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는 그만…오세열 '기호학' vs 안규철 '설치학'

기사등록 2017/02/27 16:31:20

【서울=뉴시스】오세열 개인전, 학고재 갤러리
【서울=뉴시스】오세열 개인전, 학고재 갤러리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한국미술은 단색화만 있는게 아니다.'

 '단색화' 쏠림현상이 심했던 지난해와 달리 새해는 단색화 아닌, 작품들이 화랑가에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해외미술시장에서 단색화가 곧 한국미술로 보는 한계 현상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했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작가, 작품 발굴이 필수적이라는게 화랑들의 의지다. 물론 이는 화랑의 근본적인 역할이기도 하다. 또한 컬렉터들도 새로움의 갈증이 심한 상황이다.

 국내 유명 상업화랑인 국제갤러리(대표 이현숙)와 학고재 갤러리(대표 우찬규)가 먼저 나섰다. 삼청로에 나란히 이웃한 중대형 상업갤러리의 전시는 올해 미술시장의 전시 트렌드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특히 작가로서 이 갤러리에서 전시한다는 건, 쉽게 말해 신세계 백화점에 입점한 셈이 된다. (롯데보다는 고급스런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측면에서 분류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같은 작품이라도 이들 갤러리에 선보이면 '때깔'이 달라진다. 더욱이 이들 갤럴리는 바젤아트페어등 해외 유명미술시장에도 유통망을 보유해 '일타쌍피' 효과도 있다.

 먼저 학고재는 오세열(72·목원대 명예교수)개인전, 국제갤러리는 안규철(62·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개인전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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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오세열 작가, 학고재갤러리 제공
 원로화백 반열에 올라선 두 작가지만 작품은 신선하다.  단색화도 구상도 아닌 '낙서같은 그림'과 '많은 말'을 담은 설치작품으로 컬렉터들을 사로잡고 있다. 두 작품 모두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안에 대한 치유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단색화가 아닌, 그림과 설치, 장르가 다른 두 작품을 한 길가에서 동시에 만나볼수 있는 즐거운 전시다.

 ◇학고재, '오세열: 암시적 기호학'전

 "모노크롬은 맞지만 단색화는 전혀 아니다"

 단색화때문에 어쩌면 '단색화 후손'같아 보이는 작품이만, 작가 오세열은 '포스트 단색화'로 분류되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

 1970년대 구상계열 작품을 하다 80년대부터 형태를 해체한 반추상의 작업을 했다. 관습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러다 보니 구상도 아니고 추상도 아닌 반추상적 형태를 띠게 되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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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오세열, 무제 Untitled, 2017, 혼합매체 Mixed media, 73x62cm
 스타작가였다. 30대에 조선화랑, 진화랑 등 당대 최고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며 파리,피악(Fiac, 1984)에서 남관,박서보,김기린,이우환 등과 함께 전시했다. 80년대 피악에서 한국 작가로 유일하게 판매가 이뤄져 주목받았다. 당시 미국 소속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프랑스에 소개한 김창렬 작가 또는 이우환 작가의 작품이 판매 된 적은 있었으나 한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이 판매 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내게 캔버스는 동심의 도화지다. 그림은 즐거워야 한다"는 그는 2000년대부터 ‘동심(童心) 모노크롬’을 선보였다. 2010년 대학교수에서 정년퇴직 후 다시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 그는 "그림은 즐거워야 한다. 보는 사람이 재미있다 즐겁다고 느끼면 족하다”고 했다. 

 오세열의 최근 그림에는 암시적인 기호들이 화면을 구성한다. 아라비아 숫자를 비롯하여 낙서를 연상시키는 느슨한 타입의 은유적 메시지들, 그리고 익명적이고 자전적이며 극중의 피에로를 연상시키는 인물 시리즈들로 나타난다.

 이용우 미술평론가는 "이러한 소재들은 작가가 만들어낸 탈 유채화적 평면의 질감과 만나면서 오세열 그림만의 독자성을 확보한다"고 평했다.

 학고재갤러리 본관 입구에 들어서면가장 먼저 '무제'(2013)를 마주하게 된다. 150호 크기의 이 작품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어린 시절 교실에 걸려 있던 칠판을 연상시킨다. 검은 바탕 위에 숫자와 도형, 나무, 새를 하얀 분필로 낙서해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선이 한 올 한 올 칼로 화판을 긁어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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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국제갤러리 1관 (K1) 안규철 개인전 《당신만을 위한 말》 설치전경 사진: 박준형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특히 오브제의 활용은 오세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그는 플라스틱 포크나 색연필, 집게등 매우 일상적인 오브제들을 화면으로 끌어와 회화의 주요 소재로 활용한다. 이런 소재들은 그를 둘러싼 주변의 상황들과 어우러지며 보는 이들의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신관과 본관에 오세열의 40년 작품 활동을 망라하여 60년대 구작부터 최신작을 포함한 50여점이 전시됐다. 3월 26일까지.

