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김동현 기자 =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지시했다는 보도가 알려짐에 따라 국내 자동차, 철강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4일 산업통상자원부·외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허리케인 하비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미 FTA 폐기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각종 언론을 통해 우리나라와 맺은 FTA 재협상 또는 폐기를 시사해왔던 만큼 이번 발언을 기점으로 미국이 한미 FTA 폐기를 위한 수순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한미 FTA 폐기 절차에 들어갈 경우 우리나라 정부에 서면으로 폐기를 위한 통보를 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통보를 받은 뒤 30일 이내에 협의를 요청할 수 있다.
만약 폐기 통보가 이뤄진 뒤 180일 이내에 양국이 합의점 등을 찾지 못한다면 한미 FTA는 공식적으로 폐기된다. 이후 미국은 WTO 협정에 따라 관세율 부과 등이 적용, 우리나라와의 무역을 진행한다.
한미 FTA가 폐기될 경우 가장 큰 타격은 자동차 분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FTA 체결 이후 적용됐던 무관세 원칙이 관세 부과 원칙으로 변경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지난해 154억9000만달러로 우리의 미국차 수입액(16억8000만달러)의 9배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 수출되는 자동차에 관세가 붙을 경우 자연스럽게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미국으로의 수출도 크게 감소할 가능성도 높다.
국내 시장에서의 수입 자동차 가격도 올라갈 수 있다.
닛산 등 일본 자동차를 수입하는 일부 업체들은 일본 현지 공장에서 생산된 차량이 아닌 미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된 차량을 무관세로 수입해 국내에 판매하고 있는 중이다.
한미 FTA가 폐지될 경우 사실상 국내 시장에서의 수입 자동차들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문제는 수입 자동차 업체들이 무너질 경우 관련 종사자들의 대량 실직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미 FTA 폐지로 촉발된 사태가 국내 일자리 시장, 내수 시장 등에도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한미 FTA 발효 이후 한국의 미국산 자동차 수입은 계속 늘었던 반면 지난해 한국차의 미국 수출은 오히려 감소했다"며 "한미 FTA 체결 이후 한국 자동차의 미국 수출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한미 FTA 폐기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직접적으로는 국내 완성차의 수출 감소 등이 나타날 수 있다"며 "거시적으로 보면 한미 양국간 무역 규모가 줄어들 수 있어 국가 경제가 안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미국에 수출하는 철강 제품은 한미 FTA와는 상관없이 WTO 협정국간 체결돼 있는 무관세 원칙을 적용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 정부는 WTO 협정국간 체결된 무관세 원칙에 앞서 한미 FTA로 규정된 무관세 원칙을 먼저 삭제한 뒤 우리나라에서 수입하는 철강제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한다는 계획으로 분석된다.
만약 우리나라 철강 제품은 높은 관세율을 부과받고 중국 등에서 생산된 제품과의 경쟁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와관련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한미FTA 재협상이 이뤄질 경우 우리나라 철강업계가 1조5000억원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한미 FTA가 재협상에 돌입하더라도 철강 무관세 원칙을 깨뜨릴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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