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차성수 금천구청장 "세딸 입양...성찰 계기"

기사등록 2016/05/16 10:20:15

최종수정 2016/12/28 17:03:36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글/손대선 임재희 기자 사진 배훈식 기자 = '낳은' 정과 '기른' 정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고는 하지만 유전적 형질이 다른 인간과 인간이 일촌으로 맺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브란젤리나(영화배우 브래드 피트-안젤리나 졸리) 부부의 입양은 신화적이다. 피부색과 국적이 다른 3명의 개발도상국 아이들을 차례로 입양한 그들의 선행 하나하나는 화제가 된다.

 다자녀 입양은 브란젤리나 부부처럼 해외토픽에서나 볼 수 있을까. 국내에서도 브란젤리나 부부 못지 않은 이들이 있다.

 뉴시스는 지난 5월11일 입양의 날에 입양유공자로 대통령표창을 받은 차성수 금천구청장을 지난 13일 구청장 집무실에서 만났다.  

 차 구청장과 그의 아내 유현미씨는 현재 사남매를 두고 있다. 맏아들을 제외한 세 자매는 모두 공개입양을 통해 이 부부의 자식이 됐다.

 막내딸 혜주(12)는 2006년 3살 때 입양했다. 차 구청장이 50세, 유씨가 48세 때였다. 부부는 이듬해 혜주에게 언니를 만들어주려고 혜인(15)을 6살 때 입양했다. 2008년에는 딸 기르는 재미에 푹 빠져 둘째 딸 혜윤(14)이까지 입양했다.

 이미 슬하에 아들이 있음에도 생면부지의 아이들을 가족으로 맞아들이게 된 계기는 20여년 전 자신들의 다짐때문이었다.

 당시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부부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일'의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입양을 생각했다. 그들은 형편이 닿는데로 입양을 하기로 했고 차 구청장이 청와대에서 근무(시민사회수석 비서관)하던 시절 이를 실천에 옮겼다.

 차 구청장은 대통령표창 수상을 계기로 자신이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는 것에 대해 "고생은 집사람(유현미씨)이 하고 표창은 제가 받았다"며 멋쩍어 했다. 

 그러면서 첫 아이를 입양했을 때의 두려움과 설레임, 그리고 자신에 대한 실망과 반성 등 희로애락을 가감없이 털어놓았다. 

 "2006년이었니까 벌써 10년이 됐다. 그때 내 나이 50이 됐을 때다. 우리 부부가 30대에 입양을 해보자고 얘기했었는데 애 기르고 바깥 활동이 많아지면서 그 시기를 놓쳤다. 애가 대학에 들어가고 입학하고 나도 50살이 되면서 제2의 인생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사람도 잘 나가고 바쁘던 대치동 학원 원장을 그만해야겠다면서 '인생 이렇게 사는 것 아닌것 같다'고 생각해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여러 사이트를 둘러보고 입양 홍보프로그램을 보는데 그 중 입양 기다리는 아이들이라는 소개가 나와 보다가 '저 아이'하고 찍었다."

 부부는 아이가 머무는 시설에 연락해 봄날 혜주가 머무는 경북 김천의 시설을 찾았다.

 차 구청장은 "입양할 때까지 단 한번도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못 봤고 손도 못 잡았다"며 "딱 보는 순간 너무 예뻤는데 그 아이는 나만 보면 너무 울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2주에 한번씩 얼굴을 익혀야 했다. 집사람이 선물 사가지고 오면 좋아하고 껴안기도 하는데 나는 바깥에서 얼굴만 보여도 울더라. 아이 방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아이 손을 처음 잡은 게 6월6일이었다. 그날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첫째 딸 혜인이를 양육하면서 부부가 모두 인격의 바닥을 경험한 얘기도 전했다.

 밥알을 어금니로 씹지 못하는 딸 아이와 매일 식사시간때마다 씨름하면서 느낀 절망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잘 알지 못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associate_pic2
【서울=뉴시스】
 그는 "밥을 어금니로 넣게 하는데 거의 열달이 걸렸다. 손으로 집어 넣고 어떻게 넣으라고 가르쳐줘야 했다"며 "'내가 학력도 높고 애들도 잘 가르쳐 입양이 뭐가 힘들까' 싶었는데 큰딸 키우면서 우리 인격의 바닥을 봤다"고 말했다.

