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김민기 기자 = 중소기업을 지원해주기 위해 만든 '공사용자재 직접구매제도'가 공기업 청사, 학교, 도로 등 공공공사에 들어가는 레미콘의 품질을 저하시킨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중소기업의 자재조달이 원활할 수 있도록 이 제도가 도입됐지만 오히려 중소 레미콘 업체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로 인해 세금 낭비는 물론, 공사의 안전성까지 위협 받는다는 지적이다.
24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공사용자재 직접구매제도 개선 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이 제도의 획일적 적용으로 인해 안전성 미확보, 품질 하락, 비효율적 공사 수행 등의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공사용자재 직접구매제도는 20억원 이상 공공 건설공사를 발주할 때 중소기업청에서 지정한 공사용자재 품목의 경우 발주기관에서 직접 구매해서 현장에 공급하는 제도다.
2006년 중소기업을 지원·육성한다는 취지에서 시행됐다. 시행 당시 87개 품목에서 올해 127개 품목으로 확대됐다.
특히 레미콘의 경우 공사 현장에서 문제점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조달청의 공사용 자재 기관별 공급 현황을 살펴보면 전체 127개 품목 중 계약(납품)금액 상위 2개의 품목인 레미콘과 아스팔트콘크리트가 전체 계약금액의 46.2%을 차지하고 있다. 금액으로는 연간 약 7조4000억원에 달한다.
레미콘은 타설 시간을 맞추는 게 생명이다. 이에 건설 현장의 최적거리에 있는 기업을 선정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관수 물량이 할당 돼 있다보니 거리가 멀리 떨어져있는 중소기업 레미콘을 사용해야만 한다.
실제 정부가 발주한 한 도로공사의 경우 해당 공사현장에서 15분 거리에 대형 레미콘 기업이 있음에도 이 제도로 인해 이 회사의 레미콘을 사용할 수 없었다.
발주기관이 중소 업체 5, 6개 정도 지정해 현장에서 15분 거리, 20분 거리, 40분 거리 등 다양하게 물량을 분산시켰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레미콘 타설 규정상 출하 후 2시간 이내, 하절기에는 1시간 30분 이내에 타설을 해야 함에도 타설 임계시간이 다 돼서야 레미콘이 도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면서 "이로 인해 레미콘 품질이 하락되면 결국 안전성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최근 분양 시장 호황으로 아파트 민간 공사가 늘어남에 따라 중소 레미콘 기업들이 관급 물량보다 사급 물량에 대한 계약 이행을 우선시해 공공 현장의 레미콘 납품이 지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로 인해 공사 장비, 인력 등을 철수시켜야만 하는 등 공사비의 증가와 공기 지연이 불가피하게 발생해 세금 낭비 문제도 심각하다.
레미콘 업계 관계자는 "레미콘의 경우 오전 9시 이전에는 공사현장에 도착해야 공사 장비나 인력을 돌릴 수 있다"면서 "하지만 중소 레미콘 업체들이 민간 공사에 먼저 물량을 주고 관급 공사는 오후가 넘어서야 물량을 주다보니 공사 스케줄이 다음날로 밀리고, 장비도 또 다시 대여해야하고 인력비도 추가로 든다"고 밝혔다.
이어 "관급 공사의 경우 어차피 물량이 할당돼 있으니 오전에 공급하나 오후에 공급하나 크게 손해볼 것이 없다"면서 "하지만 민간 물량의 경우 이익도 높고 공급을 빠르게 하지 않으면 거래가 끊기기 때문에 이익이 낮은 관급 물량은 우선 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부산 지역은 아파트 공사로 인해 레미콘 물량이 증가함에 따라 관급자재는 시공사가 원하는 날짜에 타설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고속도로 공사의 경우 인근 현장에 소규모 레미콘 공장을 설립해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상주하는 직원도 1~2명밖에 되지 않고, 레미콘 믹서트럭도 부족해 적기에 반입이 안 되는 실정이다.
현장의 돌관 작업이나 부득이하게 휴일 작업을 할 경우 레미콘 기업의 직원들이 쉬어야 한다는 이유로 공급을 해주지 않거나 길이 좁거나 경사가 조금이라도 비탈지면 추가 비용을 내야만 공급해주는 경우도 있다.
한편 업계에서는 공정한 원하도급 관계나 적정한 자재 구매 등을 유도하는 방식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유위성 건산연 연구위원은 "레미콘의 경우 조달이 잘되지 않으면 공정, 품질, 안전 모두에 영향이 있다"면서 "레미콘의 경우 적정성 진단을 재실시하고 부분적 사급자재(10∼20%) 전환 장치도 마련해야한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