 규모 6.5 지진이 발생한다면 부산지역까지 액상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며 "매립지나 하천 주변, 호수 주변 지역에 강한 지진파가 전달되면 얼마든지 액상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서울의 경우에는 한강 주변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도 "서울은 대부분 강한 지반에 건물이 세워져 있지만 한강 하구 등 퇴적층이 있는 한강 주변을 중심으로는 액상화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희권 강원대 지질학과 교수는 "한강 주변 건물이 세워진 퇴적층의 두께, 지진 강도 등에 따라 액상화로 인한 위험이 다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액상화 현상 앞에서는 내진설계도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기초공사라는 게 일치된 의견이다.
김 교수는 "국내에서는 파일이 지지대의 역할을 할 수 있게 지층 아래 암반이 자리한 깊이까지 설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개 연약지반까지만 설치한다"며 "이렇다보니 액상화 현상은 물론 지진동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큰 건물은 지질조사를 해서 액상화되는 지층보다 더 깊은 암반까지 파일을 세우도록 돼 있는데 작은 건물은 그렇지 않다"며 "물 위에서도 배가 뜨는 것처럼 지질조사를 한 후 액상화 위험이 있는 지층에는 기초설계를 단단히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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