 차 구청장은 입양 전후 변화에 대해 "인간적으로 성숙할 수 있게 됐다는 게 가장 크다"고 주저없이 전했다.

 그는 "자기성찰 기회가 있겠지만 입양만큼 자신을 돌아보고 자아를 성찰할 계기가 없었다"며 "교회를 다녀도 '폼'으로만 다녔던 것 같다. 입양하고 나서 한 인간이 얼마나 한계가 많고 인간이 근원적으로 죄덩어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학력이나 공부로 해결되지 않는 인간 성숙의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차 구청장과의 일문일답.

 -대통령표창으로 축하 많이 받으셨겠다.

 "많이 받았는데 감사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고생은 집사람이 하고 표창은 내가 받았으니까."

 -세 자녀 입양한 얘기는 많이 들었다. 처음 입양한 계기와 과정, 에피소드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린다.

 "2006년이었니까 벌써 10년이 됐다. 그때 제 나이 50 됐을 때다. 저희 부부가 30대에 입양을 해보자고 얘기했었는데 애 기르고 바깥 활동을 많이 하다보니 시기를 지나쳤다.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입학하고 저도 50살이 되면서 제2의 인생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사람도 '잘 나가고 바쁘던 대치동 학원 원장을 그만두면서 입양을 결정했다. 여러 사이트를 둘러보고 입양 홍보프로그램을 보면서 그중에 입양 기다리는 아이들이라는 소개가 나오는데 보다가 '저 아이야' 하고 찍었다. 시설에 연락해 2월말~3월초 처음 방문했다. 방송을 보고 이 아이를 입양했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아이를 보여줬다. 그 아이가 우리 막내딸 혜주다. 26개월때인가 입양을 했다. 책에도 나와 있긴 한데 입양할 때까지 단 한번도 그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못 봤고 손도 못 잡았다. 딱 보는 순간 너무 예뻤는데 아이가 나만 보면 너무 울었다. 시설에는 3살 미만 아이들이 같이 사는 방이 있었는데 집사람이 들어가 껴안고 나는 2주에 한번씩 얼굴을 익혔다. 집사람이 선물 사가지고 오면 좋아하고 껴안기도 하는데 나는 바깥에서 얼굴만 보여도 울더라. 아이 방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그랬다. 그 아이 손을 처음 잡은게 6월6일이었다. 그날을 잊지 못한다."

 "시설 아이들이 굉장히 민감한 게 입양한다 그러면 벌써 분위기를 다 안다. 아이들도 알고 입양이라고 표현을 못할 뿐이지 떨어져 산다는 걸 다 안다. 그렇게 울던 애가 김천에서 서울까지 오는데 전혀 울지 않았다. 마음을 굳힌 거다. 100일 될 때까지는 이 아이 때문에 화장실을 못 갔다. 방에는 무서워 못자니까 거실에서 엄마랑 자는데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울었다.(웃음) 100일째 처음 나를 안아줬는데 그 아이가 내 아이가 되는 느낌이 들어 무척 기뻤다. 그 아이가 갈수록 너무 예뻤는데 문득 크면 오빠랑 나이 차이가 17살이나 너무 힘들것 같다는 생각에 자매를 만들어주자고 마음을 먹었다. 언니를 찾다가 똑같은 시설에 언니가 있다고 해 가보고 바로 데려왔다."

 -막내딸과 낯이 익은 언니였나?