 ◇국제갤러리 안규철 '당신만을 위한 말'전

 일명 '미술관 작가' 안규철의 화려한 상업화랑 진출전이다. 90년대 초 샘터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연후 20여년간 '상업화랑'과는 연이 닿지 않았다. '개념 미술'. 말은 좋지만 '팔리지 않는 작품'이었기 때문.  하지만 그 덕에 교수가 됐고, 작가는 더 신중해졌다.

 '혼란의 시대', 타이밍이 맞았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연 전시는 히트했다.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전을 타이틀로 한 전시는 관람객이 이어졌다. 남녀노소 미술의 미자도 모르는 사람들까지 위무하며, 관람객 34만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동안 '샤갈전'등 블록버스터전에 몰린 숫자만큼 흥행한 이례적인 개념미술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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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국제갤러리 1관 (K1) 안규철 개인전 《당신만을 위한 말》 설치전경 사진: 박준형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이 여세를 몰아 쏟아지는 러브콜속에서 국제갤러리를 선택했다. 지난 21일부터 열고 있는 개인전 '당신만을 위한 말'전은 다시 화제다.

 팔리지 않을 것 같은 작품은 벌써 예약이 될 정도로 컬렉터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물론 국제갤러리의 공격마케팅도 한몫한다.

 '당신만을 위한 말'전에 선보인 작품은 엉뚱하거나 낭패감이 있다.

 독일 유학시절, 의자를 심으면 나무가 자랄까 하고 화분에 심어봤던 엉뚱한 상상력이 작품으로 나왔다.배 젓는 노를 4개의 다리로 삼은 '노/의자'(1500만원선)가 연장선이다. 이 의자는 높기도 하지만, 쉽게 앉을수 없는 의자다.  한군데 머물러야 하는 의자가 '다리'를 저어 어디론가 멀리 떠난다는 뜻으로, '불가능한 꿈'에 관한 이야기다.

 작품은 대부분 갈등 상황에 봉착하게 만든다. 전시장에 세워져 있는 '두 대의 자전거'는 오도가도 못하게 하는 낭패감을 전한다. 자전거 두대를 반으로 절단해 핸들은 핸들끼리, 안장은 안장끼리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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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안규철 작가,사진: 박준형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전시장 벽면에 지그재그 형태로 미세한 경사를 이루며 설치된 목재 레일 구조물 '머무는 시간 I, II', 나무상자 안에 들어있는 바퀴, 늑대의 탈을 쓴 양, 탁구공부터 농구공까지 크기가 같은 7개의 공들 등 전시장에 나온 작품들은 쉽게 지나칠수 없다. 한참을 머무르게 한다.

  작품을 보면서 '도대체 뭘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미 작품이 던진 미끼를 문 것이다. 알고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우리는 그 반대의 생각을 묻어두고 살았다. 당연시했던 그 생각, 그 정답들을 흔들어댄다.

 전시는 사물의 기능과 성격을 전복시키고 유희적인 상상으로 이끌며, 고정관념이나 일상의 이면을 환기시킨다.

 그동안 안규철 전시가 문학적인 서사를 기반으로 구성되었다면, 이번 전시는 구체적인 사물의 상태와 물성에 주목한다는 점이 다르다. 안규철은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는 초기의 오브제작업으로부터, 사물과 이야기를 연결하는 서사적 내러티브작업, 건축적인 규모의 설치작업을 거쳐, 근래의 퍼포먼스와 영상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다뤄오며 '게놈(genome)'같은 개념미술'을  펼치고 있다.

 "실험적이고 개념적인 작업들이 통용될 수 있다는 하나의 사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 그의 바람처럼 전시는 미술시장의 다양성을 확장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골치아팠을 관람객을 안아주기도 한다. 전시 타이틀이자, 검은 블랙홀같은 '당신만을 위한 말'은 품을 허락한다. 모든 소리를 흡수하는 펠트로 덮여있는 부드러운 검은 벽을 만든 작가는  ‘자신만을 위한 말’을 생각해볼 것을 제안한다.  전시장 하얀벽에 울퉁불퉁 커다랗게 붙은 검은 작품은 우리의 고백과 침묵을 들어주는 통로다. 작품에 머리를 기대어 볼수 있다. 폭신폭신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진다. 전시는 3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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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는 그만…오세열 '기호학' vs 안규철 '설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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