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처벌 어려운 '층간흡연'···힘없는 경비원이 해결?

기사등록 2017/09/03 11:45:08

"이웃집 담배 연기 피해에 화장실 문도 못 열어놔"
관리사무소 직원, 경비원이 문제 해결토록 입법화
피해 객관적 측정 불가능···당국서 조정하기도 곤란
'실내금연' 시민의식 필요···"담뱃세 활용 공익캠페인"

 【서울=뉴시스】김지현 기자 = 원룸에 사는 회사원 이현정(27·여)씨는 화장실 환풍기를 틀어놓고 출근을 한다. 이웃주민이 핀 담배 냄새가 화장실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씨는 "집에서 피는 것이 길에서 피는 것보다 더 싫다. 내 방에서 왜 담배 냄새가 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어느 집에서 피는 건지 몰라서 항의도 못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웃주민의 실내흡연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공동주택 입주민들이 늘고 있다.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에 따라 공동주택 공용공간(복도·계단·엘리베이터·주차장)에서의 금연 처벌은 강화됐지만 개인의 주거공간은 여전히 흡연 규제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2014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국민신문고와 각 지방자치단체 등에 제기된 민원을 조사한 결과 '층간흡연'으로 인한 민원이 726건으로 '층간소음' 민원 517건보다 1.5배 가량 많았다.

 ◇국토부 '층간흡연' 규제 입법화···현장선 "탁상공론"
  
 실내에서의 간접흡연 피해를 주장하는 민원이 만연하자 국토교통부(국토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주택법 개정안을 지난달 9일 발표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층간흡연 피해 신고가 들어오면 관리사무소 등 아파트 관리주체가 흡연 중단을 권고할 수 있게 한 내용이다. 또 아파트 관리주체가 실내흡연이 의심되는 가구에 대해 흡연 사실을 확인·조사할 수 있도록 했다. 입주자는 관리주체의 조치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는 점도 명시돼 있다.

 그러나 관리사무소와 경비실 등 아파트 관리직들은 이 개정안이 실효성이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 주민 간 민원을 조정할 권한이 없는 사람들에게 문제 해결을 떠넘겼다는 지적이다.

 13년째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모(54)씨는 "지금도 층간흡연 민원이 들어오면 엘리베이터에 전단을 붙이거나 방송을 통해 자제를 요청한다. 하지만 특정 호수를 언급하기엔 주민 눈치가 보인다"며 "개정안대로 한다면 '내 집 안에서 하는 행위를 무슨 권한으로 규제하느냐' '관리사무소가 주민 위에 있다'는 등 어마어마한 반발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씨와 함께 일하는 직원 A씨도 "관리사무소 직원은 입주민에게 불친절하다는 소문만으로도 해고될 수 있는 처지"라며 "법이 바뀌어도 관리사무소는 금연 협조를 구하는 팻말이나 전단을 붙이는 정도의 대응 밖에 하지 못 할 것이다. 층간흡연을 강하게 제지하면 나중에 우리한테 갑질을 얼마나 하겠냐"고 호소했다.

 서울 서초동 아파트 경비원 B씨 역시 "경비원이 개입해서 층간흡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경비나 관리사무소 직원이 흡연하지 말라고 해도 '알겠다'고 대답하고 무시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담배연기 측정도 문제···소음과 달리 제도적 해결 어려워

 국토부는 층간흡연 피해가 심각할 경우 국가기관에 조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하자고 했다. 층간소음 분쟁은 현재 이런 해결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소음공해 정도를 측정해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조정 절차를 통한 해결은 공동주택법 개정안에서는 빠지게 됐다. 담배 연기로 인한 피해를 정확히 측정하고 유해성을 진단할 기준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층간흡연 피해 기준과 관련해 "보건복지부와 환경부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흡연 피해 측정은 현재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결론"이라며 "담배를 피는 중에 측정하는 것도 힘들고 연기를 포집하는 것도 간단치 않은 문제"라고 설명했다.

 김기현 한양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측정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아파트마다 구조가 다 달라서 담배연기 농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방법을 마련하기 애매한 점이 많다. 측정한다고 해도 그 연기가 바로 아래층에서 나오는 것인지 판가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금연 정책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관계자는 "층간흡연 피해는 대상자의 연령이나 기저질환 여부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유해성 기준 설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실내금연 문화 확산, 흡연자들 스스로 노력 필요 

 흡연자 단속·적발을 담당하는 행정당국에서는 금연구역을 지정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하는 방식의 법적 해결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9월 개정된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주민 과반의 동의를 얻어 금연아파트로 지정된 공동주택 공용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면 당국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구청 단속원은 물론이고 일반 주민도 이웃의 흡연 증거자료를 확보해 구청에 제보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처벌 사례는 드물다.

 서울시 건강정책팀 관계자는 "금연아파트 단속 현황은 시 차원에서 실적 관리를 하지 않는다"며 "단속해서 과태료를 물리는 것보다는 아파트 주민들이 스스로 경각심을 가지자는 취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각에서는 금연구역이 늘어나는데 단속인력은 제자리라서 처벌 조항이 유명무실해지는 게 아니냐고 문제제기를 한다. 그러나 단속원이 늘어난다고 해도 흡연자를 일일이 다 적발할 수는 없다"며 "흡연을 하더라도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한다는 시민의식이 자리잡아야 간접흡연 피해가 줄어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준향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사무처장은 "층간소음의 경우 시민들이 밤 늦게 큰 소음을 내면 안 된다는 자각을 하고 있다. 실내금연도 타인의 건강을 배려하는 흡연자들의 에티켓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며 "층간흡연을 지양하는 문화 조성을 위해 공익광고와 캠페인 등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 사무처장은 "담뱃세가 지난해 12조원이 넘게 걷혔는데 실질적으로 금연에 사용되는 예산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담뱃세가 흡연율 저하와 금연문화 확산에 쓰일 때 담뱃값 인상이 국민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넘어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담배 판매로 조성되는 국민건강증진기금 중에서 국가금연서비스 등 흡연자를 위해 쓰이는 예산은 5% 안팎에 불과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담뱃값 인상으로 늘어난 세수는 국민건강증진에 써야 한다고 말한 바 있지만 이에 관한 정치권 논의는담뱃세 아직 진행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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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처벌 어려운 '층간흡연'···힘없는 경비원이 해결?

기사등록 2017/09/03 11:45:08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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