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양주=뉴시스】김석원 음향감독(블루캡 대표)이 영화 '아가씨' 사운드 작업 후기를 말하고 있다. 김 감독은 "음향감독으로서 상상하고 시도할 영역이 많아 이번 작품에 재밌게 일했다"며 "소리 자체를 잘 만드는 것은 의외로 중요하지 않다. 그 소리가 해당 장면과 얼마나 잘 어우러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첫 사운드 컴퓨터 기술 도입…'영화음향인협회' 협회장 올라
"소리 만드는 것보다 작품·장면 어우러짐이 더 중요하고 어려워"
"정당한 보상과 표준계약서 도입 시급…중국에 시장뺏길까 우려"
【남양주=뉴시스】장윤희 기자 = #영화 '아가씨'의 한 장면. 아가씨 히데코(김민희)가 뾰족한 어금니를 불편해하자 하녀 숙희(김태리)가 은골무를 손에 낀 채 아가씨 치아의 뾰족한 부분을 갈아준다. 시간이 갈수록 잔잔하게 깔리던 배경음악은 멈추고 '스걱스걱' 치아 가는 소리와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남는다. 아가씨와 숙희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만일 이 장면에 사운드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에 '소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작품의 완성도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 처럼 영화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사운드는 치밀한 계산과 고도의 IT기술로 빚어진 산물이다. 하지만 이같은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 영화 사운드의 개척자로 불리는 김석원 음향감독 겸 블루캡 스튜디오 대표를 지난 18일 남양주영화종합촬영소에서 만났다. 김 감독은 1980~90년대 '칠성사이다' '맛동산' 등의 광고음악으로 유명세를 떨쳤지만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싶어 1995년 박중훈 주연의 '돈을 갖고 튀어라'로 영화 음향감독이 됐다.
'쉬리' '건축학개론' '아가씨' 등 한국 영화 수백여 편이 그의 손을 거쳤다. 중국 영화제작사의 러브콜도 잇따른다. 김 감독은 우리나라에 컴퓨터 사운드 기술을 처음으로 소개한 인물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영화 음향을 배우고 싶어 사비를 털며 미국 헐리우드에 수차례 다녀왔다. 헐리우드는 자본과 인력이 넉넉해 거대한 콘솔(버튼·스틱형 조정 장치)로 사운드 편집을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그때 음향 소프트웨어 '아비드 프로툴' 초기 버전이 눈에 들어왔고 '컴퓨터'란 이름조차 생소하던 1990년대부터 사운드를 컴퓨터로 편집했다. 컴퓨터는 편집 수고를 크게 덜어줬다. 당시 헐리우드에서도 '그걸로 할 수 있겠어?'란 반응이었지만 지금은 이 기술이 전세계적으로 널리 쓰인다"고 말했다.
"소리 만드는 것보다 작품·장면 어우러짐이 더 중요하고 어려워"
"정당한 보상과 표준계약서 도입 시급…중국에 시장뺏길까 우려"
【남양주=뉴시스】장윤희 기자 = #영화 '아가씨'의 한 장면. 아가씨 히데코(김민희)가 뾰족한 어금니를 불편해하자 하녀 숙희(김태리)가 은골무를 손에 낀 채 아가씨 치아의 뾰족한 부분을 갈아준다. 시간이 갈수록 잔잔하게 깔리던 배경음악은 멈추고 '스걱스걱' 치아 가는 소리와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남는다. 아가씨와 숙희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만일 이 장면에 사운드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에 '소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작품의 완성도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 처럼 영화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사운드는 치밀한 계산과 고도의 IT기술로 빚어진 산물이다. 하지만 이같은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 영화 사운드의 개척자로 불리는 김석원 음향감독 겸 블루캡 스튜디오 대표를 지난 18일 남양주영화종합촬영소에서 만났다. 김 감독은 1980~90년대 '칠성사이다' '맛동산' 등의 광고음악으로 유명세를 떨쳤지만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싶어 1995년 박중훈 주연의 '돈을 갖고 튀어라'로 영화 음향감독이 됐다.
'쉬리' '건축학개론' '아가씨' 등 한국 영화 수백여 편이 그의 손을 거쳤다. 중국 영화제작사의 러브콜도 잇따른다. 김 감독은 우리나라에 컴퓨터 사운드 기술을 처음으로 소개한 인물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영화 음향을 배우고 싶어 사비를 털며 미국 헐리우드에 수차례 다녀왔다. 헐리우드는 자본과 인력이 넉넉해 거대한 콘솔(버튼·스틱형 조정 장치)로 사운드 편집을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그때 음향 소프트웨어 '아비드 프로툴' 초기 버전이 눈에 들어왔고 '컴퓨터'란 이름조차 생소하던 1990년대부터 사운드를 컴퓨터로 편집했다. 컴퓨터는 편집 수고를 크게 덜어줬다. 당시 헐리우드에서도 '그걸로 할 수 있겠어?'란 반응이었지만 지금은 이 기술이 전세계적으로 널리 쓰인다"고 말했다.

