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날]'예비 범죄자' 낙인 찍히는 정신장애인들

기사등록 2017/04/19 17:09:25

【서울=뉴시스】연도별 정신장애 범죄자 현황. 자료=경찰청
【서울=뉴시스】연도별 정신장애 범죄자 현황. 자료=경찰청
일부 강력범죄자들 정신질환 병력 논란
 '정신장애인=잠재적 범죄자' 인식 확산
 실제 정신장애인 범죄 비율 매우 낮아
 "강력범죄자는 주로 인격장애…미디어 역할 중요"  

【서울=뉴시스】이혜원 기자 = "사회가 마치 정신질환자에게 늘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 같아요. 그럴 때면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구나 싶죠."

 조울병을 앓고 있는 권모(45·여)씨는 최근 외출을 꺼리고 있다.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사람들의 편견이 두려워서다.

 2011년 조울병 진단을 받은 권씨는 19일 "정신질환은 24시간 증세가 있는 게 아니다. 부분적으로 망상 같은 게 올 뿐이다. 하지만 사회는 마치 항상 정신적 문제가 있는 상황으로 본다"고 호소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많은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고용, 교육, 교통수단, 정보 및 정보통신기기 접근, 금융·의료·관광 서비스 등 일상생활에서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는 정신분열증(조현병), 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장애인들도 편견과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정신질환 장애인=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혀 있기 때문이다.

 박지선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가 2015년 발표한 논문 '정신질환자들의 범죄 위험성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의 범죄 가능성에 대한 과장된 인식이 사회에 퍼져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가 서울 소재 사이버대학 상담심리학과 학생과 수도권 소재 4년제 대학생 35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들은 '정신질환자는 대부분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는 항목에 대해 4.6점 수준(7점 만점)으로 동의했다.

associate_pic2
【서울=뉴시스】안지혜 기자 = 12일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7~11월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51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6년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에서 주요 정신질환의 평생유병률은 25.4%로 분석됐다.     [email protected] 
 '최근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는 항목에 대한 동의 정도는 4.66점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같은 인식과 달리 실제 정신장애인의 범죄 비율은 낮다.

 2014년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전체 범죄자 중 정신장애인의 비율은 0.3%에 불과했다. 2014년에도 0.1%p 오르는 데 그쳤다.

 강력사건 범죄자 중 정신장애인 비율은 2014년 기준 2.6%였다. 폭력범죄자의 경우 전체의 0.6%에 그친다.

 정신장애인의 범죄 위험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근래 사회적 이목을 끈 정신장애 관련 범죄가 종종 발생하면서 확대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29일 인천 연수구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유괴살인사건에 대해 일각에서 조현병에 의한 '묻지마 범죄'가 아니냐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A(17)양은 초등학교 2학년 B(8)양을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와 살해한 뒤 옥상 물탱크 인근에 시신을 유기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1차 부검결과 B양이 목 졸림에 의한 질식사한 것으로 파악했다.

 현재까지 범행 동기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A양이 조현병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온 이력이 확인되면서 조현병으로 인한 범죄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 가해자 김모(35)씨 역시 조현병을 앓아왔다.

 김씨는 지난해 5월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에 있는 한 노래방 건물 화장실에서 C(당시 22세·여)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associate_pic2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11일 오후 서울 금천구 금나래아트홀에서 금천장애인종합복지관·은평병원이 주최한 '걱정말아요 그대' 콘서트에서 가수 전인권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장애인가족의 힐링 필요성과 함께 가족들의 희망을 사회적으로 널리 알리고자 기획된 이번 콘서트는 가수 전인권의 사회공헌으로 진행됐으며 발달·정신장애인 가족 500여명이 참석했다. 2016.05.11.  [email protected]
 김씨는 여성이 홀로 화장실에 올 때까지 30분가량 기다린 뒤 혼자 화장실에 들어간 C씨를 표적으로 삼았다. "여자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했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경찰 조사결과 김씨가 실제로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한 구체적인 사례는 없었으며 피해망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김씨의 정신병력이 알려지면서 조현병 환자들의 범죄 연관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악화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범죄는 극히 드물고 극단적인 경우에 속한다.

 과장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진단한다.

 신석철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조현병이 심하면 오히려 계획적인 살인을 할 수 없다. 환각이나 환청에 시달리는 것만으로도 힘들다"며 "실제 이런 강력범죄자들은 정신장애가 아니라 인격장애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신 소장은 "비장애인들이 정신장애인들을 접할 기회는 매스컴뿐"이라며 "인식 개선을 위해 미디어가 정신장애인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도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낸 논평에서 "모든 정신장애인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몰고 가는 일부 언론 보도 또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키고 있다"며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언론보도는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관계자 역시 "강력범죄 사건이 언론에 비치면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굳어졌다"며 "정신장애인은 잠재적 범죄자라는 잘못된 공식을 깨는 보도가 많아지면 인식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장애인의날]'예비 범죄자' 낙인 찍히는 정신장애인들

기사등록 2017/04/19 17:09:25 최초수정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