 "잘 모르는 사이였다. 같은 시설이라고 해도 건물별로 따로 떨어져 사니까. 7~8명씩 한 방에 있는데. 그 시설 8명이 한 보모 밑에서 사는 것이다. 그게 굉장히 중요한 건데 8명이 한 명의 엄마 밑에서 사니까 '내 엄마'라는 게 없다. '우리 엄마'는 있지만 말이다. 큰 딸은 6년을 거기 있다가 와 안좋은 습관들이 있었다. 눈치보기, 거짓말하기 이런 것들은 일상적인 것이었다. 우리가 힘들고 집사람이 매일 울고 했던 것은 사람이 밥을 먹는 게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얘는 요만큼(손바닥을 오무리며)을 갖고 먹는 데 30분이 걸렸다. 7살 때 왔는데 밥을 먹을 줄 몰랐다. 이름을 혜인이라고 지어서 '차혜인' 해봐 했는데 '차' 발음이 안 됐다. '샤' 발음만 됐다. 정말 놀라운 게 '차' 발음을 못했다. 놀랍게도 'ㅊ' 발음은 물론 파열음이 안 나오는 거였다. 'ㅊ'자는 시옷 발음밖에 안됐다. 나중에 깨달은 건데 밥을 먹으면 밥알을 어금니로 씹지 않고 그냥 목구멍으로 집어넣었다. 밥알을 씹으려면 어금니로 보내야 하는데 이걸 못 배운거다. 어금니로 보내지 못하는 애를 어떻게 가르치나 참. 우리는 너무 자연스러워 어금니로 보내는 걸 배웠다는 걸 의식하지 못한다. 해보시라. 의식하는 순간 잘 안 된다."

 -장애가 있었나.

 "밥을 먹는데 앞니로만 먹으니까 밥알을 뭉갤 수가 없었다. 어금니로 깨고 부수니까 들어가는 거지 앞니로만 해서 어떻게 넘길 수 있었겠나. 그래서 우리가 이틀동안 어금니로 밥 안 넘기고 먹는 것을 해봤다. 수없이 앞니로만 씹으면 침이 계속 나온다. 2~3분이상 씹으면 죽처럼 되는데 그때 넘겼다. 이 아이는 발음이 안되고 먹는 훈련도 안돼 구강 구조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것이다. 그런데 시설에서 보모가 돌보면서 그걸 챙긴 적이 없었던 것이다. 밥을 어금니로 넣게 하는 데 거의 열달이 걸렸다. 손으로 집어넣어서 어떻게 넣으라고 가르쳐줘야 했다. 막내 입양하고 나서 100일만에 내 딸이 되니까 '내가 학력도 높고 애들도 잘 가르쳐서 입양이 뭐가 힘들까' 싶었는데 큰딸 키우면서 우리 인격의 바닥을 봤다. 참아내지 못하는 인간성의 바닥을(잠시 한숨을 내쉬며)."

 "혜인이의 나쁜 습관중 하나가 감정을 안 드러내는 것이다. 자아가 없는 것과 연관돼 있다. 자아없는 집단의 대표적인게 군대라고 한다. 군대는 명령과 지시에 따라 행동만 하면 된다. 그럼 무표정해진다. 누구말처럼 공무원들 무표정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리 혼내도 울지 않고, 눈물도 안 흘리더라. 막내한테 제일 많이 가르친 게 '우리는 너의 엄마·아빠지 옆(보모같은)의 엄마·아빠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무표정이 풀리는 데 1년여가 걸렸다. 인간의 바닥을 봤다는 건 글쎄, 우리의 분노가 감당이 안 되더라. 큰딸 키우면서 집사람이 1년 열두달을 울었다. (내가)청와대 있을 때인데 밤마다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시설에서도 (아이가 문제가 있다는 걸)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는 우리한테 입양 안해도 좋으니까 보내라고 했다."

associate_pic2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차성수 금천구청장이 13일 오후 서울 금천구청 집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6.05.16.    [email protected]
 "1년쯤 지났을 때는 시설에 돌려보내는 게 낫겠다 싶었다. 집사람이 고민하다 여기까지 데리고 왔는데 어떻게 포기하냐고 했고 나는 솔직히 돌려보내자는 입장이었다. 어느날 퇴근해보니까 집사람이 가족등록을 했더라. 우리 집에 온 지 1년만에 입양을 한 거다.(웃음)"