【남양주=뉴시스】김석원 감독이 '아가씨'에서 가장 공 들인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장면은 러닝타임이 2분에 달하는 꽤 긴 시간인데 중간에 모든 사운드가 사라지면서 아가씨와 숙희의 아찔한 긴장감을 드러내준다.
한양대 공대 78학번으로 학술적 지식은 있지만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다루는 일은 녹록하지 않았다. 김 감독은 인터넷도 없던 시절 영어 매뉴얼을 해석하고 각종 시행착오를 겪으며 영화 사운드에 디지털 바람을 불어넣었다.
사운드 편집은 여러 단계로 이뤄진다. 소리 원본 데이터는 직접 만들거나 여러가지 기술로 빚어낸다. 주인공 대사가 잘 들리게 잡음을 지우는 일도 중요하다. 현장 녹음 상태가 좋지 않거나 배우의 대사 전달력이 또렷해야할 경우에는 후시 녹음도 진행한다. 대사가 잘 들리게 또는 긴장감 완급 조절을 위해 사운드 톤을 조정하는 일도 필수다.
김 감독은 영화 '아가씨' 첫부분을 직접 시연해주었다. 일제시대 주택가에 비가 내리는 한 장면에만 180여 개의 소리 데이터가 쓰였다. 비가 내리는 장면 1초에도 빗소리 수십개가 입혀진 점이 눈에 띄었다.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 흙탕물에 떨어지는 빗소리, 처마 끝에 고였다 흘러내는 빗소리, 멀리서 들리는 빗소리 등 빗소리의 섬세함이 풍성하게 어우러졌다.
숙희가 한밤에 아가씨 저택에 방문하는 순간에도 수백개의 사운드 데이터가가 끊임없이 움직였다. 풀 벌레소리,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 소리, 부엉이 울음소리, 게다(일본식 전통 신발) 발걸음 소리 등이다. 김 감독은 "음향에서 발걸음 소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발자국 소리는 촬영 현장에서 잘 들리지 않는다. 카메라 돌아가는 소리 등에 묻혀서 거의 안 들린다"며 "그런데 발자국 소리가 영화에 드러나지 않으면 배우가 유령처럼 보인다. 배우가 신은 신발, 바닥 재질, 몸무게까지 계산해서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소리를 만든다"고 귀띔했다.
이어 "소리 자체를 잘 만드는 것은 의외로 중요하지 않다. 그 소리가 해당 장면과 얼마나 잘 어우러지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지금도 '그때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란 상상력이 계속 발휘된다"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음향작업을 하는 공간은 영화관처럼 생겼다. 편집 작업을 할 때는 실제 영화관처럼 모든 불을 끄고 스크린과 소리에만 집중한다. 공포영화를 작업할 때 무섭지는 않을까.
김 감독은 "캄캄한 작업실에서 혼자 무서운 장면을 보면 처음에는 놀라지만 자꾸보면 덤덤해진다"며 "매번 작업할 때마다 놀랄 수는 없지 않느냐"며 웃었다.
사운드 편집은 여러 단계로 이뤄진다. 소리 원본 데이터는 직접 만들거나 여러가지 기술로 빚어낸다. 주인공 대사가 잘 들리게 잡음을 지우는 일도 중요하다. 현장 녹음 상태가 좋지 않거나 배우의 대사 전달력이 또렷해야할 경우에는 후시 녹음도 진행한다. 대사가 잘 들리게 또는 긴장감 완급 조절을 위해 사운드 톤을 조정하는 일도 필수다.
김 감독은 영화 '아가씨' 첫부분을 직접 시연해주었다. 일제시대 주택가에 비가 내리는 한 장면에만 180여 개의 소리 데이터가 쓰였다. 비가 내리는 장면 1초에도 빗소리 수십개가 입혀진 점이 눈에 띄었다.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 흙탕물에 떨어지는 빗소리, 처마 끝에 고였다 흘러내는 빗소리, 멀리서 들리는 빗소리 등 빗소리의 섬세함이 풍성하게 어우러졌다.
숙희가 한밤에 아가씨 저택에 방문하는 순간에도 수백개의 사운드 데이터가가 끊임없이 움직였다. 풀 벌레소리,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 소리, 부엉이 울음소리, 게다(일본식 전통 신발) 발걸음 소리 등이다. 김 감독은 "음향에서 발걸음 소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발자국 소리는 촬영 현장에서 잘 들리지 않는다. 카메라 돌아가는 소리 등에 묻혀서 거의 안 들린다"며 "그런데 발자국 소리가 영화에 드러나지 않으면 배우가 유령처럼 보인다. 배우가 신은 신발, 바닥 재질, 몸무게까지 계산해서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소리를 만든다"고 귀띔했다.
