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장세영 기자 = 한국 여자마라톤 최고기록 보유자인 권은주 선수가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아식스 직영점에서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아식스 코리아가 주최하고 오는 6월 21일 프랑스 몽블랑에서 진행되는 극한 레이스 '아식스 비트 더 선 (ASICS Beat the Sun)'에 참가 관련해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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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윤희 기자 = 세계 육상의 변방인 한국에서도 마라톤에 대한 기억은 애틋하다.
멀리는 故 손기정 선생의 가슴 아픈 올림픽이 있었고, 1990년대에는 황영조(46)와 이봉주(46) 등이 투혼의 레이스로 온국민의 시선을 아스팔트 위로 끌어 모았다. 1997년 혜성처럼 등장해 한국 여자 신기록을 수립한 권은주(39)의 이름도 빠질 수 없다.
권은주는 1997년 10월 조선일보춘천국제마라톤대회에서 2시간26분12로 결승선을 통과해 오미자가 1년 먼저 작성한 2분30초09의 한국 기록을 새로 썼다. 이후 19년이 흘렀지만, 권은주는 여전히 42.195㎞를 가장 빨리 달린 한국 여성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아식스 강남직영점에서 한국 마라톤의 전설을 만났다.
작달마한 체구에도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그대로였다.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선수가 아니라 '감독'으로 달린다는 점이다.
"회사원과 똑같다"고 스스로를 표현한 그는 지난해 7월부터 아식스 러닝클럽의 지도자로 제2의 달리기 인생을 살고있다.
◇"기록 보유가 원망스럽기도"…부상 고난 딛고 17년 선수생활
권은주는 "나는 최고의 선수가 아니었다"고 했다. 고교시절 동기생들 사이에서도 3위권에 그쳤다. 1995 코오롱육상팀에 입단했지만 소위 말하는 '간판 선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1997년 춘천마라톤을 기점으로 단번에 한국 마라톤의 정점에 올랐다. 그는 "우리 팀에는 그 유명한 황영조와 이봉주가 있었다. 온통 그쪽으로 쏠리던 관심이 갑자기 나한테로 와서 굉장히 얼떨떨했다"고 돌아봤다.
영광의 순간이었지만 묘령의 선수는 온전히 기뻐하지 못했다. "당시 기록은 여자 월드 랭킹 톱 10에도 들어 이슈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게 내 기록이라고 인정해줄까 걱정이 됐다"며 "마음껏 기뻐해도 됐는데, 그땐 그걸 몰랐다"고 회상했다.
빛나는 타이틀은 부담의 다른 이름이었다. 선수생활 내내 자신의 기록과, 또 주변의 시선과 싸워야했다. 권은주는 "부담과 스트레스가 컸다. 특히 부상 이후 그냥 다시 뛰는 것이 행복했는데 '기록 경신'이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한국 기록을 가진 것 자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부상으로 인한 고난까지 겹쳤다. "인정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쉴틈 없이 하드 트레이닝을 계속했다"는 그는 "1997년 동계훈련 때는 발이 부어서 신발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가 됐다. 족저근막염이었다. 결국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과 보스턴마라톤을 포기해야했다.
일본을 찾아 수술까지 받았지만 부상 공백은 생각보다 길었다. 2년 뒤에야 1999년 중앙일보하프마라톤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00년 춘천마라톤에서 2시간31분33초의 기록으로 국내 최정상 자리를 탈환했다. 권은주가 기억하는 가장 기쁜 순간이다.
멀리는 故 손기정 선생의 가슴 아픈 올림픽이 있었고, 1990년대에는 황영조(46)와 이봉주(46) 등이 투혼의 레이스로 온국민의 시선을 아스팔트 위로 끌어 모았다. 1997년 혜성처럼 등장해 한국 여자 신기록을 수립한 권은주(39)의 이름도 빠질 수 없다.
권은주는 1997년 10월 조선일보춘천국제마라톤대회에서 2시간26분12로 결승선을 통과해 오미자가 1년 먼저 작성한 2분30초09의 한국 기록을 새로 썼다. 이후 19년이 흘렀지만, 권은주는 여전히 42.195㎞를 가장 빨리 달린 한국 여성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아식스 강남직영점에서 한국 마라톤의 전설을 만났다.
