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은 계급에 따라 차별 적용…학생, 가수, 미화원도 제한
박선숙 "가입 불가 직업군 분류 인권침해 소지 있어"
【서울=뉴시스】김지은 기자 = 생명보험사들이 특정 직업군에 대해 보험 가입을 제한하는 영업 행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위험직종의 기준이 뚜렷하지 않을 뿐더러 무직 남성과 군인, 거리미화원 등을 무조건 보험 가입 불가 직업군으로 분류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며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3일 국민의당 박선숙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 주요 생보사들은 60세 이하 남성 무직자와 건설현장 근로자, 배달원(운반원)의 실손형 보험상품 가입을 거부했다.
굴과 해조류 양식원은 삼성생명 등의 실손보험에 가입할 수 없었고 어업 종사자는 대부분의 생명보험사에서 실손형 보험 가입을 제한했다.
민속신앙 종사원(무속인)은 농협생명, KDB생명, 교보생명, 알리안츠 생명, 동부생명, 흥국생명 등 상당수 보험사의 실손형 상품에 가입할 수 없고, 알리안츠생명은 점술가(역술인)의 실손보험 가입을 불허했다.
특수병과 군인은 계급에 따라 가입 기준을 차별적으로 적용했다.
교보생명, 현대라이프생명 등 7개사는 소령 이상 장교에 한해 상품 가입을 허용하고 영관급 이하의 특수병과 군인은 실손형 보험에 가입할 수 없도록 했다. KDB생명은 가입 불가 직업군에 '하사관과 준위'로 기재했다.
이밖에 라이나생명과 동부생명 등은 대중업소 악사, 대중업소 무용수 등의 가입을 불허했고 알리안츠생명은 가입불가 직업군에 '가수'를 포함했다.
실손보험뿐 아니라 재해·상해보험 등 보장성상품 대다수는 가입 제한이 존재했다.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은 30세 이상 남성에 한해 학원생, 재수생, 고시준비생의 가입도 제한했고 청소원과 쓰레기 수거원, 거리 미화원, 재활용품 수거원은 상해보험에 가입할 수 없도록 했다.
학생, 주부는 BNP파리바카디프생명의 재해입원보장 보험(특약)에 가입할 수 없었다.
모든 종류의 보험에 가입을 할 수 없는 직업군을 특정한 보험사도 있었다. KDB 생명은 무직자,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의 보험가입을 거절했다. 현대라이프는 오토바이, 자동차 경주선수와 보험설계사, 중개인 등의 가입을 받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 등 보장성 상품 대다수는 나이와 성별에 따른 위험성만을 따져 보험료를 차등 부과한다"며 "위험한 직종도 모두 받아들이면 가입자들의 보험료가 올라갈 수 있어 각 회사별로 리스크 관리를 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생보사가 가입 제한을 둔 것은 아니었다. 하나생명, 신한생명보험, KB생명, AIA생명, PCA생명, 메트라이프생명, IBK연금보험 등은 가입불가 직원군을 분류하지 않았다.
또 생보사와 달리 손해보험사는 상품 가입을 제한하는 직업군을 규정하지 않는 회사가 많았다. 메리츠화재, 현대화재, 삼성화재, 더케이손해보험, 동부화재 등 5개 손해보험사는 직업과 상관없이 보험 가입이 가능했다. 나머지 손해보험사들 역시 생명보험사들과 달리 가입 불가 직군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
같은 계열회사이면서도 삼성생명은 남자무직 등 39개 직업군에 대해 일부 보험상품 가입을 불허하고 있지만 삼성화재는 모든 보험상품에 대해 보험가입 불가 직업군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의원은 "생명보험사 자체적으로 특별히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지 타당성을 입증해야 하고 위험성이 있다면 그에 대해 보험료에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며 "합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보험 가입 거부는 명백한 차별로 인권침해의 소지는 없는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소비자연맹 이기욱 사무처장은 "보험은 서로 부담을 나누는 공적인 측면이 크기 때문에 소비자를 골라 가입시키는 것은 보험 논리 및 취지에 맞지 않다"며 "언더라이팅(보험심사)을 통해 위험성이 높은 직업군은 보험료를 더 받거나 보장 금액을 줄이는 형태로 받아들이는 것이 합당하다"고 지적했다.
kje1321@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