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시작···서울 곳곳 1000여개소 설치
편의점 대피소로 지정, 위험 처한 여성에 도움
여성들 "모른다"···아르바이트생 "안내 못받아"
"실효성 있어야 '안전의 거점' 상징될 수 있어"
【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 = "그게 뭐예요?"
서울 용산구 청파동 부근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박모(25)씨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매장 입구에 붙어있는 여성안심지킴이집 스티커를 가리키자 나온 대답이었다. 오후 11시부터 오전 7시까지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그는 "한 달 전 인수인계를 받을 때도 관련해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
위급 상황에서 여성 대피소 역할을 하는 편의점 여성안심지킴이집 사업이 시행 4년째를 맞았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안심지킴이집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여성범죄 '방관자' 인식 전환 위해···1000곳 넘어
여성안심지킴이집은 서울시가 2014년부터 진행한 사업이다. 24시간 운영되고 CC(폐쇄회로)TV가 있는 편의점을 대피소로 지정해 위험에 처한 여성에게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여성안심지킴이집은 여성 1인 가구 밀집지역이나 우범지대 부근에 위치한 편의점 점주를 상대로 신청 의사를 물어본 뒤 지정된다.
서울시 여성가족정책담당 관계자는 "당시 여성범죄를 목격해도 모른 척하는 방관자 의식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며 "어떻게 하면 책임 의식을 갖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편의점을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일반 편의점과 가장 큰 차이점은 경찰의 '112긴급시스템'에 등록돼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나 일부 편의점 본사에서 제공하는 무선벨을 누르면 즉시 경찰이 출동한다. 긴급 상황에서 경찰에 직접 전화를 걸어 위치나 피해 상황을 알리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 시스템이다. 경찰 관계자는 "여성안심지킴이집 신고는 바로 접수가 되기 때문에 가장 최우선으로 출동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2014년 2월 한국편의점협회 회원 5개사와 협약을 맺고 3월 본격적으로 여성안심지킴이집 설치를 시작했다. 매년 해당 점포를 늘려 지난달 기준으로 서울시내 1005곳이 설치돼 있다.
여성안심지킴이집으로 선정된 편의점은 매장 내 무선벨을 설치하고 편의점 본사에서 안내 교육을 받는다. 이후 관할 구청에서 연 2회 점검을 하는 형식으로 관리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하철 가판대에서부터 서울시 뉴스가 나오는 광고판이나 전광판 등 광고를 실을 수 있는 모든 곳에 홍보를 했다"고 말했다. 시에서 추진하는 여성 안전 대책인 만큼 더 많은 시민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이야기다.
◇여성도·아르바이트생도 "여성안심지킴이집?"
그러나 정작 존재 자체를 모르는 여성들이 대다수다. 110곳으로 가장 많은 여성안심지킴이집이 설치된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김수연(24·여)씨는 "편의점에 자주 가는 편인데도 한 번도 스티커를 본 기억이 없다"고 밝혔다.
여성안심지킴이집에 대해 몰랐다는 오지연(25·여)씨는 "불켜진 편의점이 있어도 밤 늦게 홀로 귀가할 때 항상 무서웠다. 이런 편의점이 있는 줄 알았으면 덜 마음을 졸이며 다녔을 것 같다"고 말하며 아쉬워했다.
해당 편의점 점주를 상대로 여성안심지킴이집에 대한 안내나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경복궁 주변 편의점주인 40대 김모씨는 "2014년 사업 초기 때 신청했는데 여성안심지킴이집 관련 팸플릿만 하나 받고 끝이었다"며 "비상벨도 받았는데 언제 고장 났는지도 모른 채로 방치돼 있다"고 전했다.
2년전 서울역 인근에 위치한 여안심지킴이집 편의점을 인수한 김모(62·여)씨는 "점포를 인계받을 당시 안심지킴이집을 유지하겠냐고 물어서 '좋은 일이니 하겠다'고 했다"며 "시나 구청, 편의점 본사에서 어떤 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 1년 전 쯤 와서 계산 데스크 밑에 대응 메뉴얼 스티커를 붙이고 간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위급 상황이 발생하는 야간에는 대부분 아르바이트생이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작 아르바이트생들은 여성안심지킴이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충무로 부근 여성안심지킴이집 편의점에서 8개월째 야간 아르바이트생으로 근무 중인 30대 정모씨는 "여기가 여성안심지킴이집인지는 처음 알았다"며 "점주에게든 시에서든 한 번도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아르바이트 특성상 수시로 근무자가 바뀌는 것도 교육이 어려운 이유다. 한 구청 관계자는 "점검팀이 말하길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여성안심지킴이집에 대해 설명하느라 점검 시간이 길어진다고 했다"고 전했다.
일부 아르바이트생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야간 아르바이트생 박모(32)씨는 여성안심지킴이집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새벽 편의점 일 자체가 어느 정도 위험을 부담하고 하는 일"이라면서도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찾아오면 당황스러울 것"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여성안심지킴이집 이용 건수는 많지 않은 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여성안심지킴이집 이용 건수는 ▲2014년 81건 ▲2015년 90건 ▲지난해 79건이다. 해당 지점은 꾸준히 증가해 1000여 곳이 넘은 반면 이용 건수는 제자리인 셈이다.
한 일선 경찰 관계자는 "여성안심지킴이집에서 신고가 들어오면 1순위로 가지만 99%는 벨 오작동에 의한 출동이라고 보면 된다"며 "아르바이트생들이 하도 바뀌어서 자신이 뭘 눌렀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용 건수로 여성안심지킴이집의 실효성을 논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용건수는 일 년에 두 번 구청에서 점검에 나서 취합한 결과"라며 "피해 여성이 대피한 뒤 신고를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도움을 준 사건을 일일이 기록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한해 책정된 5000만원 예산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현실적으로 점검을 나갈 수 있는 행정 인력도 한계가 있고 아무런 이득도 없이 자발적으로 여성안심지킴이집을 희망한 점주에게 아르바이트생 교육까지 당부하기는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전문가 "실효성 확보로 '편의점=안전' 상징 얻어야"
전문가들은 좋은 취지의 정책인 만큼 실효성 확보에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오윤성 순천향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수요자인 여성들이 알아야 하는 것이 급선무다. 현재 무광인 안내 스티커는 밤늦게 눈에 잘 띄지 않는다"며 "형광 표지판을 설치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점주에게 주어진 역할을 보다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1년마다 사업을 정리할 때 우수 점포에는 서울시 표창을 수여하는 등 일종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고 제안했다.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단순히 희망 점주의 신청을 받기보다 여성안심지킴이집으로 선정되면 피해요청 사례별 대응 요령을 알려주고 이를 아르바이트생에게 고지할 의무가 있다는 전제를 다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김해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실효성이 있어야 편의점이 '안전의 거점'이라는 상징이 될 수 있다"며 "여성안심지킴이집의 최대 장점인 비상 신고 체계를 철저히 관리해 야간 아르바이트생부터 자신의 근무지가 안전하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면 도움을 요청하는 시민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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