작달마한 체구에도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그대로였다.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선수가 아니라 '감독'으로 달린다는 점이다.
"회사원과 똑같다"고 스스로를 표현한 그는 지난해 7월부터 아식스 러닝클럽의 지도자로 제2의 달리기 인생을 살고있다.
◇"기록 보유가 원망스럽기도"…부상 고난 딛고 17년 선수생활
권은주는 "나는 최고의 선수가 아니었다"고 했다. 고교시절 동기생들 사이에서도 3위권에 그쳤다. 1995 코오롱육상팀에 입단했지만 소위 말하는 '간판 선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1997년 춘천마라톤을 기점으로 단번에 한국 마라톤의 정점에 올랐다. 그는 "우리 팀에는 그 유명한 황영조와 이봉주가 있었다. 온통 그쪽으로 쏠리던 관심이 갑자기 나한테로 와서 굉장히 얼떨떨했다"고 돌아봤다.
영광의 순간이었지만 묘령의 선수는 온전히 기뻐하지 못했다. "당시 기록은 여자 월드 랭킹 톱 10에도 들어 이슈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게 내 기록이라고 인정해줄까 걱정이 됐다"며 "마음껏 기뻐해도 됐는데, 그땐 그걸 몰랐다"고 회상했다.
빛나는 타이틀은 부담의 다른 이름이었다. 선수생활 내내 자신의 기록과, 또 주변의 시선과 싸워야했다. 권은주는 "부담과 스트레스가 컸다. 특히 부상 이후 그냥 다시 뛰는 것이 행복했는데 '기록 경신'이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한국 기록을 가진 것 자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부상으로 인한 고난까지 겹쳤다. "인정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쉴틈 없이 하드 트레이닝을 계속했다"는 그는 "1997년 동계훈련 때는 발이 부어서 신발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가 됐다. 족저근막염이었다. 결국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과 보스턴마라톤을 포기해야했다.
일본을 찾아 수술까지 받았지만 부상 공백은 생각보다 길었다. 2년 뒤에야 1999년 중앙일보하프마라톤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00년 춘천마라톤에서 2시간31분33초의 기록으로 국내 최정상 자리를 탈환했다. 권은주가 기억하는 가장 기쁜 순간이다.

【서울=뉴시스】장세영 기자 = 한국 여자마라톤 최고기록 보유자인 권은주 선수가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아식스 직영점에서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아식스 코리아가 주최하고 오는 6월 21일 프랑스 몽블랑에서 진행되는 극한 레이스 '아식스 비트 더 선 (ASICS Beat the Sun)'에 참가 관련해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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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주는 "2000년 대회를 준비할 때 컨디션이 정말 좋지 않았다. 한국 기록을 가진 사람이 후배들한테 질까봐 부끄러움도 있었다"며 "그런데도 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매일 행복하다 일기를 쓰면서, 마음을 비우고 뛰었는데 우승을 해서 정말 행복했다"고 했다.
반면, 가장 후회되는 순간으로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꼽았다. 당시 부상을 안고 레이스에 나섰던 권은주는 40㎞ 지점에서 발을 멈춰야했다. 그는 "선수들은 100%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돌아보면 아쉽다. 더 잘했을 것이라는 생각보다 포기했기 때문이다"며 "나라를 대표해서 나간 것이었는데, 지나고 나서 보면 가장 부끄러운 기억"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부상과의 사투가 이어졌으나 권은주는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3년여 공백기를 가진 그는 2006년 제주시청 소속으로 인천국제하프마라톤에서 국내 정상 자리를 꿰차며 부활했다. 2011년까지 인천시청, 함양군청 등에서 활약했다.
◇선생님이 되고 싶던 소녀…지도자로 제2막
다사다난했던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뒤 현재는 아식스러닝클럽에서 아마추어 러너들을 이끌고 있다. 지도자로 달리기 인생 2막을 시작한 셈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권은주는 제주시청 시절 동국대 교육대학원에서 학업을 병행했다. 2012년, 초등학교에서 육상 꿈나무들을 가르치며 지도자 인생의 길을 열었다.
