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오애리 기자 = 프랑스 야당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27일(현지시간) 결정된 프랑수아 피용(62)은 35년간의 정치 경력, 5차례의 장관 및 5년간의 총리 재임 등에서 보듯 프랑스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자동차경주로 유명한 사르테 지방의 르망 출신인 피용은 1981년 27살 나이에 프랑스 사상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발을 디뎠다. 열렬한 드골주의자인 부모의 영향으로, 그 역시 어렸을 때부터 보수 정치이념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역사학과 교수이고 어머니는 변호사였다. 젊은 시절부터 정치,경제,사회정책에 있어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지지해왔으며, 1992년 유로 도입에 반대해 마스트리트 조약 비준 투표 때 반대표를 던졌던 전력도 있다.
피용은 1993년 사회당-대중운동연합 동거 정부(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때 고등교육부 장관으로 처음 입각했으며, 2002년에는 니콜라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노동부 장관으로 입각, 사회당의 주장으로 도입된 주35시간 노동제에 따른 법적 정비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피용은 2004년 고등교육·연구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이듬해 내각을 떠나 고향인 사르테 대표로 상원의원이 됐으며, 그로부터 2년 뒤인 2007년 사르코지의 부름을 받고 총리로 다시 입각했다가 5년 뒤인 2012년 퇴임했다.
총리 재직시절 피용은 '기업이 돌아오는 프랑스 만들기'를 비롯해 공공질서 회복 등에 주력해 성과를 거뒀지만, 2010년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이 2차 내각 개편을 단행해 강경우파를 대거 임명하면서부터 두 사람 사이에 국정방향을 놓고 상당한 불화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용은 35년에 걸친 오랜 정치인 경력과 총리 및 5차례의 장관직에서 보듯 국정 경험이 풍부한 것이 장점이다. 다만, 지금까지는 '2인자 이미지'가 강했고, 따라서 과연 경제난과 테러 위험 등에 처한 프랑스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는 최고 지도자로서 리더십을 보여줄 것인가는 다소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피용은 열렬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친시장주의자이지만, 경제에 있어 국가의 역할 및 개입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대처의 정책과는 다소 결을 달리하고 있기도 하다.
피용은 이번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철저한(drastic) 자유시장 개혁 ▲이슬람과 이민자들에 대한 강경노선 ▲전통적 가족 가치의 존중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과 관계 개선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특히 경선 기간동안 '이슬람 전체주의'를 강력히 비난하면서 "프랑스는 다문화 국가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온건 보수 성향이었던 총리 재직 당시 보다는 더 강경 보수화된 셈이다.
외교 면에서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매우 친하고,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프랑스가 러시아와 손잡아야한다는 입장이다. 극단이슬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를 척결하려면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와도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동차 레이싱광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때 직업 자동차 레이서가 되려는 꿈을 가졌을 정도이다. 등산과 모형비행기 날리기도 좋아한다. 영국 출신 부인 페넬로페 클라크와의 사이에 5자녀를 두고 있다. 열렬한 가톨릭 신자이며, 낙태에 반대하지만 법적으로 낙태를 금지하려는 시도를 해본 적은 없다. 합법화된 동성결혼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다.
BBC에 따르면 피용은 과묵한 성품으로 유명하며, 수선스럽거나 사치스런 것을 극히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그의 친구이자 정치동료 중 한 명인 로즐린 바슐로는 BBC에 피용에 대해 "얼음 아래에 불을 품은" 사람으로 평가했다.
[email protected]
자동차경주로 유명한 사르테 지방의 르망 출신인 피용은 1981년 27살 나이에 프랑스 사상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발을 디뎠다. 열렬한 드골주의자인 부모의 영향으로, 그 역시 어렸을 때부터 보수 정치이념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역사학과 교수이고 어머니는 변호사였다. 젊은 시절부터 정치,경제,사회정책에 있어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지지해왔으며, 1992년 유로 도입에 반대해 마스트리트 조약 비준 투표 때 반대표를 던졌던 전력도 있다.
피용은 1993년 사회당-대중운동연합 동거 정부(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때 고등교육부 장관으로 처음 입각했으며, 2002년에는 니콜라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노동부 장관으로 입각, 사회당의 주장으로 도입된 주35시간 노동제에 따른 법적 정비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피용은 2004년 고등교육·연구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이듬해 내각을 떠나 고향인 사르테 대표로 상원의원이 됐으며, 그로부터 2년 뒤인 2007년 사르코지의 부름을 받고 총리로 다시 입각했다가 5년 뒤인 2012년 퇴임했다.
총리 재직시절 피용은 '기업이 돌아오는 프랑스 만들기'를 비롯해 공공질서 회복 등에 주력해 성과를 거뒀지만, 2010년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이 2차 내각 개편을 단행해 강경우파를 대거 임명하면서부터 두 사람 사이에 국정방향을 놓고 상당한 불화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용은 35년에 걸친 오랜 정치인 경력과 총리 및 5차례의 장관직에서 보듯 국정 경험이 풍부한 것이 장점이다. 다만, 지금까지는 '2인자 이미지'가 강했고, 따라서 과연 경제난과 테러 위험 등에 처한 프랑스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는 최고 지도자로서 리더십을 보여줄 것인가는 다소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피용은 열렬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친시장주의자이지만, 경제에 있어 국가의 역할 및 개입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대처의 정책과는 다소 결을 달리하고 있기도 하다.
피용은 이번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철저한(drastic) 자유시장 개혁 ▲이슬람과 이민자들에 대한 강경노선 ▲전통적 가족 가치의 존중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과 관계 개선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특히 경선 기간동안 '이슬람 전체주의'를 강력히 비난하면서 "프랑스는 다문화 국가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온건 보수 성향이었던 총리 재직 당시 보다는 더 강경 보수화된 셈이다.
외교 면에서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매우 친하고,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프랑스가 러시아와 손잡아야한다는 입장이다. 극단이슬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를 척결하려면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와도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동차 레이싱광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때 직업 자동차 레이서가 되려는 꿈을 가졌을 정도이다. 등산과 모형비행기 날리기도 좋아한다. 영국 출신 부인 페넬로페 클라크와의 사이에 5자녀를 두고 있다. 열렬한 가톨릭 신자이며, 낙태에 반대하지만 법적으로 낙태를 금지하려는 시도를 해본 적은 없다. 합법화된 동성결혼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다.
BBC에 따르면 피용은 과묵한 성품으로 유명하며, 수선스럽거나 사치스런 것을 극히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그의 친구이자 정치동료 중 한 명인 로즐린 바슐로는 BBC에 피용에 대해 "얼음 아래에 불을 품은" 사람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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