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전 제39회 국무회의가 열리는 청와대 세종실에서 송영무 국방부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2017.09.09. [email protected]
'北 핵미사일 위협 대응용'이라는 朴정부 논리 그대로 답습
전략적 모호성→배치결정 선회한 배경 의문 여전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강행과 관련해 대국민 메시지를 밝힌 것은 악화되는 여론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조성된 반대 여론에도 아랑곳 않고 국면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밝힌 서면 입장문을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드 임시배치를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현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갈수록 고도화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그에 대한 방어능력을 최대한 높여나가지 않을 수 없다"며 "이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또 사드 발사대 반입 과정에서 발생한 경찰과 지역주민들의 충돌로 부상자가 속출한 상황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와 다르게 정부가 평화적인 집회 관리를 위해 최대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시민과 경찰관의 부상을 대통령으로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부상당하거나 정신적인 상처를 입은 분들의 조속한 쾌유를 빌며 적절한 위로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전날 밀어붙인 사드 임시배치 강행 비판에 하루 종일 침묵을 지켰던 문 대통령이 오후 늦게 입장을 밝힌 것은 급격도로 악화되고 있는 여론을 의식해 내린 마지못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갤럽이 지난 8일 발표한 조사결과(95% 신뢰 수준·표본오차 ±3.1%p·응답률 18%)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지난주 대비 4%p 떨어진 72%로 집계됐다.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2주 연속 하락세를 보인 것은 7월 이후 2개월 만이다. 8월4주차에 79%였던 지지도는 지난주 76%p로 빠졌고, 급기야 이번주는 70%대 초반으로 내려앉았다.
리얼미터가 지난 4~6일 성인 15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7일 발표한 한 주간 집계(95% 신뢰수준·표본오차 ±2.5%p·응답률 3.7%)에서는 69%를 기록, 취임 18주 만에 처음 70%선이 무너졌다.
갤럽은 문 대통령 지지도 하락 요인을 북한의 6차 핵실험, 사드 배치 강행 등과의 개연성에서 찾았다. 국정의 기반을 '촛불정신'에 두며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책을 펴왔던 것과는 달리 사드배치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에 대한 반발 심리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러시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전날 무력 충돌 상황을 보고받고, 여론의 추이를 주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드 배치 강행으로 촉발된 정부를 향한 반발심리가 문 대통령의 말 바꾸기 논란으로 번지자 청와대 내부에서도 깊은 고민이 감지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오전 과거 후보시절 문 대통령의 발언을 상기하며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부정적 여론의 방향을 바꾸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19일 당시 대선후보 2차 TV토론에서 "만약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다음 정부에서 남북관계 개선이 불가능해지고 북한은 국제적 고립이 더 심화해서 체제유지가 어려울 것이란 것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며 "중국에 대해서도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사드 배치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오후 예정없이 춘추관을 찾아 문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사드 배치는 매우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대통령이 메시지를 내는 것에 대해 신중히 검토 중"이라며 "메시지 자체를 내느냐 여부를 떠나서 균형잡힌 메시지를 줄 수 있느냐 없느냐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국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와 미국과 중국, 북한이 받아들이는 메시지가 (따로) 있다. 너무나 복합적인 부분이 다같이 묶여 있기 때문에 그것을 몇 마디로 정리해서 이야기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춘추관을 찾았던 시점부터 이미 문 대통령이 입장 표명을 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 관계자는 "국민들께 드릴 수 있는 최적의 메시지가 준비된다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말씀 드릴 것"이라고 대통령의 입장표명 가능성을 열어뒀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정면돌파 의지를 드러낸 것과는 무관하게 당분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이 내세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명분은 박근혜 정부 시절 만들어낸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 3년차까지 사드 배치와 관련해 "미국으로부터 어떤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No Request·No Consultation·No Decision)"는 이른바 '3노(NO)' 입장을 견지해오다가 2006년 1월6일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계기로 사드 도입을 전격 결정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외교적 이익을 고려해 사드 배치에 관한 결정권은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던 문 대통령은 당선 후에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며 사드 배치 보류를 결정했다.
미국쪽에서는 전 정부에서 결정된 사안을 문 대통령이 뒤집으려 한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반대로 중국은 문 대통령의 결정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지난 7월28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2차 발사를 계기로 잔여 사드 발사대 4기에 대한 임시 배치를 전격 결정했다.
이를 두고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적 줄타기를 시도하다가 결국은 미국의 압력을 못 이기고 백기를 든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후보시절인 지난 4월 '6차 핵실험 감행 시 사드 배치 불가피' 발언을 근거로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왔다고 주장하지만 사드 임시배치 결정은 6차 핵실험 이전인 ICBM급 미사일 발사 때 이뤄졌다는 점에서 논리의 일관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는 평가가 계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