 "둘째딸은 시설에 가서 아기들 키우는데 뭐가 힘드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가정이라는 걸 애들이 모른다고 하더라. 가정을 알 수가 없다. 엄마, 아빠 역할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연애는 본능에 가까우니까 하는데 결혼은 못 한다고 하더라. 엄마, 아빠가 저절로 되는 것 같지만 다 자기 엄마, 아빠를 보면서 배운 것이다. 그런 모델이 없는데 어떻게 결혼을 자연스레 할 수 있겠나. 이 아이들한테는 결혼이 큰 결단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을 배워보자, 가정체험이라는 걸 했다. 샘물교회 교인들과 4박5일씩 교인들 가정에 들여보냈다. 처음에는 10명정도 했는데 3년차 되니까 그 시설 모든 아이가 가정체험을 했다. 60명 아이가 여름, 겨울방학때 오게 됐다. 우리도 참여했는데 우리집에 왔던 애가 4박5일 왔다가 갔고 그다음 방학 때는 한달있다 가고 다음엔 안 가겠다고 떼를 썼다(웃음). 그럼 같이 살지 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둘째 딸이 생모가 있어서 친권 포기를 안 하고 있었다. 언젠가 데려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둘째 딸에게 여기 사는 건 괜찮지만 입양은 어렵겠다고 설명했다. 그랬더니 딸이 엄마를 만나겠다고 그랬다. 8살짜리가 엄마를 만나겠다고 했다. 생모는 얘를 정말 사랑했는데 자기 엄마와 통화하면서 자기를 입양 보내달라고 얘기했다. 1년에 한 번 밖에 못 봤지만 자기 딸이 눈물 흘리면서 보내달라고 하니 그 마음이 어땠겠나. 그 엄마가 딸을 만나고 나서 입양을 허락을 해줬다. 그때부터 둘째 딸이 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3명의 아이들을 입양하게 됐고 행복하게 잘살고 있는 거다."

 -젊었을 때 어떤 분이 먼저 제안했나.

 "같이 시간강사도 하고 그럴 때인데 우리가 세상에서 여러 가지 할 일이 있겠지만 필요한 일 아니었겠나 생각했다."

 -사모님이 대단하시다.

 "유현미, 집사람이 나보다 두 살 어리고 굉장히 예쁘다.(웃음)"

 -사모님이 고생 많이 하셨을 텐데 아드님 반응은 어땠나.

 "막내 들어왔을 때 너무 좋아했다. 그때 대학교 2학년이었다. 너무 좋아해 껴안고 세상에 이런 동생이 없다고 좋아했다. 막내도 오빠를 너무 좋아했다. 참 좋았는데 막내 입양되고 나서 아들이 군대에 갔다. 그다음부터는 면회 가거나 휴가올 때마다 애가 생겼다.(웃음)"

 -주변의 시선은 어땠나.

 "입양절차 밟는 게 힘들다. 요새는 법적으로 안 되는데 출생신고를 하는 것이다. 그때 청와대 있을 때였는데 용인 살았다. 동사무소 입장에선 얼마나 난감하겠나. 처음 아들이 스무살짜리가 있는데 갑자기 3살짜리 딸을 등록했던 것이다. 벌금내고 출생신고를 했다. 출생신고 늦게 하면 30만원인가 벌금을 낸다. 출생신고를 했는데 주민센터 직원들이 묘한 눈길을 보냈다.(웃음) 뭐 어디서 사고치고 애 데려왔나 하는 시선 말이다. 큰딸때는 얼마나 당혹스러웠겠나. 3살짜리 딸이 왔다가 1년만에 7살짜리가 또 왔으니까. 동사무소 직원들이 꽤 수근거렸을 거다(웃음)." 

 -다른 가족분들은 어떠셨나.

 "반대한 건 부모님들이었다. 처음에는 저희 부모님들이 목회자시기 때문에 대놓고 반대는 못 했다. 처가에서는 그렇게 고생했는데 왜 또 고생하려고 하느냐며 입양하지 말라고 반대했다. 그런데 입양해서 데리고 가니까 너무 좋아하더라. 예쁜 손녀가 생겼으니까. 그런데 집사람이 힘들어하니 둘째 입양할 때는 격렬하게 반대했다. 큰딸은 양가 어르신들한테 얘기 안 하고 몰래 데려왔고 둘째 딸은 양가 어르신도 자포자기 상태였다.(웃음)"

 -입양 전후 뭐가 바뀌었나.