하지만 엘리트체육의 현장은 그리던 꿈과 거리가 있었다. 그는 "즐거운 운동을 가르치고 싶었다. 이모처럼 아이들을 챙기고 싶었는데, 성적 때문에 운동을 시켜야하는 상황이 있었다. 일부 코치들이 성적을 위해 아이들이 하지 말아야할 운동까지 시키는 것을 보고 속상했다"고 돌아봤다.
결국 학교 코치직에서 물러난 권은주는 생활체육 쪽으로 눈을 돌렸다. 아식스 러닝클럽 감독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30~40명의 아마추어 러너들과 함께 서울시내를 달린다.
그는 "엘리트 선수 출신이 이곳에 있는 것이 회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성적에 매몰되지 않는 즐거움이 있다"며 "클럽 회원들 덕분에 오히려 내가 에너지를 얻고 있어 늘 행복하다"고 활짝 웃었다.
원망스럽기까지 했던 '한국 신기록 보유자'란 타이틀도 기분 좋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권은주는 "선수생활 때 부담스럽기만 하던 그 말이, 이제는 함께 달리는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좋은 매개가 되더라"며 "물론 기록은 깨지면 그만이다. 기록이 깨져도 권은주는 없어지지 않는다. 여전히 알차고 많은 것을 가진 권은주가 되자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도전은 계속된다
"선수 때처럼 숨차게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문득한다"는 권은주는 지난 16일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는 21일 프랑스 몽블랑에서 열리는 극한 레이스 '비트 더 선(Beat the Sun)'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반면, 가장 후회되는 순간으로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꼽았다. 당시 부상을 안고 레이스에 나섰던 권은주는 40㎞ 지점에서 발을 멈춰야했다. 그는 "선수들은 100%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돌아보면 아쉽다. 더 잘했을 것이라는 생각보다 포기했기 때문이다"며 "나라를 대표해서 나간 것이었는데, 지나고 나서 보면 가장 부끄러운 기억"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부상과의 사투가 이어졌으나 권은주는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3년여 공백기를 가진 그는 2006년 제주시청 소속으로 인천국제하프마라톤에서 국내 정상 자리를 꿰차며 부활했다. 2011년까지 인천시청, 함양군청 등에서 활약했다.
◇선생님이 되고 싶던 소녀…지도자로 제2막
다사다난했던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뒤 현재는 아식스러닝클럽에서 아마추어 러너들을 이끌고 있다. 지도자로 달리기 인생 2막을 시작한 셈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권은주는 제주시청 시절 동국대 교육대학원에서 학업을 병행했다. 2012년, 초등학교에서 육상 꿈나무들을 가르치며 지도자 인생의 길을 열었다.
하지만 엘리트체육의 현장은 그리던 꿈과 거리가 있었다. 그는 "즐거운 운동을 가르치고 싶었다. 이모처럼 아이들을 챙기고 싶었는데, 성적 때문에 운동을 시켜야하는 상황이 있었다. 일부 코치들이 성적을 위해 아이들이 하지 말아야할 운동까지 시키는 것을 보고 속상했다"고 돌아봤다.
결국 학교 코치직에서 물러난 권은주는 생활체육 쪽으로 눈을 돌렸다. 아식스 러닝클럽 감독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30~40명의 아마추어 러너들과 함께 서울시내를 달린다.
그는 "엘리트 선수 출신이 이곳에 있는 것이 회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성적에 매몰되지 않는 즐거움이 있다"며 "클럽 회원들 덕분에 오히려 내가 에너지를 얻고 있어 늘 행복하다"고 활짝 웃었다.
