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桓檀古記(환단고기·한단고기)’란 책이 있다. 1982년 가시마 노보루(鹿島昇)의 일본어 번역본과 1986년 사학자 임승국의 출간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우리 민족의 상고사를 다뤘다.
책의 ‘단군세기(檀君世紀)’ 편에 3세 단군 가륵이 세종대왕의 ‘훈민정음’과 유사한 정음 38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경자(庚子·BC2181) 2년 … 비록 상형 표의(表意)의 진서(眞書)가 있다 해도 10가구의 마을도 말이 많이 통하지 않았고, 100리의 나라에서도 서로 글자를 해독하기 어려웠다. 이에 (가륵 단군이)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正音) 38자를 만들게 하니, 이것이 바로 가림토(加臨土)이다.”
가림토 문자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을 비교하면, 놀랄만큼 서로 유사하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字倣古篆(자방고전)” 문구를 근거로, 이 가림토 문자가 세종대왕이 말한 字倣古篆의 “古篆”이라고 강변하는 이들도 있다.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 소장은 그러나 “세종대왕의 저서인 국보 제70호 ‘訓民正音解例本(훈민정음해례본)’에 실린 글자들과 정밀 비교하면 환단고기에 담긴 정음 38자 가림토 문은 위작임이 드러난다”고 못 박았다.
근거는 크게 7가지다.
우선, 가림토는 자음과 모음을 모두 합쳐 38자이고 훈민정음은 28자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듯 모음의 수는 11자로 서로 일치한다. 숫자뿐 아니라 모양까지 똑같다.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보고 베꼈다는 얘기다.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떤 것이 나중인가.
<사진>의 화살표 방향처럼, 훈민정음 해례본의 모음들은 옛날 원칙에 따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기재돼 있다. 반면, 가림토 모음들은 현대인의 기록습관대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열돼 있다. 훈민정음 모음 11자의 순서는 질서정연하나, 가림토 모음 11자는 수많은 위작 청동기 명문과 마찬가지로 원칙 없이 어지럽게 배치돼 있다.
훈민정음 모음 11자는 천지인을 상형한 ①기본자(•, ㅡ, l)와 ②초출자(ㅗ, ㅏ, ㅜ, ㅓ) ③재출자(ㅛ, ㅑ, ㅠ, ㅕ)의 순서다. 가림토 모음 11자는 ①기본자(•, l, ㅡ)와 ②초출자(ㅏ, ㅓ, ㅜ, ㅗ) ③재출자(ㅑ, ㅕ, ㅛ, ㅠ)의 차례다. 훈민정음과 달리 가림토는 ①의 기본모음이 ‘천지인’이 아닌 ‘천인지’의 순서로 돼있다. ②의 경우 음양이론에 따라 맨 처음 양성모음 ‘ㅏ’를 쓰고 그 다음 음성모음 ‘ㅓ’를 배열했으면 그 뒤는 양성모음 ‘ㅗ’를 먼저, ‘ㅜ’를 나중에 둬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③의 경우는 무원칙한 ②‘양·음·음·양’과 달리 ‘양·음·양·음’의 순서로 배열돼 있다.
글씨체도 주목대상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도구를 이용해 쓴 고딕체다. 하지만 가림토 글씨는 ‘아래아(•)’의 모양이 일정하지 않고, 직선도 완전하지 않은 손으로 쓴 붓글씨체다.
책의 ‘단군세기(檀君世紀)’ 편에 3세 단군 가륵이 세종대왕의 ‘훈민정음’과 유사한 정음 38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경자(庚子·BC2181) 2년 … 비록 상형 표의(表意)의 진서(眞書)가 있다 해도 10가구의 마을도 말이 많이 통하지 않았고, 100리의 나라에서도 서로 글자를 해독하기 어려웠다. 이에 (가륵 단군이)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正音) 38자를 만들게 하니, 이것이 바로 가림토(加臨土)이다.”
