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의 역설…정호승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기사등록 2017/02/09 08:52:52

【서울=뉴시스】정호승, 시인. 2017.02.09.(사진=C영상미디어·창비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정호승, 시인. 2017.02.09.(사진=C영상미디어·창비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부디 너만이라도 비굴해지지 말기를/강한 바닷바람과 햇볕에 온몸을 맡긴 채/꾸덕꾸덕 말라가는 청춘을 견디기 힘들지라도/오직 너만은 굽실굽실 비굴의 자세를 지니지 않기를"('굴비에게' 중)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존재로서의 비극적 자기인식"이라는 문학평론가 염무웅의 해설에 더할 나위 없는 시구다.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깃든 맑은 서정의 세계를 펼쳐온 시인 정호승(67)이 4년 만에 신작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를 펴냈다.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이후 대표적인 서정 시인으로 자리매김한 그가 등단 40년 기념 시집 '여행'(창비·2013) 이후 출간한 열두번째 시집이다.  

 슬픔과 고통과 절망의 밑바닥에서 길어올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따스한 시편들이 뭉근하게 자리하고 있다. 총 110편의 시를 각부에 22편씩 5부로 나눠 실었다. 시인이 밝혔듯, 이중 3분의 2가 미발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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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정호승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2017.02.09.(사진=창비 제공) [email protected]
 세상의 모든 고통을 감싸안으려는 정호승에게 삶은 슬픔으로 살아가는 외로운 영혼끼리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일이다. "가난의 빵을 나눠 먹"('그림자가 두렵다')거나 "서로의 누룩이 되는 일"('누룩')인 셈이다.  

 누추한 세상에서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고통의 질문' 끝에 "인간이 사랑할 수 있는 일은/지금 내려간 길의 바닥에 있다"('계단')고 깨닫는 순간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어둠이 빛을 이기고 거짓이 참을 이기려 드는 세상, 정호승은 "죽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벼랑에 매달려 쓴 시')는 이 비참한 시대의 아픔을 행여 잊을까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단 한번이라도 남의 배고픔을 위해 기도"('전태일거리를 걸으며')하는 마음을 갖고자 한다. 172쪽, 8000원,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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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의 역설…정호승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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