 "인간적으로 성숙할 수 있게 됐다는 게 가장 크다. 자기성찰할 기회가 있겠지만 입양만큼 자신을 돌아보고 자아를 성찰할 계기가 없었다. 나나 집사람이나 교회 같은 데를 다녀도 '폼'으로만 다녔던 거 같다. 입양하고 나서 한 인간이 얼마나 한계가 많고 인간이 근원적으로 죄덩어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학력이나 공부로 해결되지 않는 인간 성숙의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집사람이 페미니즘 운동을 했기 때문에 개방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다양한 가족 만드는 방법에 뛰어들어 보니까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다양성과 막상 구체적으로 살아갔을 때 느끼는 것이 굉장히 달랐다. 특히 막내딸을 키우면서 책에도 썼는데 정말 혈연이라는 게 의미가 없구나 싶었다. 막내딸이 100일 돼 나를 안아줬을 때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막내딸이 든든하다고 생각했던 건 얘랑 4살 때 슈퍼를 갔을 때였다. 슈퍼 주인이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야 될지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될지 난감했나 보더라. 슈퍼주인이 '할아버지랑 손잡고 왔네~' 하니까 딸이 '아니에요~ 우리 아빠예요' 하더라(웃음). 얘가 나를 아빠로 인정하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저희 딸이 놀림을 당하거나 입양했다고 뭐 대단한 일했다고 할 때는 솔직히 화가 좀 난다.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딸들이 가족에서 혈연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피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associate_pic2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차성수 금천구청장이 13일 오후 서울 금천구청 집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6.05.16.    [email protected]
 "큰딸 키우면서 느낀건 두 번째 사랑장이라고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내용이 있다. 그 책에 보면 '사랑은 오래 참는다'는 글귀가 있다. 사랑은 기쁘고 뜨겁고 그래야 하는데 왜 '오래 참고'를 먼저 얘기하나 굉장히 궁금했었다. 그런데 큰딸 기르면서 사랑이라는 게 오래 참고 기다려주는 거구나 하고 느꼈다."

 "둘째 딸은 호적이 우리에게 왔기 때문에 법적으로 돌려주기 쉽지 않다. 그런데 엄마가 원하면 언제든지 만나게 해주고 기르고 싶다면 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둘째에 대해 내 소유라는 생각을 놓게 됐다. 진짜사랑이 어떤 건지 알았다. 혈연이나 소유관계나 이런 것들로 가족과 사랑이라는 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구나 하고 깨달았다. 같이 관계를 맺어가면서 오래참고 봐주고 이러면서 서로가 격려하고 힘이 되면 이게 가정이 되는 거구나. 이게 사랑이구나 하는 걸 배우게 됐다. 나는 그걸 안것만 해도 평생 몰랐던 것을 깨닫게 해주는 거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고 본다. 갑의 역할을 하는 그런 권력보다 주로 섬기는 역할을 해야 하는 구청장을 할 때 얘네들의 삶이 나한테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얻고 배운 게 크다."

 -청와대 재직시 성격이 괄괄했다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구청장 되고서 달라졌다고 말하던데 이게 입양 때문일 수도 있겠다(웃음).

 "그럴 수 있다.(웃음)"

 -법적인 문제를 짚고 넘어가자. 입양관련법이 미비해서 걸림돌이 많다는 얘기가 있는데 현행법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준다면.