가림토 문자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을 비교하면, 놀랄만큼 서로 유사하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字倣古篆(자방고전)” 문구를 근거로, 이 가림토 문자가 세종대왕이 말한 字倣古篆의 “古篆”이라고 강변하는 이들도 있다.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 소장은 그러나 “세종대왕의 저서인 국보 제70호 ‘訓民正音解例本(훈민정음해례본)’에 실린 글자들과 정밀 비교하면 환단고기에 담긴 정음 38자 가림토 문은 위작임이 드러난다”고 못 박았다.
근거는 크게 7가지다.
우선, 가림토는 자음과 모음을 모두 합쳐 38자이고 훈민정음은 28자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듯 모음의 수는 11자로 서로 일치한다. 숫자뿐 아니라 모양까지 똑같다.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보고 베꼈다는 얘기다.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떤 것이 나중인가.
<사진>의 화살표 방향처럼, 훈민정음 해례본의 모음들은 옛날 원칙에 따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기재돼 있다. 반면, 가림토 모음들은 현대인의 기록습관대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열돼 있다. 훈민정음 모음 11자의 순서는 질서정연하나, 가림토 모음 11자는 수많은 위작 청동기 명문과 마찬가지로 원칙 없이 어지럽게 배치돼 있다.
훈민정음 모음 11자는 천지인을 상형한 ①기본자(•, ㅡ, l)와 ②초출자(ㅗ, ㅏ, ㅜ, ㅓ) ③재출자(ㅛ, ㅑ, ㅠ, ㅕ)의 순서다. 가림토 모음 11자는 ①기본자(•, l, ㅡ)와 ②초출자(ㅏ, ㅓ, ㅜ, ㅗ) ③재출자(ㅑ, ㅕ, ㅛ, ㅠ)의 차례다. 훈민정음과 달리 가림토는 ①의 기본모음이 ‘천지인’이 아닌 ‘천인지’의 순서로 돼있다. ②의 경우 음양이론에 따라 맨 처음 양성모음 ‘ㅏ’를 쓰고 그 다음 음성모음 ‘ㅓ’를 배열했으면 그 뒤는 양성모음 ‘ㅗ’를 먼저, ‘ㅜ’를 나중에 둬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③의 경우는 무원칙한 ②‘양·음·음·양’과 달리 ‘양·음·양·음’의 순서로 배열돼 있다.
글씨체도 주목대상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도구를 이용해 쓴 고딕체다. 하지만 가림토 글씨는 ‘아래아(•)’의 모양이 일정하지 않고, 직선도 완전하지 않은 손으로 쓴 붓글씨체다.
훈민정음 기본자(•, ㅡ, l)에서 1차 파생된 모음자 ‘ㅗ,ㅏ,ㅜ,ㅓ’ 가운데 ‘ㅗ’가 제일 먼저인 이유가 해례본에 명시돼 있다. 정음해례편 6장 뒷면의 문구 “ㅗ初生於天天一生水之位也(ㅗ초생어천 천일생수지위야)。ㅏ次之天三生木之位也(ㅏ차지, 천삼생목지위야)。”가 바로 그것이다.
‘천1생수’와 ‘천3생목’이란 말의 출전은 ‘상서대전(尙書大傳)’ 오행전(五行傳)이다. 기원은 복희가 황하에서 얻은 ‘하도(河圖)’다. 가림토의 “ㅏ,ㅓ,ㅜ,ㅗ”와 “ㅑ,ㅕ,ㅛ,ㅠ”는 세종대왕보다 뒷사람인 최세진 저 ‘훈몽자회’의 영향(ㅏ,ㅑ,ㅓ,ㅕ,ㅗ,ㅛ,ㅜ,ㅠ…)을 받은 현대국어와 비슷한 순서다. 세종대왕은 해례본 ‘천1생수’를 통해 자신이 모음을 ‘ㅗ,ㅏ,ㅜ,ㅓ’의 순서로 배정한 것은 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천명했다. 따라서 “옛 가림토를 보고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큰 오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初聲(초성)’, ‘中聲(중성)’, ‘終聲(종성)’이란 말이 있다. 初(처음 초)와 中(가운데 중)이라는 말처럼 세종은 어제서문에서 초성을 먼저, 중성을 다음에 배열했다. 그런데 가림토문에는 중성이 먼저, 초성은 중성 뒤쪽에 나열돼 있다. 이치에 맞지 않는 쪽이 가짜임은 물론이다.