이어 "소리 자체를 잘 만드는 것은 의외로 중요하지 않다. 그 소리가 해당 장면과 얼마나 잘 어우러지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지금도 '그때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란 상상력이 계속 발휘된다"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음향작업을 하는 공간은 영화관처럼 생겼다. 편집 작업을 할 때는 실제 영화관처럼 모든 불을 끄고 스크린과 소리에만 집중한다. 공포영화를 작업할 때 무섭지는 않을까.
김 감독은 "캄캄한 작업실에서 혼자 무서운 장면을 보면 처음에는 놀라지만 자꾸보면 덤덤해진다"며 "매번 작업할 때마다 놀랄 수는 없지 않느냐"며 웃었다.

【서울=뉴시스】영화 '아가씨'의 한장면. 김석원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박찬욱 감독과 매 작품을 함께 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은 "김 감독과 일하면서 영화 사운드가 영상과 또다른 재미가 있음을 알았다"고 밝힌 바 있다.(사진=CJ E&M)
한편 김 감독은 영화관처럼 꾸며놓은 스튜디오가 국내 몇 안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 감독은 "가장 이상적인 음향 스튜디오는 대형 영화관 수준의 작업실을 4~5개 갖춘 곳"이라며 "영화에 입힌 사운드가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평가하고 싶어도 물리적 여건이 따라가주질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사운드 종사자에 대한 업계의 저평가와 최근 2년사이 관행처럼 굳어져버린 '블라인드 시사회' 탓이 크다. 블라인드 시사회는 정식 개봉하기 전에 영화 투자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상영회다. 가편집된 촬영물로 시사회를 하는데 적으면 1~2회, 많으면 5~6회도 한다.
블라인드 시사회 횟수가 늘어날수록 사운드 작업량이 많아지지만 계약 단가는 오르지 않는다. 영화사에서 계약을 할때 단발성으로 계약해버리기 때문이다. 영화 수십편을 만들어도 계약료는 한회 금액만 받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다른 영화직군에는 표준 공정계약서가 도입됐지만 사운드 종사자는 표준계약서 개념이 정착되지 않아 더욱 문제가 크다고 김 감독은 지적한다. 사운드 경력 10년차인데도 연봉이 3000만원이 안 되는 사례도 있다. 김 감독은 최근 뜻이 맞는 영화 음향인들과 함께 '한국영화음향인협회'를 만들었다. 후배들은 김 감독을 협회장으로 추대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이화여대 대학원 등에 출강하고 있는 김 감독은 " 학생들에게 영화가 진짜 좋거나 1등할 자신 없으면 음향감독을 하지 말라고 한다"며 "영화판 현실에 환멸을 느낀 학생들은 대부분 게임 사운드로 빠진다. 게임회사에 들어가면 처우가 영화계보다는 좋지 않냐"고 말했다.
또 "한국 영화 사운드 종사자에 대한 불공정 관행이 개선돼야 한국 영화도 발전한다. 최근 많은 사운드 스태프들이 영화판을 떠났다. 이러다가는 영화 사운드를 중국과 헐리우드에 외주를 주는 날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email protected]
김 감독은 "가장 이상적인 음향 스튜디오는 대형 영화관 수준의 작업실을 4~5개 갖춘 곳"이라며 "영화에 입힌 사운드가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평가하고 싶어도 물리적 여건이 따라가주질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사운드 종사자에 대한 업계의 저평가와 최근 2년사이 관행처럼 굳어져버린 '블라인드 시사회' 탓이 크다. 블라인드 시사회는 정식 개봉하기 전에 영화 투자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상영회다. 가편집된 촬영물로 시사회를 하는데 적으면 1~2회, 많으면 5~6회도 한다.
블라인드 시사회 횟수가 늘어날수록 사운드 작업량이 많아지지만 계약 단가는 오르지 않는다. 영화사에서 계약을 할때 단발성으로 계약해버리기 때문이다. 영화 수십편을 만들어도 계약료는 한회 금액만 받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다른 영화직군에는 표준 공정계약서가 도입됐지만 사운드 종사자는 표준계약서 개념이 정착되지 않아 더욱 문제가 크다고 김 감독은 지적한다. 사운드 경력 10년차인데도 연봉이 3000만원이 안 되는 사례도 있다. 김 감독은 최근 뜻이 맞는 영화 음향인들과 함께 '한국영화음향인협회'를 만들었다. 후배들은 김 감독을 협회장으로 추대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이화여대 대학원 등에 출강하고 있는 김 감독은 " 학생들에게 영화가 진짜 좋거나 1등할 자신 없으면 음향감독을 하지 말라고 한다"며 "영화판 현실에 환멸을 느낀 학생들은 대부분 게임 사운드로 빠진다. 게임회사에 들어가면 처우가 영화계보다는 좋지 않냐"고 말했다.
또 "한국 영화 사운드 종사자에 대한 불공정 관행이 개선돼야 한국 영화도 발전한다. 최근 많은 사운드 스태프들이 영화판을 떠났다. 이러다가는 영화 사운드를 중국과 헐리우드에 외주를 주는 날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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