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시장 갈등]"지하에선 개·돼지도 안 키운다"…등돌린 가락시장 상인들

기사등록 2017/03/12 06:01:00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농수산물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이 심각하다.

 시설 현대화사업을 추진한 정부와 서울시, 시 산하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661명의 청과직판 상인들에게 시장 동편에 위치한 새 종합식품시장 '가락몰'로 이전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중 절반인 331명만이 가락몰 지하 1층으로 점포를 옮기고 나머지 절반은 이전을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찬성과 반대로 갈린 청과직판 상인들은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처지가 됐다. 가족적인 분위기였다는 청과직판 상인들의 분열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7483억여원짜리 장기 프로젝트에까지 빗장을 걸고 있다.   

 이전을 거부하고 있는 청과직판 상인들은 하루하루를 불안과 분노 속에 살고 있다고 토로한다. 이웃상인들이 절반가량 떠나 비어버린 을씨년스런 기존 청과직판장에 남은 상인들은 시장 운영주체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측이 밤중에 폐쇄작업을 기습적으로 진행할까 불침번을 서며 직판장을 지키고 있다.

 상인들은 공사에 대한 원망, 가락몰로 떠난 이웃상인에 대한 배신감,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들은 지난 9일 현장을 찾은 기자에게 불만을 토로하며 공사와 이미 떠난 동료를 성토했다.

 상인들은 가락몰로 옮기면 지하 1층에 입점해야 한다는 점에 가장 강하게 반발했다. 상인들은 "개·돼지도 지하에서는 안 키운다", "노점상으로 가도 지하에는 못 간다", "야채는 자연공기에서 있어야 하는데 에어컨을 켜면 안된다. 그런 상태에서 납품하면 하루도 못 견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상인들은 가락몰 지하 1층내 공기 질이 좋지 않다고도 주장했다.

 한 상인은 "거기로 옮긴 사람들이 '다니다 보면 목이 콱 막힌다'고 하더라"며 "공기 순환이 원활하지 않다. 매연이 더러워서 야채가 남아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거기는 주차장과 매장이 붙어 있다. 아무리 기계로 빨아들여도 그 매연이 어디 가겠냐"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들은 가락몰로의 이전 요구는 사실상 소매업으로 전환하라는 강요라고 성토했다.

 다른 상인은 "우리는 도매인데 왜 소매로 만들려는지 모르겠다"며 "우리중 99%가 중도매인데 가락몰로 가라는 것은 소매를 하라는 것이다. 전철역옆에 있는 가락몰에서 가정주부들 상대하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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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거부 상인들의 모임인 청과직판상인협의회의 관계자는 "가락몰은 소매중심 마트인데 우리들은 도매가 중심"이라며 "가락몰이 아동복을 파는 곳이라면 우리는 성인복을 파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이전 거부 상인들은 공사 측에 대한 반감도 드러냈다.

 한 상인은 "공사측이 가락몰로 먼저 이전하는 사람에게 좋은 자리를 준다고 했다. 입점안하면 가게 허가를 취소한다고도 압박했다"며 공사의 행태를 비난했다.

 또다른 상인은 "공사 직원들이 우리가 장사하는 것을 직접보고 나서 현대화사업을 진행했어야 했는데 탁상행정만 했다"며 "현대화사업을 추진했던 공사직원들은 다 발령나서 다른 데로 갔다. 그 사람들 자리에 들어온 사람들이 이 사업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더라"고 꼬집었다.

 청과직판상인협의회 관계자는 "현대화사업은 결국 2000명 수준인 임대상인들을 1200명 규모인 가락몰에 넣겠다는 것"이라며 "업종전환과 업소간 통합을 통해 사실상 800명을 구조조정하겠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이전 거부 상인들은 이미 이전한 이웃상인들에 대한 배신감도 숨기지 않았다.

 한 상인은 "전직 조합회장이 이전과 관련해 결정된 게 없다고 하면서 '이전하면 관리공사 건물에서 떨어져 죽겠다'고까지 했는데 상인들을 버리고 앞장서서 가락몰로 갔다"며 "이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성토했다.

 앙금이 있는 것은 이미 가락몰로 이전한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가락몰에 입점한 한 상인은 "청과직판 상인들은 다른 데보다 가족적이고 단합이 잘됐다. 공사에서 행사를 하면 우리가 다른 데보다 앞장섰다"며 "그런데 이제는 저쪽에 있는 팀이 '가락몰은 주차가 불편하다'는 식으로 계속 홍보를 하니 손님들이 가락몰에 와보지도 않는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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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상인은 "(대치하는) 흐름이 길게 가고 있는데 공사가 빨리 (기존 청과직판장 폐쇄를) 추진했으면 좋겠다"며 "빨리 협상을 마무리해서 (가락몰에서) 장사를 원활히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다른 상인은 "여기(가락몰)는 이제 조금씩 안정돼 간다"며 "없는 품목이 별로 없어서 이제는 저 사람들 안 들어와도 된다는 상인도 있다. 매출이 30% 늘었다는 상인도 주변에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와 노량진 수산시장 사태를 비교하며 각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장 현대화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청과직판상인협의회 관계자는 "노량진시장도 가락시장도 이해당사자인 상인들의 의견이 반영 안됐다"며 "현대화사업을 한다면서 기존 상인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오세훈 서울시장 때 '디자인 서울'의 일환으로 보여주기식 사업을 했다"며 "가락시장을 운영하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나 노량진 수산시장을 운영하는 수협이나 모두 재래시장의 발전이 아니라 임대사업에 치중했다. 도매시장으로서의 기능보다 수익사업에만 치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공사와의 협상에 관해선 "이번 협상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공사는 시일이 촉박하다고 하는데 더디더라도 올바로 풀어야 한다. 하루 늦어도 큰 차질은 없다. 유통인들의 요구를 실현하는 게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 "조합원들 중 30년 이상 이곳에서 장사를 한 분들도 많고 대부분 연세가 많은데 물리적 충돌은 피해야 한다"며 "그래도 만약 충돌하면 생존권 차원에서 막을 수밖에 없다. 해결 안 되면 우리는 길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다. 공사도 가락몰 이전을 전제하지 말고 탄력적으로 상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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