 "우리나라가 해외입양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참여정부때 2005년 국내입양을 늘리기 위해 입양특례법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국내입양이 확 늘기 시작했고 우리도 덕을 본 사례다. 그 전에는 나이나 이런 게 엄격해 나이 50세가 넘어가고 나이 차이가 크면 입양을 못하게 했다. 2007년부터 국내입양이 매우 많아지고 해외입양은 되레 줄었다. 2012년에는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면서 반드시 출생신고를 해야 입양될 수 있게 하고 반드시 부모 동의를 받게 됐다. 그런데 미혼모들은 출생신고를 못 한다. 한국과 같은 문화적 상황에서 미혼모는 낙인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버리게 된다. 베이비박스가 1년에 한 300~400명 들어오다가 1년에 900명씩 들어오기 시작한 거다.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하고 그러면서 입양이 굉장히 어려워졌다. 개정된 입양특례법이 입양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배경도 있다. 아동인 권리보호라고 하는게 UN에서 1970년대 만들어졌다. 그 다음 헤이그에서 입양에 대한 국제 협약을 한다.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이라고 하는 걸 헤이그협정이라고 하는데 그 정신에 따라 UN에 가입해서 그 협정을 따라야 하므로 그런 법개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법 개정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입양이 줄어든 것이다. 법개정 하면서 나타난 문제가 뭐냐면 미혼모를 지지하는 사람과 입양을 하는 사람들이 마치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갈등이 생겼다는 점이다. 미혼모를 지원해서 생모가 길러야 한다는 의견과 입양을 해서 길러야 된다는 의견으로 갈려 갈등처럼 비쳤다."

 "헤이그협약에 입양 3원칙이 있다. 모든 아이는 가정에서 자라야 하는데 생모가 기르는 게 첫번째 원칙이다. 두 번째는 생모가 기를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국내에서 입양하는 게 원칙이다. 세번째가 해외입양이다. 아동선언에 보면 모든 아이는 가정에서 보호받고 길러져야 하는 권리가 있다. 정부가 미혼모는 미혼모대로 보호하고, 입양은 입양대로 할 수 있게 통로가 열려야 하는데 까다로워진 것이다. 미혼모 지원도 안 늘어나고 입양은 까다로워졌다. 미혼모들이 공식적으로 한달에 10~20만원 받을 것이다. 입양가정도 한 아이에 대해 20만원씩 받는다. 시설에 있을때는 아동 한명당 100만원 수준으로 비용이 많이 든다. 미혼모가 잘 키울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주는 건 필요하다. 사회적 편견을 없애도록 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정부가 개선책을 찾고 있는 시점이고 적절한 시점에서 찾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법적으로 가능한 생모가 키우고 이 원칙을 지키려면 정부가 미혼모에 대해서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들이 최소한 생활을 할 수 있게끔 할 수 있어야 한다."

 -미혼모 지원하자고 하면 난리다. 종교계에서 반대한다.

 "난리가 난다. 그런데 프랑스 미테랑 있을 땐가 자기 딸이 미혼모인데 아이를 낳았다. 할아버지가 애를 안고 있는 모습이 주간지 표지에 실렸다. 미혼모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주지 않으면 그게 마치 미혼모를 조장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지 않다. 좀더 적극적으로 재정적이고 심리적인 지원을 해주는 게 맞다. 그리고 입양도 가능하게 풀어주는 게 맞다."

 -아이에 대한 게 중요하다. 잘 클 수 있게 해주는 환경이 중요한 것 아닌가.

 "가장 중요한 건 아동들을 보호돼야 할 객체로 보는 걸 넘어 한 인간으로서 보편적인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인정해주는 것이 인권선언 정신이기 때문에 그것이 필요하다."

 -사모님께 다시 한번 고마워해야겠다.

 "집사람과 상의하긴 했어도 입양을 결심하고 아이들을 아내가 10년 동안 눈물과 기도로써 키웠다고 생각한다. 큰아이는 10년만에 공부도 잘하고 부모 말씀도 잘 듣는 최고의 효녀가 됐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물론 밥도 너무 잘 먹는다. 집사람이 아이들을 너무 잘 키워줘 고맙고 이걸 통해서 사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가족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됐고 더 깊은 믿음들을 가질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인터뷰]차성수 금천구청장 "세딸 입양...성찰 계기"

기사등록 2016/05/16 10:20:15 최초수정 2016/12/28 17:03:36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