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조선왕릉 석물조각사(Ⅰ)’가 나왔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왕릉의 학술 가치를 조명하고 보존관리를 위한 고증자료를 바탕으로 2006년부터 시대별 왕릉조각 양식을 종합 분석한 첫 번째 결과물이다.
조선왕릉은 석인상과 석수(石獸), 즉 동물조각, 비석 등 1400여기에 달하는 석물을 간직하고 있다. 녹지 위에 펼쳐진 거대한 야외조각장에 비유된다. 석물은 조선왕릉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조선왕조 동안 일관성 있게 제작돼 역사성과 고유의 미감을 살펴볼 수 있는 유용한 대상이다. 그러나 워낙 수가 많고 연구인력이 부족해 학계에서도 충분히 면모를 밝히지 못한 실정이었다.
책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0년 넘게 축적해 온 자료를 집성한 것이다. 조선왕릉 석물의 기원, 재료, 제작공정, 신라~고려, 조선~대한제국에 이르는 방대한 시간적 편년에 따른 조각양식 등 미술사적 관점에서 왕릉석물의 변천을 통시대적으로 파악한 최초의 개론서다.
조선왕릉 문·무 석인상과 신도비(神道碑)·표석 등 비석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우리나라 왕릉조각의 시원을 이룬 신라왕릉 석인상의 특징, 발해와 중국의 요·금·송·원나라대 양식을 받아들여 독자적인 전통을 수립한 고려왕릉 조각의 대외교류 양상과 조선으로의 이행, 조선왕릉 석인조각과 능제 간 관계, 도상(圖像) 변화 등을 규명해 역사·예술적으로 중요한 작품을 선정했다. 한국왕릉 조각사 편년을 위한 기준을 제시했다.
신라왕릉 석인상 중 ‘서역인 이미지’로 잘 알려진 원성왕릉(괘릉) 무인상은 조선왕릉에 무석인상이 놓이게 된 기원이 됐다. 서역의 직접적 영향이 아닌 신장상(神將像) 등 당시 불교조각의 영향으로 후대에 제작됐다는 새롭게 밝혀진 사실도 담았다.
분단으로 인해 확인하기 힘든 북의 고려왕릉 석인상의 실제 모습을 상세히 소개했다. 조선왕릉 석인상·비석에 숨겨진 변화상을 문헌과 시각자료로 고찰했다. 조선왕실 조각의 성격이 절제미로 규정돼 온 것과 달리 개성과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누리집(www.nrich.go.kr,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에서 열람할 수 있다.
[email protected]
조선왕릉은 석인상과 석수(石獸), 즉 동물조각, 비석 등 1400여기에 달하는 석물을 간직하고 있다. 녹지 위에 펼쳐진 거대한 야외조각장에 비유된다. 석물은 조선왕릉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조선왕조 동안 일관성 있게 제작돼 역사성과 고유의 미감을 살펴볼 수 있는 유용한 대상이다. 그러나 워낙 수가 많고 연구인력이 부족해 학계에서도 충분히 면모를 밝히지 못한 실정이었다.
책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0년 넘게 축적해 온 자료를 집성한 것이다. 조선왕릉 석물의 기원, 재료, 제작공정, 신라~고려, 조선~대한제국에 이르는 방대한 시간적 편년에 따른 조각양식 등 미술사적 관점에서 왕릉석물의 변천을 통시대적으로 파악한 최초의 개론서다.
조선왕릉 문·무 석인상과 신도비(神道碑)·표석 등 비석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우리나라 왕릉조각의 시원을 이룬 신라왕릉 석인상의 특징, 발해와 중국의 요·금·송·원나라대 양식을 받아들여 독자적인 전통을 수립한 고려왕릉 조각의 대외교류 양상과 조선으로의 이행, 조선왕릉 석인조각과 능제 간 관계, 도상(圖像) 변화 등을 규명해 역사·예술적으로 중요한 작품을 선정했다. 한국왕릉 조각사 편년을 위한 기준을 제시했다.
신라왕릉 석인상 중 ‘서역인 이미지’로 잘 알려진 원성왕릉(괘릉) 무인상은 조선왕릉에 무석인상이 놓이게 된 기원이 됐다. 서역의 직접적 영향이 아닌 신장상(神將像) 등 당시 불교조각의 영향으로 후대에 제작됐다는 새롭게 밝혀진 사실도 담았다.
분단으로 인해 확인하기 힘든 북의 고려왕릉 석인상의 실제 모습을 상세히 소개했다. 조선왕릉 석인상·비석에 숨겨진 변화상을 문헌과 시각자료로 고찰했다. 조선왕실 조각의 성격이 절제미로 규정돼 온 것과 달리 개성과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누리집(www.nrich.go.kr,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에서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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