세종대왕이 밝혔듯 우리 민족의 발음은 조상 대대로 ‘아·설·순·치·후·반설·반치’의 7음이다. 훈민정음에는 초성 17자로 나타난다. 27자의 가림토 초성은 7음을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민족의 정음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이 또한 위작의 증거다.
박대종 소장은 “가림토 문자는 현대의 위작이다. ‘10가구로 이뤄진 작은 마을에서 마을사람들 간에 말이 통하지 않는 일이 많았다’는 기록은 신뢰할 수 없다. 그리고 상세한 설명이 돼 있는 훈민정음해례본과 달리 가림토는 각 글자에 대한 정확한 음가와 뜻 설명이 없고, 글자의 용례(합성례)가 전혀 없다. 그런 것을 단군 때 글자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허위사실로써 진실을 왜곡하는 행위는 우리 민족의 영원한 스승인 세종대왕에 대한 엄청난 모독행위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로써,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3가지 설의 허구성을 모두 입증했다. ‘훈민정음, 세종 아닌 신미가 창제? 원각선종석보는 위작’(2016년 5월3일 뉴시스) 보도로 불교승려 신미, 음악가 박연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일부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앞서 ‘몽골문자를 베낀 것이 한글이라는 학설에 대하여’(2010년 10월9일 뉴시스)로 자방고전의 진실도 규명했었다.
[email protected]
‘천1생수’와 ‘천3생목’이란 말의 출전은 ‘상서대전(尙書大傳)’ 오행전(五行傳)이다. 기원은 복희가 황하에서 얻은 ‘하도(河圖)’다. 가림토의 “ㅏ,ㅓ,ㅜ,ㅗ”와 “ㅑ,ㅕ,ㅛ,ㅠ”는 세종대왕보다 뒷사람인 최세진 저 ‘훈몽자회’의 영향(ㅏ,ㅑ,ㅓ,ㅕ,ㅗ,ㅛ,ㅜ,ㅠ…)을 받은 현대국어와 비슷한 순서다. 세종대왕은 해례본 ‘천1생수’를 통해 자신이 모음을 ‘ㅗ,ㅏ,ㅜ,ㅓ’의 순서로 배정한 것은 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천명했다. 따라서 “옛 가림토를 보고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큰 오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初聲(초성)’, ‘中聲(중성)’, ‘終聲(종성)’이란 말이 있다. 初(처음 초)와 中(가운데 중)이라는 말처럼 세종은 어제서문에서 초성을 먼저, 중성을 다음에 배열했다. 그런데 가림토문에는 중성이 먼저, 초성은 중성 뒤쪽에 나열돼 있다. 이치에 맞지 않는 쪽이 가짜임은 물론이다.
세종대왕이 밝혔듯 우리 민족의 발음은 조상 대대로 ‘아·설·순·치·후·반설·반치’의 7음이다. 훈민정음에는 초성 17자로 나타난다. 27자의 가림토 초성은 7음을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민족의 정음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이 또한 위작의 증거다.
박대종 소장은 “가림토 문자는 현대의 위작이다. ‘10가구로 이뤄진 작은 마을에서 마을사람들 간에 말이 통하지 않는 일이 많았다’는 기록은 신뢰할 수 없다. 그리고 상세한 설명이 돼 있는 훈민정음해례본과 달리 가림토는 각 글자에 대한 정확한 음가와 뜻 설명이 없고, 글자의 용례(합성례)가 전혀 없다. 그런 것을 단군 때 글자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허위사실로써 진실을 왜곡하는 행위는 우리 민족의 영원한 스승인 세종대왕에 대한 엄청난 모독행위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로써,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3가지 설의 허구성을 모두 입증했다. ‘훈민정음, 세종 아닌 신미가 창제? 원각선종석보는 위작’(2016년 5월3일 뉴시스) 보도로 불교승려 신미, 음악가 박연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일부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앞서 ‘몽골문자를 베낀 것이 한글이라는 학설에 대하여’(2010년 10월9일 뉴시스)로 자방고전의 진실도 규명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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