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오동현 기자 = 삼성의 역사이자 반도체의 대부로 평가받는 강진구 전 삼성전자·삼성전기 회장이 19일 저녁 8시41분 별세했다. 향년 90세다.
강 전 회장은 1927년 경북 영주 출생으로 대구사범학교와 서울대 공대 전자과를 졸업했다. 그는 육군 대위 복무를 마치고 KBS와 미8군 방송국, 중앙일보 동양방송 이사를 거쳐 1973년부터 삼성맨이 됐다.
당시 강 전 회장의 삼성전자 합류는 이병철 선대 회장의 지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강 전 회장의 '삼성전자, 신화와 그 비결'이라는 회고록에 따르면 이병철 선대 회장은 동양방송 평이사였던 그와 점심식사도 함께 하고, 위성 중계되는 권투경기를 시청하기도 했다.
강 전 회장은 회고록에 "흔이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막연히 '회장님께서 나를 눈여겨 보시나보다' 정도로 생각했지 삼성전자를 맡기실 줄은 몰랐다"고 적었다.
그는 선대 회장이 1973년 삼성전자 대표이사로 임명하자, 1969년 창립 이후 5년간 적자이던 회사를 단번에 흑자로 전환시켰을 정도로 경영자로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선대 회장의 신뢰 속에 강 전 회장은 삼성전자 상무·전무·사장을 거쳐 삼성전자부품·삼성정밀 사장, 삼성반도체통신 사장, 삼성반도체통신·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기 대표이사, 삼성전자 회장, 삼성전관·삼성전기 회장, 삼성의료원 강북병원재단 이사장, 삼성전기 대표이사 회장, 삼성그룹 구조조정위원 등을 역임했다.
이후 그는 2000년 12월31일 건강문제와 후진양성을 이유로 삼성전기 회장직에서 사임, 37년간 몸담았던 삼성을 떠났다.
특히 강 전 회장은 우리나라가 반도체 세계 1위 국가로 발돋움하는데 있어서 일등공신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이 1981년 반도체 사업 진출 당시부터 깊숙이 개입하며 반도체 신화를 일구는데 일조했다. 선대 회장이 직접 전화로 '반도체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일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고, 1983년 8월 64KD램을 조립 생산에 성공한 데 이어 그해 12월 64KD램을 자체 개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같은 업적을 인정 받아 강 전 회장은 삼성이 1995년에 만든 '명예의 전당'에 최초로 헌액됐다. 경기도 용인 삼성인력개발원에는 그의 흉상과 함께 이름이 걸려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강 전 회장에 대해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전관 회장을 지낸 삼성의 역사 그 자체"라고 평가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강 전 회장의 회고록 추천사에서 "오늘의 삼성전자를 있게 한 최대의 공로자"라면서 "삼성전자가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발돋움하도록 그 기반을 구축한 공로에서부터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총체적 발전에 기여한 공로에 이르기까지 강 회장의 혼신은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뚜렷하게 각인돼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또 "세계 전자업계에서조차 강 회장을 한국 전자산업의 대표적 전문경영인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미루어 이 분이 쌓아온 업적의 넓이와 깊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강 전 회장은 발명특허협회 부회장, 한국전자통신 사장, 한국전기·전지시험검사소 이사장,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평통 자문위원, 전자공업진흥회 회장, 산업기술진흥협회 부회장, 한·벨기에경제협력위원장, 한·헝가리경제협력위원장,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고문, 대한산업안전협회 회장, 한국엔지니어클럽 회장, 표준과학연구소 이사장, 중동학원 이사장, 한국전자산업진흥회 회장, 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 등을 지내며 대내외에서 두루 인정받은 인물이다.
강 전 회장은 2006년 서울대와 한국공학한림원이 선정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에 포함돼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한편, 강 전 회장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23일 오전 7시다.
[email protected]
강 전 회장은 1927년 경북 영주 출생으로 대구사범학교와 서울대 공대 전자과를 졸업했다. 그는 육군 대위 복무를 마치고 KBS와 미8군 방송국, 중앙일보 동양방송 이사를 거쳐 1973년부터 삼성맨이 됐다.
당시 강 전 회장의 삼성전자 합류는 이병철 선대 회장의 지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강 전 회장의 '삼성전자, 신화와 그 비결'이라는 회고록에 따르면 이병철 선대 회장은 동양방송 평이사였던 그와 점심식사도 함께 하고, 위성 중계되는 권투경기를 시청하기도 했다.
강 전 회장은 회고록에 "흔이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막연히 '회장님께서 나를 눈여겨 보시나보다' 정도로 생각했지 삼성전자를 맡기실 줄은 몰랐다"고 적었다.
그는 선대 회장이 1973년 삼성전자 대표이사로 임명하자, 1969년 창립 이후 5년간 적자이던 회사를 단번에 흑자로 전환시켰을 정도로 경영자로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선대 회장의 신뢰 속에 강 전 회장은 삼성전자 상무·전무·사장을 거쳐 삼성전자부품·삼성정밀 사장, 삼성반도체통신 사장, 삼성반도체통신·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기 대표이사, 삼성전자 회장, 삼성전관·삼성전기 회장, 삼성의료원 강북병원재단 이사장, 삼성전기 대표이사 회장, 삼성그룹 구조조정위원 등을 역임했다.
이후 그는 2000년 12월31일 건강문제와 후진양성을 이유로 삼성전기 회장직에서 사임, 37년간 몸담았던 삼성을 떠났다.
특히 강 전 회장은 우리나라가 반도체 세계 1위 국가로 발돋움하는데 있어서 일등공신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이 1981년 반도체 사업 진출 당시부터 깊숙이 개입하며 반도체 신화를 일구는데 일조했다. 선대 회장이 직접 전화로 '반도체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일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고, 1983년 8월 64KD램을 조립 생산에 성공한 데 이어 그해 12월 64KD램을 자체 개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같은 업적을 인정 받아 강 전 회장은 삼성이 1995년에 만든 '명예의 전당'에 최초로 헌액됐다. 경기도 용인 삼성인력개발원에는 그의 흉상과 함께 이름이 걸려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강 전 회장에 대해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전관 회장을 지낸 삼성의 역사 그 자체"라고 평가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강 전 회장의 회고록 추천사에서 "오늘의 삼성전자를 있게 한 최대의 공로자"라면서 "삼성전자가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발돋움하도록 그 기반을 구축한 공로에서부터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총체적 발전에 기여한 공로에 이르기까지 강 회장의 혼신은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뚜렷하게 각인돼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또 "세계 전자업계에서조차 강 회장을 한국 전자산업의 대표적 전문경영인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미루어 이 분이 쌓아온 업적의 넓이와 깊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강 전 회장은 발명특허협회 부회장, 한국전자통신 사장, 한국전기·전지시험검사소 이사장,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평통 자문위원, 전자공업진흥회 회장, 산업기술진흥협회 부회장, 한·벨기에경제협력위원장, 한·헝가리경제협력위원장,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고문, 대한산업안전협회 회장, 한국엔지니어클럽 회장, 표준과학연구소 이사장, 중동학원 이사장, 한국전자산업진흥회 회장, 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 등을 지내며 대내외에서 두루 인정받은 인물이다.
강 전 회장은 2006년 서울대와 한국공학한림원이 선정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에 포함돼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한편, 강 전 회장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23일 오전 7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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