원망스럽기까지 했던 '한국 신기록 보유자'란 타이틀도 기분 좋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권은주는 "선수생활 때 부담스럽기만 하던 그 말이, 이제는 함께 달리는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좋은 매개가 되더라"며 "물론 기록은 깨지면 그만이다. 기록이 깨져도 권은주는 없어지지 않는다. 여전히 알차고 많은 것을 가진 권은주가 되자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도전은 계속된다
"선수 때처럼 숨차게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문득한다"는 권은주는 지난 16일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는 21일 프랑스 몽블랑에서 열리는 극한 레이스 '비트 더 선(Beat the Sun)'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서울=뉴시스】장세영 기자 = 한국 여자마라톤 최고기록 보유자인 권은주 선수가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아식스 직영점에서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아식스 코리아가 주최하고 오는 6월 21일 프랑스 몽블랑에서 진행되는 극한 레이스 '아식스 비트 더 선 (ASICS Beat the Sun)'에 참가 관련해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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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아식스가 주최하는 이 대회는 지구상 가장 험난한 레이스 중 하나로 꼽힌다. 24개국에서 프로 러너 1명과 아마추어 러너 1명씩 모두 48명이 참가한다. 6명씩 한 조를 이룬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세 나라에 걸쳐 약 150㎞의 다중 산악 지형 코스를 15시간여 안에 완주해야한다.
한국 프로 러너 대표로 출전하는 권은주는 "해가 가장 긴날, 해가지기 전에 들어와야하는 레이스다"며 "라이언 홀과 디나 캐스터(이상 미국) 등 은퇴 후 나처럼 러닝을 즐기는 선수들이 참가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새로운 도전이다. 설레기도 하지만 불안감이 더 많다. 100%의 컨디션으로 뛴 지 너무 오랜시간이 지나 그 느낌이 생각이 잘 안난다"며 "얼마나 트레이닝이 돼야 잘 뛸 수 있는지 너무 잘 아니까 앞서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참가 의지는 확고하다. 지도자로 제2의 달리기 인생을 보내고 있는 현재를 위해서다.
권은주는 "내가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도 계속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가르치는 내가 아무 도전 없이 이 상태에 안주하고 있으면, 뭐 하나 자신있게 가르치지 못할 것이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감을 쌓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극한 레이스는 처음이다. 그럼에도 "경험은 없지만 선수때 항상 극한을 달렸다. 일부러 고지 훈련을 가기도 했다"면서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에너지를 나누는 것만 해도 좋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아울러 "한국 나이로 불혹이다. 이 시기에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다"며 "이런 도전을 통해 나의 또 다른 10년을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40년 가까이 달려왔지만 달리기에 대한 애정은 끝이 없다.
권은주는 "달리기는 내가 살아가는데 가장 큰 에너지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못 뛴다고 생각하면 너무 속상하다"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같이 달리고 싶다"고 했다.
또 "두 다리가 움직이는 한 오랜 시간 뛰었으면 한다. 다리에 힘이 빠져 할머니가 될 때까지 러닝하는 사람들 안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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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 러너 대표로 출전하는 권은주는 "해가 가장 긴날, 해가지기 전에 들어와야하는 레이스다"며 "라이언 홀과 디나 캐스터(이상 미국) 등 은퇴 후 나처럼 러닝을 즐기는 선수들이 참가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새로운 도전이다. 설레기도 하지만 불안감이 더 많다. 100%의 컨디션으로 뛴 지 너무 오랜시간이 지나 그 느낌이 생각이 잘 안난다"며 "얼마나 트레이닝이 돼야 잘 뛸 수 있는지 너무 잘 아니까 앞서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참가 의지는 확고하다. 지도자로 제2의 달리기 인생을 보내고 있는 현재를 위해서다.
권은주는 "내가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도 계속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가르치는 내가 아무 도전 없이 이 상태에 안주하고 있으면, 뭐 하나 자신있게 가르치지 못할 것이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감을 쌓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극한 레이스는 처음이다. 그럼에도 "경험은 없지만 선수때 항상 극한을 달렸다. 일부러 고지 훈련을 가기도 했다"면서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에너지를 나누는 것만 해도 좋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아울러 "한국 나이로 불혹이다. 이 시기에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다"며 "이런 도전을 통해 나의 또 다른 10년을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40년 가까이 달려왔지만 달리기에 대한 애정은 끝이 없다.
권은주는 "달리기는 내가 살아가는데 가장 큰 에너지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못 뛴다고 생각하면 너무 속상하다"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같이 달리고 싶다"고 했다.
또 "두 다리가 움직이는 한 오랜 시간 뛰었으면 한다. 다리에 힘이 빠져 할머니가 될 때까지 러닝하는 사람들 안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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